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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thaul Nov 06. 2017

원스

마법에서 경험이 된 영화

2007년, 서울극장에서 <원스>를 처음 봤다. 참 좋은 영화인데, 내 취향은 아냐. 이게 첫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O.S.T. 를 들었고 계속 듣다가 대여용 DVD가 나오자 대여해서 또 봤다. 그리고 그다음 날, 반납하기 전에 또 봤다. 반년도 지나지 않고 EBS에서 방송한다고 또 봤다. <원스>는 내게 그런 영화다. <파이트 클럽>과 <올드보이>, <매트릭스> 등 장르영화를 신봉하던 내가 한동안 '최고의 영화'라고 불렀던.


2017년의 <원스>는 좀 낯설다. 커다란 극장에서, 이제는 아이맥스니 4K니 하는 시기에 자글거리는 영상은 향수보단 이질감이 강하다. 그야말로 '일단 찍어야지'란 느낌이 강한 쇼트도 종종 있어서 인디 뮤지션의 뮤직비디오 같은 느낌도 들곤 한다. 주연배우들이 생판 남이었던 예전과 달리 이들은 이제 내게도 '배우' 혹은 '가수'의 이미지가 강하니 몰입이 되다가도 문득 웃음이 터진다.


그렇다고 <원스>를 '촌스러운 영화'로 치부할 수 없다. 이 영화는 나의 성향을 흔들었던 작품이고, 존 카니의 음악 영화 삼부작에서 가장 솔직하며, 이러나저러나 여전히 최고의 음악을 선물해준다. 영화 속 남자와 소녀의 한순간처럼 글렌 한사드와 마르게타 이글로바의 찰나이며 영화를 봤던 관객들의 추억이 겹겹이 쌓인 영화다.


시간이 흐르자 <원스>를 감싼 음악의 힘은 더 커진 듯하다. 영화는 딱 세 번만 음악과 노래의 시간을 일치시킨다. 남자의 "Say It to Me Now"와 두 주인공의 "Falling Slowly", 소녀의 "The Hill"이다. 그 외의 곡은 일부분만 나오거나, 음악에 다른 시간이 섞이거나("If You Want Me"의 남자 코러스), 영상에 다른 시간이 섞인다("Lies"의 푸티지). 그러니까 이 영화의 핵심 곡은 이 세 가지(에 첫 녹음하는 "When your minds made up" 정도)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둘의 사이는 더 가까워질 수 없었다. 남자는 과거 연인을 연상시키는 노래를 불렀고(소녀가 듣자마자 "누구한테 쓴 곡이에요?" 물었던 것처럼), 여자는 아직도 남편을 기억하는 노래를 불렀다. 영화는 그 곡들만을 온전히 두 사람의 시간에 맞춰놨다. 관객들은 음악에 마법에 걸려 시간들이 봉합되는 걸 목격했듯 두 사람의 사이도 가능성이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애초부터 예견된 수순이었던 셈이다.


처음 만나는 관객에겐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원스>는 더 이상 마법이 아니다. 이 영화를 향한 찬사들은 순수할 정도로 만개했던 진실함을 가렸고, 10여 년의 시간은 시작부터 빈티지했던 영화를 더 낡은 것으로 위장시키고 힜다. 거칠고 투박한 대신 진심이었던 영화는 이미 너무 많이 재생되고 회자됐다. 


대신 난 이 영화가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원스>는 그 제목처럼 일생에 단 한번 찾아오는 순간, 혹은 이미 지난 시간과의 재회를 마련해준다. <원스>는 위대한 음악과 그것이 동반하는 감정을 관객들에게 충실하게 부여한다. 순간이란 단어가 가진 힘처럼, <원스>는 관객을 압도하는 정서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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