비로소 나다울 수 있는 공간을 찾아서
그런 공간이 있다. 마치 내 자리만 딱 비워둔 퍼즐판처럼, 내가 들어서면 한 폭의 멋진 그림이 완성되는 곳. 애써 포장하지 않고 일부러 맞추려 배려하지 않아도 나라는 사람이 어떤 공간에서는 딱 맞게 끼워진다. 가족이나 연인, 친한 친구와의 반가운 조우가 그럴 것이다. 나에게는 지난 주에 있었던 고등학교 친구 A의 결혼식이었다. MBTI가 유행하지 않았던 10여년 전, 나는 3명의 친구와 붙어 다녔었다.
떠올려보면 우리들은 그야말로 신들린 만담꾼들이었다. 우리들은 서로 재치있는 단어들을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뽑아대곤 했는데, 그것이 서로 시너지를 일으켜 스파크가 일어나 우리만의 웃음 폭죽 축제를 만들곤 했다. 고등학교 2학년 어느 여름날 직업탐구 수업에서 각자의 MBTI에 맞춰서 모둠 활동을 했던 시간이 있었다. 각자 검사를 끝내고 MBTI 모둠별로 앉았는데, 우리끼리 왁자한 웃음이 또 한번 터졌었다. 반 아이들 중 딱 우리 3명과 남자애 1명이 유일하게 ENTP였기 때문이다. 서로를 바로크 시대 작곡가로 칭하던 경쾌하던 소녀들은(참고로 신부가 될 A는 멘델스존이었다. 이유는 멘델스존을 닮아서였다.), 졸업 후 각자의 꿈을 찾아 다른 대학교로 진학하며 뿔뿔이 흩어졌다. 다들 바쁘기도 했고, 시간도 타이밍도 썩 좋지 못했던 탓에 근 10년 이상을 제대로 보진 못했었다.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던 차에 그 친구의 결혼식이 그야말로 그 소녀들을 다시 소환할 수 있었던 역사적인 곳이었던 것이다.
결혼식 한 달 전, A는 우리에게 단톡방에서 대뜸 축가를 같이 부를 수 있겠냐고 제안했다. 사실 나는 그녀의 제안을 기대했다. 우리는 유투브나 틱톡이 활성화되기 전, UCC 시절부터 재미 삼아 자막을 달고 영상을 만들곤 했었다. (생각보다 퀄리티가 좋았는데, 내가 방송반이라 프리미어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래방도 정말 자주 갔는데, 개중에는 삑사리들도 가감없이 넣어 웃음 코드를 만들어냈던 기억이 나의 흑역사로 남아있곤 하다. 그런 기억 덕분일까, 그 애의 제안이 반가웠다. 다른 친구들도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디데이가 될 동안 아무도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그냥 각자 알아서 연습해오라는 말들과 함께. 생각보다 불안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참 우리다웠다.
그렇게 우리는 리허설도 대충하고 나서 무대에 올랐다. 화사게 빛나는 신부를 기준으로 양 옆에 서서 서로를 쳐다봤는데, 한 때 여고생들이었던 눈빛들이 다시금 반짝 빛났다. 아 맞다, 얘네들 다 무대체질이었지. 우리는 제대로 연습한 것 마냥 귀여운 안무를 하며 각자의 파트에 집중했고, 무사히 큰 사고 없이 무대를 마칠 수 있었다. 그냥 원래 있는 자리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넷이서 아름답게 빛났던 순간이었다.
반면, 내가 불청객이 되는 공간도 있다. 결이 다른 곳이다. 그 낯선 공기와 어울리려 부단히 끼워 맞추려 노력해도 그 말미에는 어떻게든 튕겨져 나가곤 하는데, 나는 그런 곳에선 금방 기운을 잃고 얼른 집에 가서 따뜻한 침대에서 쉬고 싶어진다. 아마 그 공간은 나를 악의로, 처음부터 불청객으로 만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냥 내가 나의 방어기제가 작동해서 그렇게 그 공간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겠다.
아마 많은 직장인들은 그 공간을 회사라고 꼽을 것 같다. 가치관과 생활 양식이 다른 사람들끼리 하나의 공동 목표를 위해 주5일 9to6을 복닥이다보면, 결국에는 내가 어찌 컨트롤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권태감과 무력감이 찾아오곤 하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비단 회사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아주 보통의 사회"가 그렇지 않을지 싶다. 내가 맞춰지지 않으면 안되는 곳인 것이다. 어릴 때에는 그들의 일원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해서 애써 맞춰왔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럴 여유와 에너지가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게 맞으니까. 그래서 다들 저마다 자신과의 결이 맞는 공간을 찾아가나보다.
내가 온전히 나 다울 수 있도록 편안할 수 있는 사이가 어느때보다 소중해지는 요즘이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공간이 곧 사랑의 또 다른 언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