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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온 Mar 26. 2024

온기를 기다리며


땅땅 언 계절을 지나는 일은 가혹하다. 나와 남편은 그야말로 고금리 장기화 저성장 속 저출산과 고령화 시대를 지나고 있다. 특히, ‘바가지 문화’로 악명 높은 K-결혼까지 나름 성공적으로 헤쳐 나갔다고 자부한다. 그렇게 우리는 드라마 같은 연애와 비교적 순탄한 결혼을 시작으로, 안정적인 신혼이 기다리고 있을 줄만 알았다. 그러나 숨 돌리기도 잠시, “아이는 그렇게 쉽게 생기지 않을 것”이라던 선배들의 말만 철썩 같이 믿고 있었던 는데 무방비 상태로 결혼 3개월이 채 안되어 '두 줄'을 보게 되었다. 분명 뛸 듯이 기뻐야 하는게 맞다만은, 걱정과 불안부터 앞선 것은 역시 팍팍한 계절 탓일테다. 네가 들으면 조금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그 때는 그랬다. 장류진의 소설 ‘도움의 손길’에는 아이를 그랜드 피아노에 비유하는 대목이 있다. 


나에게 아이는 마치 그랜드 피아노와 같은 것이었다. 평생 들어본 적이 없는 아주 고귀한 소리가 날 것이다. 그 소리를 한번 들어보면 특유의 아름다움에 매혹될 것이다. 너무 매혹된 나머지 그 소리를 알기 이전의 내가 가엾다는 착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당연히,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임감 있는 어른,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그걸 놓을 충분한 공간이 주어져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미처 준비되지 않은 낡고 작은 신혼방에, 고귀하고 큰 존재감의 너를 맘 놓고 두기가 매우 부담스러웠다. 대입, 취업, 결혼 등 한 치 앞도 모른 채 달려오느라 비좁고 가난해진 나의 마음이 너를 다치게 하지 않을지도 두려웠다. 게다가 바깥 세상은 어떠한가. 사람도 사회도 온정 없이 얼어붙어 저마다의 밥그릇을 놓고 싸우기 급급하고, 공공장소에서 우는 아이를 날 선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걸. 나는 대한민국 ‘인구절벽’의 출산율 0.7명의 시대에 새 생명을 내놓는 것이 너에게 너무 미안한 선택지가 되진 않을까 고민했다. 당장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되었을 때 내가 준비해야할 돈과 자산들을 살펴보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밤을 새운 적도 있다. 하지만 고민은 고민일 뿐. ‘우리는 모두 준비된 채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네 심장 소리를 처음으로 듣게 되던 날부터 였다.


이로써 나는 임산부가 되었다. 나를 부르는 호칭이 “신부님”이 아니라 “산모님”이 될 무렵,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짐승에 가까운 몰골이 되었다. 수시로 쿡쿡 찌르고 당기는 복통과 함께 동반되는 뜨끈한 미열 증상은 디폴트다. 후각이 예민해져 냉장고를 포함한 모든 냄새들이 거북해져 몇 주간은 변기를 붙잡고 있어야 했다. 인공적인 화장품 냄새가 힘들어서 화장 해야 하는 날에만 억지로 화장을 했고, 샴푸나 바디워시를 사용하여 씻는 것 조차도 고역이었다. 또, 5주차부터 찾아온 입덧 해일로 하루 종일 배를 타는 것과 같은 멀미와 사투를 벌여야하고, 하필 ‘먹덧’에 당첨되는 바람에 쉼 없이 입 속에 무언가를 집어 넣어야 속이 편했다. 


그 와중에 군포와 마포를 오가며 출퇴근을 하는 것은 거의 죽을 맛이었다. 임신 전에는 계단을 뛰듯이 날아다녔던 나인데, 이제는 지하철 계단을 오르다가 턱턱 막히는 숨에 중간에 멈춰서 천장을 바라보며 쉬어야 했다. 몰랐는데, 임산부석은 ‘세미 노약자석’과 다름 없었다. 핑크색 시트에 앉은 사람들에게 임산부 배지를 보여줘도, 그들은 흘끗 눈길만 주고 애꿎은 스마트폰을 켤 뿐이었다. 몸도 힘든데 눈치게임까지 해야 하니 그 마저도 질려서 자리를 피하고 서서 갈 때가 많았다. 그 날도 1시간 반을 꼬박 서서 갔어야 했다. 아랫배가 뻣뻣해지고 정신이 아득해 질 무렵, 집 근처 역에 도망치듯 내리니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그렇게 나는 열차와 승객들이 떠난 플랫폼 벤치에 앉아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엉엉 울기도 했다.


하지만 그 해일 가운데에서도 스스로를 다잡을 수 있었던 것은, 진실로 너 덕분이었다. 2주에 한번씩 초음파 검사를 할 때마다 아기라고 부르기도 멋쩍은 좁쌀 크기부터 샤인머스캣, 망고 크기로 크며 나를 놀라게 하더니, 지금은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라 어엿한 신생아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너. 나름대로 세상에 나올 준비로 분주한 너의 조그만 꿈틀거림에 나는 다시 한번 기운을 차리곤 한다. 


그렇게 나는 너를 만나고 있다. 아직 너와 눈인사하진 못했지만, 그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는 너의 노력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만 같다. 내가 너에게 선물할 작디작은 다정함으로 부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길. 그리고 얼어붙은 주변을 녹일 수 있는 따스함으로 자라길. 너의 존재, 너의 말과 행동이 이 계절에 매번 찾아다니는 바로 그 온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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