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껍데기로도 힘든 부실한 내용
나만 몰랐나 싶다. <러빙 빈센트>가 빈센트 반 고흐의 일대기가 아닌, 그의 사후를 그린다는 걸. 한참 전에 공개된 고흐가 돌아보는 장면 덕에 시종일관 기다렸지만, 어째 그럴싸한 영상과 많은 화가들의 열정을 빼면 그다지 눈여겨볼 이유가 없는 애니메이션이 되고 말았다.
영화가 시작하면 스크린에서 눈이 뗄 수 없는 건 사실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화풍을 그대로 옮긴 영상은 매 순간마다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고, 특히 예상외로 사실적인 감각을 줘 '그림이 움직인다'는 느낌을 고스란히 안겨준다. 이 부분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거라 장담한다.
하지만 영화의 구성은 진부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이 빼어난 영상에 그저 이런 내용이라니, 싶다. 아르망은 고흐의 편지를 전하고자 그가 관계된 인물들을 만나고 그러면서 고흐의 생전 모습을 점차 알게 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적 있나? 그 유명한 영화 걸작 <시민 케인>를 비롯, 수많은 영화들이 사용한 구조다.
그래서 <러빙 빈센트>는 영상으로 최대한 다양한 뉘앙스를 포착한다. 과거와 현재는 분명히 다르고, 현재에서도 인물의 심리나 시간대에 따라 판이하게 다르다. 하지만 이게, 현재는 이런 식이고 과거는 이런 식의 영상이 90분 동안 반복되면 자연스럽게 관객은 이야기에 눈을 돌리게 되는데, 그 이야기가 진부한 구조에 별 다를 것 없으니 굳이 이런 식의 영상을 취해야 했나 갸우뚱하게 된다.
스토리의 부실함은 도리어 보는 내가 아쉬울 정도다. 영상은 정말 스크린을 만지고 싶을 만큼 유화의 질감이 살아있고, 배우들의 연기는 그들의 목소리와 프레임의 표정의 조화도 더 깊이 있을 지경이며, 종종 언급되는 빈센트 반 고흐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상상력을 준다. 하지만 그 모든 걸 이끌어야 할 스토리가 도돌이표 같은 이야기만 반복하고, 심지어 결정적인 심상조차 남기지 못하니 영화가 끝난 이후 금방 휘발되고 만다.
만일 카페를 차린다면, 혹은 집에 남는 스크린이 있다면 하루 종일 <러빙 빈센트>를 무한 재생하고 싶은 욕망까지 들 것이다. 다만 그것이 영화로서 좋아서인지, 아니면 이미지로서 아름다워서인지는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답이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