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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elmen Feb 04. 2020

일하는 마음

내 주변에도 개복치가 몇몇 있다. 당장 내 여자친구도 개복치인데, 뭔가 신경 쓰이는 일이 있거나 직장에서 깜빡하고 잊은 일이 있으면 바로 신체적인 반응이 온다. 입술이 부르트거나 입천장이 내려앉거나 편도가 퉁퉁 붓는다. 마음만 먹으면 10초 안에 잠들어서 10시간 넘게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인데도, 마음이 괴로우면 수시로 악몽을 꾼다. 살면서 겪는 문제들이란 대부분 때가 되어야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미리 괴로워하지 말라고, 어차피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말해줘도 별 도움은 되지 않는다. 개복치들은 그걸 몰라서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니까. (중략) 입천장이 내려앉고, 며칠 내내 악몽을 꾸면서 그 개복치들이 했던 건 그저 불평불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걱정하는 만큼 노력했고, 마음에 들지 않는 만큼 마음에 들 때까지 매달렸다. 어떤 결과를 맞닥뜨리면 쉽게 상처 받을 것을 다 알기에, 상처 받지 않기 위해 그 과정을 더 부단히 살아내는 것. 다시 말해, 스스로가 개복치인 것을 아는 개복치들이었던 셈이다. (중략) 나한테는 열심히 하면 잘될 거라고 응원해주고, 자기네들끼리는 “오늘도 대충 하는 하루 보내자!”라며 끝인사를 나눴다. 세상에서 가장 ‘대충 할 줄 모르는’ 개복치 둘이서, 대충 했다가 금방 죽을 것처럼 괴로워하는 개복치 둘이서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김경빈 <개복치의 태도> 



이 글을 작년 11월부터 적다 말다를 반복했는데, 결국 다 쓰지 못하고 서랍에 넣어뒀다. 그리곤 불꽃같던 2019년 연말이 지나고, 2020년도 벌써 쏜살같이 한 달이 지나가버렸다. 브런치는 쳐다볼 여유가 없었다. 지금은 소용돌이치던 마음도 다소 잠잠해졌다. 그래서 이제야 마저 적는다.


작년 하반기엔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재밌게 봤다. 그 드라마 6화 제목이 ‘본투비하마’ 였는데, 하마가 물속에 들어가 있을 땐 아무도 그 성깔을 모르지만, 한번 치받으면 되게 치받는다 뭐 이런 주제였다. 동백이가 그렇다는 내용이었고 통쾌했다. 일견 내 얘기 같았다. 그전에 위에서 인용한 개복치에 대한 글도 읽었는데, 본투비 평범한 월급쟁이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되뇌며 일의 의미를 찾는 나에게 흥미로운 글이었다.


개복치는 이렇게 생겼다고 한다. 꼭 개복치답게 생겼네.


아무튼 지난해 3·4분기는 하마 같고 또 개복치 같은 나를 다시 발견한 시간들이었다. 그냥 일을 할 수 있기만 하면 되는데, 조직 간 이해관계 이슈나 생각지도 못한 변수로 일이 딜레이 되거나 펜딩되는 것들이 계속돼 날 지치게 했다. 나조차 납득되지 않는 걸 다른 사람에게 납득시켜야 하는 처지상 뭐든 그냥 지나치고 넘기기 어려웠다. 역시나 회사(상사)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내 팀)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괴로웠다.


힘들면 쉬어가거나 조금 외면했어도 되는데 나를 벼랑 끝까지 내몰았다. 그래야 직성이 풀렸다. 육아휴직을 고작 2개월 쓰고 서둘러 돌아갔던 이전 직장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평가 불이익 앞에 내가 택했던 건 하마처럼, 개복치처럼 무식하게 들이받고 무작정 일을 쳐낸 것뿐이었다. 그러고도 나만 다치고 튕겨져 나오고 말았는데, 이번에도 달리 방법을 못 찾았다.


난생처음 (?) 아웃바운드 영업을 해봤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나 스스로 돌파구를 찾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내 일, 팀의 존재 이유 등 확실한 명분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끝내 답을 찾았다고 장담하기 어렵지만, 사실 그간 줄곧 해온 일들이 결국 세일즈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정리하긴 했다. 내가 가진 콘텐츠(글)와 영향력(바이라인)을 팔아서 누군가를 사귀고, 정보를 얻고 그것을 또다시 콘텐츠와 영향력으로 재생산해 밥벌이를 했으니 말이다. 직장생활을 한 뒤로도 퍼블리시되는 형태만 다를 뿐 일의 본질과 행태는 같았던 것 같다. 암튼 결과적으론 12월까지, 아주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던 휴가 전전날까지 몰아치듯 일했다. 인스타그램에는 아래같이 짧은 소회 글도 적었다.


처음부터 팔려고 생각한 건 아닌데, 그러겠다고 작정한 뒤 장장 한 달여간 30군데 이상 직접 찾아가거나 콜드 메일을 보내고 연락했다. 당연히(?) 1/3 이상 거절당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당위성이 있고 정중한 곳들이 있었는데 대개 사업의 목적이나 정체성이 분명한 브랜드들이었다. 이번엔 어렵지만 협업할 수 있는 다른 방향성을 만들어내자고 제안하는 곳도 있었다. 여러 차례 연락을 해도 답변을 최대한 미루거나 끝내 하지 않는 곳들도 있었다. 품격은 보이지 않는데서 드러낸다. 마찬가지로 상대도 우리 브랜드만의 근성을 알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두세 달 가량의 담금질을 끝내고 이번 주부터 본격적으로 하나씩 물건을 내놓고 선보이고 있다. 사실 *메프에서 팔면 간단하고 쉽고 편한데, 그러지 않았다. 확실한 취향 접점에서 우리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싶었다. 과정에서의 애로점을 말하자면 끝도 없지만 ㅎㅎ 어쨌든 이번 플젝을 하면서 일에 대한 좀 더 또렷한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낸 것 같다. 늘 그렇지만 쉽게 좌절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항상 말로만 하는 기획을 이렇게 훌륭한 비주얼과 물성을 가진 것들로 뚝딱 만들어 내주는 우리 팀원들 대단! 배우는 게 (그리고 미안한 게) 많습니다. 2019.12


두 번째 직장(실은 처음이나 다름없던 조직 생활)에서 한동안 아침이면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이 그날의 인사 부고를 챙기는 것이었다. 관계가 있는 곳이면 난이나 부조를 보내는 것도 말단 직원인 나의 일이었다. 그 일 자체의 무용함을 떠나 어쨌든 현실에서의 조직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의 괴리는 언제나 벌어진다. 하지만 지나 보면 이것도 해야 저것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어떻게 보면 가장 귀찮은 일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업무의 성실성은 지금 내가 열성을 다해하는 일이 아니라 그냥 기본적이고 루틴한 일에서 나타나기도 하니 말이다. “내가 지금 이걸 하고 있어요”라고 티를 내듯 말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그냥 그 일을 ‘이미’ 하고 하는 것. 그리고 묻기 전에 ‘먼저’ 공유하는 것. 그리고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걸 알게 모르게 바꾸고 있는지 자랑스러워하고 매일 같이 생각하는 것. 그게 진짜 일에 대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어떤 자리에 앉아 있으니 누가 그렇게 일을 하고 있는지도 보인다. '라떼는말이야'도 아니고. 나는 그렇게 일했었다고 젠체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냥 그렇단 얘기다.


혼자 일하면 일할수록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수많은 미팅의 경험이 나중에 쓸 수 있는 총알처럼 내 안에 축적되었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특히 생소한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예상치 못한 역학관계가 펼쳐질 때,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한복판에 있을 때, 과거에 보았던 수많은 사례 중 어떤 장면들이 떠오르며 나를 이끌어주곤 한다. 성공적이었던 미팅과 엉망진창이었던 미팅, 하나마나였던 미팅들이 내게 어떤 식으로든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각양각색의 상사들과 일했고, 그들이 제각각의 방식으로 상대를 설득하거나 정보를 얻어내려 시도하고, 그 시도에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았다. 그리고 지금은 나를 그렇게 '끌고 다닌' 것이 그들에게도 수고로운 일이었으며, 그들이 그렇게 수고하게끔 이끈 배경에는 조직의 의지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제현주 <일하는 마음>


다만 어느덧 네 번째 직장, 그리고 첫 매니저로 일하는 지금은 일에 대한 생각이 이렇게 간단치가 않다. 단지 역할이 주어졌다고 해서 나 말고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일에 대한 어떤 헌신을 무조건 강요할 수 있는가. 그럴 경우 성취감 말고, 그 이외에 무엇을 보상으로 줄 수 있나. 그런 자괴감이 덧붙기 때문이다.


벌려놓은 일들의 뒷수습을 하면서 몸이 닳자 그제야 나 때문에 고생 중인 다른 팀원들이 보였고 더 괴로웠다. 내가 제대로 평가하고 보상할 수 없는 조직 안에서 일에 대한 공동체를 나는 어디까지 강조할 수 있을까? 얼마 전 분기 평가를 끝냈다. 성과와 관계없이 등급을 배분해야 하는 무자비한 시스템에서 "우리가 단순히 점수로 평가되지 않는 일. 기존에 없던 일의 형체를 만들어 가고 있는 거,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듣고 놀라고 있다는 거에 자긍심 가지면 좋겠다"는 어찌 보면 그럴싸하지만 공허한 이야기를 던져놓고 그 속에 제 각자 나름의 의미를 찾길 바라면서 누구한테 알아 달라도 못하는 마음은 퍽 애달프다.


더이상 나 혼자만 일하는 게 아니라, 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회사를 다닌다. 책 <일하는 마음>에서 와닿았던 ‘책임의 동심원’
지난해 나의 키워드는 '원'이었다. 팀원이자 아끼는 후배가 보내준 리더십에 대한 설교 말씀 중 보았던 ‘영향력의 원’
그리고 요즘 내 딸의 원. 온통 동그라미들.


어쨌든, 요즘은 정신없이 바쁘던 일이 소강상태인데, 제버릇 못 고치고 다시금 고개를 드는 조급함과 무료함을 다독거리며 어떤 마음으로 일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뭐 별 수 있나.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하마와 개복치로 살아야지.


+ 덧붙여 기록하는 내 시간들. 글을 쓰지 못한 지난 3개월 간, 물건도 만들어 팔아보고, 소정의 고료를 받아 에세이도 썼고, 해외 이민을 간 친구 집으로 10일간 여행도 다녀왔다. 아, 집도 곧 삽질 시작이다. 정말 매일이 이벤트인 내 인생 다채로워라. 2020년은 저지르고 보는 성격 좀 죽이자... 다짐. 나의 행운을 빕니다.


요즘처럼 스스로 행운을 빌면서 일한 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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