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기도 전에 느껴지는 기시감 무엇
오랜 시간 기다린 끝에 돌아온 건 3편이 아닌 리부트였다. 기예르모 델 토로와 론 펄먼의 <헬보이> 시리즈가 막을 내리고 닐 마샬과 데이비드 하퍼의 <헬보이>가 시작된 것이다. 결과는? 오랜 기다림의 값은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게 로튼 10%대의 작품인가, 물으면 그만큼은 아니다. <헬보이>는 적어도 본분에 충실한다. 방대한 배경을 바탕으로 나름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문제는 이 방식이다. 지난 몇 년간 나온 ‘B급 히어로’의 작품들을 너무 많이 의식했고, 그래서 동의 반복적인 기시감을 지울 수 없다. 기존의 색은 지웠지만, 자신의 색은 찾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음악의 사용이다. 앞서 언급한 ‘B급 히어로’ 영화들은 대체로 음악을 기막히게 사용했다. 딱 생각나는 <데드풀>이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그 예다. <헬보이>도 그런 유쾌한, 경쾌한 에너지를 위해 삽입곡을 잔뜩 사용한다. 장소가 전환되는 타이밍에. 이 방식이 유효할 때도 있지만, 초반에만 그렇다. 그 이후에는 장소가 바뀔 때마다 음악을 사용하는 게 구태의연하게만 느껴진다. 다른 영화에서도 접한 이런 방식을 <헬보이> 안에서만 몇 번이고 반복하니, 지겹지 않은 게 이상하다.
두 번째는 인물의 구축 방식이다. <헬보이>는 이전처럼 영웅이고자 하는 파괴자의 운명을 타고난 헬보이가 주인공이다. 그런데 이 캐릭터의 탄생을 초반이 지날 쯤에야 설명한다. 전작이나 원작을 하는 팬들에겐 굳이 반복할 필요가 있나 싶고, 이 영화로 입문하는 팬들에겐 다소 뜬금없을 것이다. 변화를 주고자 이 장면에 신 캐릭터를 보여주지만, 작품에 크게 중요한 인물은 아니라 금방 잊히고 만다. 헬보이가 주인공인데, 니무에를 소개하는 도입부가 과연 옳은지 잘 모르겠다.
이상하리만큼 불안한 촬영도 <헬보이>의 단점이다. 작중 트래킹 줌아웃을 사용하는 장면이 있는데, 위아래로 흔들리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배우들의 액팅이나 뉘앙스가 전 컷과 튀는 일도 비일비재다.
헬보이 분장도 문제다. 배우의 얼굴에 얼마나 분장을 했는지 몰라도, 연기하는 배우의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아 헬보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초반부와 중후반부의 헬보이 얼굴이 다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단점들 때문에 <헬보이>는 하나의 작품이라기보다, 드라마 에피소드를 편집으로 묶어낸 극장판처럼 느껴진다. 종말을 오가는 와중의 유머 욕심, 장소를 이동할 때의 시간 개념은 활극처럼 보이기 위한 장치라 해도, 앞서 언급한 단점은 관객들의 몰입감을 깨는 큰 문제점이다.
그래도 <헬보이>엔 장점이 있다. 종말을, 정말 종말답게 그려낸다는 것이다. 최근 많은 블록버스터들이 ‘세계의 존속 여부’를 그리면서도 싱겁게 도시나 국가 하나 부서지는 장면들을 그리곤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고어, 호러를 섞은 <헬보이>는 정말 놀라운 아포칼립스를 묘사해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극 중 등장하는 존재의 디자인도 아트워크를 찾고 싶을 만큼 흥미롭다.
반대로 말하면 <헬보이>는 영화 클라이맥스의 종말 장면을 빼면, 굉장히 지지부진하다. 그냥저냥 팝콘을 먹으며 시간 보내기엔 적당할지 몰라도, <헬보이> 시리즈의 리부트라는 막대한 임무에는 실패했다. 이래저래 속편을 예고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있지만, 이미 흥행 성적은 처참하다. 촬영 기간에 있었던 루머도 무시할 수 없다. <헬보이>는 새롭게 부활했으나, 다시 지옥으로 돌아갈 시간인 듯하다.
+좋은 장면이 하나 더 있다. 트롤 사냥 장면. CG티가 역력하게 나지만, 보여주고 싶은 액션 장면을 그럭저럭 재현하는 데 성공했으니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