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thaul May 09. 2019

걸캅스

진짜 문제는 스토리도, 개그도, 의도도 아녔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코미디 영화는 보고 웃기면 장땡이다. 많은 누리꾼들이 ‘예상 드립’, ‘시나리오 유출’ 등으로 이 영화의 흐름을 읽어냈지만, 설령 그게 100% 적중률이라 해도 다른 부분에서 웃겼으면 된다. <걸캅스>는 거기서 실패한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를 안은 채 관객들을 맞이한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범죄를 기반으로 한다. 디지털 성범죄. 지금 이 시점에서 이 문제를 다루려면 결코 희화화돼서도 안 되고, 간편하게 다뤄도 안된다. <걸캅스>는 그런 위험부담을 안고 시작한다. 그러다 영화를 끌고 가는 코미디 스타일과 소재의 무게감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초중반까지만 해도 영화의 유머는 웃을 만하다. 배우들이 던지는 찰진 욕설이나 대사들은 그래도 웃긴 편이고, 주어진 상황이 다소 오글거리거나 어색하긴 해도 코미디 영화라는 장르에서 허용할 수 있는 범위에 있다. 문제는 이 범죄가 생각보다 현실과 더 닮았는데, 극에서 어떤 태도로 다뤄야 할지 오락가락하면서부터다. 거기다 <걸캅스>는 때때로 메타적인 코미디를 넣는데, 이런 식의 유머가 현실을 반영한 범죄의 톤과 완전히 어긋난다. 


이 부분을 조정해야 하는 건 작품 전체를 보는 연출과 그 상황을 맞닥뜨린 (실제로 그런 사회에 살고 있는) 배우들의 몫이다. 박미영 역 라미란의 능수능란한 연기는 이 부분에서 역량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사건을 중요시하고, 피해자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조지혜 역의 이성경은 이번에도 연기력이 부족하단 걸 보여주고 만다. 양장미 역의 수영은 호평을 받았는데, 그의 역할이 사건의 진중함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코믹한 중반부를 지나가면, <걸캅스>는 극도로 무너진다. 앞서 언급한 이성경의 애매한 연기 외에도 곳곳에서 문제점이 드러난다. 웃긴 상황을 위해 시간적 개념을 무너뜨린 인물이나 장소의 변화, 지나치게 메시지를 강조하는 장면, 관객들도 대충 알고 있을 ’경찰’ 같은 공권력이 갖고 있는 시스템의 붕괴 등이 속출한다. 그래서 ‘웃기기만 하면 되지’라고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조차 나중에는 실소만 짓게 만든다.


사실 이 모든 문제는 일명 ‘한국형 코미디’가 자주 범하는 문제다. <걸캅스>라고 이런 문제가 더 치명적인 건 아니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촬영이다. 이 영화의 색감은 영화 내내 이상하다. 1990년대 같은 과거와 2019년 현재의 화면이 모두 과거 장면처럼 보인다. 놀랍게도 한 씬에 순간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이상한 색감 때문에 서울이란 친숙한 배경이 합성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촬영 문제는 특히 클럽 장면에서 도드라진다. 클럽 특유의 조명을 재현한다고 시종일관 화면이 번쩍거리는 건 관객들의 시각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음이 여실히 보인다. 촬영 장비를 바꿨는지 다른 장면과의 이질감도 심하다. 이외의 장면도 앞서 말한 색감 때문에 도통 진지하거나, 중요하거나,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걸캅스>는 상업 영화이자, 코미디 영화이자, 여성 영화를 표방한다. 이중 성공적으로 성취한 건 여성 영화 정도밖에 없다. 상업 영화라기엔 기초적인 기술 문제가 심각하고, 코미디라기엔 유머의 적중률이 굉장히 애매하다. <걸캅스>가 ‘예상 답변’에서 벗어나길 바랐지만, 아쉽게도 답습보다 더 질 나쁜 결과물이란 걸 직시해야 했다. 통쾌한 결말과 달리 관객이 안고 가는 건 씁쓸한 뒷맛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헬보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