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진짜 하고 싶은 걸 다 해버리면 어떡해
정보가 하나씩 공개될수록 기대가 안 되는 의아함. <군함도>가 그랬다.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다 했을 때 가장 좋았고, 배우들 캐스팅이 공개되면서 미묘했다가 티저 포스터를 보고 완전히 식었었다.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 류승완 감독 영화가 이렇게 기대 안될 수도 있구나 놀랐다.
요점 정리하면 이렇다. 소재가 좋은데 영화가 별로다. 거기다 스크린 독과점까지 했다. 하나만 했어도 비난받기 십상인데, <군함도>는 다 갖췄다. 큰 규모에 A급 배우에 어설픈 내용에 역대 최다 스크린까지. '군함도'라는 소재로 '쉴드'를 받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독이 됐다.
영화만 논해보겠다. <군함도>는 전적으로 극영화다. 관객들이 기대했을 내용보다 인물들이 서로의 삶을 위해 이익을 챙겨나가는 내용이 더 많다. 군함도가 배경이 아니었더라면, 일제강점기 속 조선인들의 <부당거래>라 해도 좋을 정도다.
아무리 상대가 징용자들이라 해도 그런 권모술수나 정치적인 상황들은 이미 상투적인 게 문제다. 만일 이 영화가 <내부자들>이 불러온 '정치범죄영화 붐' 이전에 나왔다면 더 흥미진진했을 것이다. 하지만 2016년부터 시작된 '정치범죄영화 붐'은 아직도 계속되고, 심지어 다른 장르에 녹아드는 지경이다. '군함도'를 가지고 굳이 서로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노는 영화라니, 관객들이 느낀 배신감의 근원인 셈이다.
그렇다고 그런 장르적 색채가 좋냐? 아니다. 그 과정을 빽빽하게 채워 넣기에 하지마의 조선인들은 자유롭지 못했고, 그러니 대강 '이런 상황이야'라고 보여주면서 전개해나갈 뿐이다. 이강옥(황정민)이 강제징용자들 사이에서 부유층이 되는 건, 여러 범죄 영화에서 그려지는 '교도소 속 부자'와 다를 게 없다.
가장 어처구니없는 건 박무영(송중기)의 등장이다. 누가 봐도 영화의 줄기 같던 최칠성(소지섭)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박무영을 앉혔는데, 이 인물이 하는 거라곤 극을 "이렇게 끌고 나가야 하"는 '기능'밖에 없다. 군인 캐릭터가 본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지만, 등장도 갑작스러운 인물이 냉정해 보이니 관객들이 어떻게 마음을 줄 수 있겠는가.
사실 처음부터 영화의 축을 맡는 이강옥도 썩 믿음직스러운 인물도 아니고 최칠성은 아예 조선인의 입장과는 무관한 인물이다. 그나마 오말년(이정현)을 가장 성실하게 그리지만 최칠성과의 대화 장면 이후 영화에서 자취를 감춘다. 영화 전체가 누구에게 기대야 할지 관객 입장에선 의문만 생긴다.
영화가 시작했으니 어쨌든 끝을 봐야 하지 않나. 그래서 다시 정치적 장르물로 변모하더니 갑자기 민중봉기를 결정짓고 하지마를 탈출하기 위한 후반부 액션 장면이 펼쳐진다. 정해진대로, 이미 벌어진 역사에 그저 픽션을 끼얹을 뿐이다.
다행이라면 류승완 감독이 액션에 능하다는 사실이다. 최칠성과 송종구(김민재)의 목욕탕 싸움도 그렇고 후반부 액션도 볼 만하다. 여전히 그 안의 전개가 허접해서 문제지만.
영화가 이러니 가장 빛나는 건 김수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강옥의 딸답게 아버지를 사랑하고 능청스럽게 삶을 이어가려는 의지가 엿보일 때, 김수안은 그 순간들을 자신의 에너지로 채운다. 극적인 상황도 일조하지만, <부산행> 속 모습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멀티캐스팅을 하고 인물을 평면적으로 그리면 어떻게 되는지 <군함도>는 보여준다. 소재와 이야기의 목적이 불일치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군함도>는 보여준다. 알맞은 자리에 알맞은 이야기가 필요하단 걸 이번 영화를 통해 자본을 가진 회사들이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