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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thaul Feb 27. 2019

살인마 잭의 집

그는 그래도 자신만의 것을 완성한다

잭은 어느 날 우발적으로 한 여자를 죽이게 된다. 이후 그는 예술을 성취한다는 마음으로 살인을 거듭한다. 심지어 자신이 찍은 살해 현장 사진을 언론에 보내 ‘교양살인마’라고 자칭한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집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는다.


참 간결한 스토리. 라스 폰 트리에는 이 이야기를 152분이란 기나긴 시간 동안 풀어낸다. 다른 영화들처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있는 것도, 안타고니스트가 등장해 사건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152분간 우리는 주인공 잭(맷 딜런)이 말하는 그의 살인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는 이쯤에서 질문을 떠올린다. 이 영화, 좋은 영화일까?

좋은 영화. <살인마 잭의 집>은 첫 공개부터 혐오감을 느낀 관객들이 중도 퇴장할 정도로 잔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일각에선 라스 폰 트리에의 자기변호로 가득한 영화라고 혹평했다. 그렇다면 이 영화, 나쁜 영화일까?


좋다는 게 무엇일까? 속된 말로 ‘구리다’의 반대말인 걸까. 아니면 ‘나쁘다’의 반대말인 걸까. 영화가 언제나 좋았던가? 한때는 영화가 프로파간다의 일환이었는데.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는 대체로 ‘좋다’라는 말과 어울렸던가? 그렇다면 <살인마 잭의 집>이 나빠도 나쁠 게 뭐 있겠나.


횡설수설하는 듯 보이겠지만, <살인마 잭의 집>이 이런 영화다. 라스 폰 트리에는 잭과 버지(브루노 강쯔)를 내세워 152분의 대화를 시작한다. 잭은 살인 또한 예술이라 하고, 버지는 여기에 반박한다. 그런 대화 속에 살인이 묘사되고, 잭이란 인물이 그려진다. 이 영화는 라스 폰 트리에가 내면에서 벌이는 자폐적 독백을 형상화한 것이다.


<살인마 잭의 집>은 그래서 영화의 구조를 파괴하는 데 온 힘을 다한다. 트리에 감독 전작들처럼 <살인마 잭의 집>도 독특한 특징이 있다. 잭의 ‘고백’ 중간에 다양한 영상을 삽입해 하이퍼텍스트 문학처럼 온갖 사색을 다 담았다는 거다. 잭은 예술을 고딕 양식, 회화 속 양, 풀을 베는 남자들 등등에 빗대어 말하고,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이걸 이미지로 보여준다. 그래서 이 작품은 스토리를 담은 소설보다, 이미지를 포착하는 시보다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에세이 같은 느낌을 준다.


이렇게 수많은 푸티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살인마 잭의 집>을 한 번의 감상으로 풀어내기엔 한계를 느낀다. 어쩌면 너무도 솔직한 용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털어냈기에 그걸 해석하는 게 무의미한 행위 같기도 하다.


다만 <살인마 잭의 집>은 결코 무의미한 영화가 아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잭이 작품 중간 예술가에 대해 언급할 때 자신의 전작 일부를 담았다. 이 <살인마 잭의 집>이 명백하게 자신의 세계를 담으며, 그간의 자신을 규정하(려는 노력이 담겼)다는 걸 의미한다. 어쩌면 이 괴상망측한 감독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할 수 있는 게 이 작품인지도 모르겠다.


또 2018년의 사회 분위기 속에 <살인마 잭의 집>을 두고 봐도 흥미롭다. 이른바 윤리적 올바름이 중대사안인 2010년대 말에 연쇄살인마의 이야기라니. 의도적인 도발로 보이지 않는가. 실제로 라스 폰 트리에는 이 모든 걸 의도한 것마냥 영화 속 피해자들이 모두 여성임을 강조하고, 남성이 태어나면서 느끼는 죄의식을 언급한다. 재밌게도 그건 연쇄살인마 잭의 입에서 나오기 때문에, 수긍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을 유발한다.


개인적으로 이 사회적 분위기가 이 작품을 더 도드라지게 할 것이라 생각한다. 모두가 사회적으로 용인된 올바름을 찾으려 할 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그냥 자신의 얘기를 한다. 그것도 더 많은 게 허용되던 시절에도 비난받았던 스스로의 철학을. 그가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데도 이득 볼 건 없다. 이렇게 강한 수위의 영화가 돈을 벌 수가 있나, 아니면 대중의 공감을 살 수 있나. 그럼에도 그는 했다. 그게 그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니까. 모두가 비난할 줄 알면서도 한 고백이기에, 그의 선택은 (어쩔 수 없이) 더 눈에 띌 것이다.


<살인마 잭의 집>이 자신을 빗댄 이야기라면, 라스 폰 트리에는 아마 자신의 끝을 예감하고 있는 듯하다. 잭이 맞이한 결말이 자신에게 다가올 거라 예고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가, <살인마 잭의 집>에서 그리는 ‘지옥’이 그토록 강렬했던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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