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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thaul Oct 11. 2019

2019년 24회 BIFF 관람기

5편의 영화를 만나다

2019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다. 방문 기간은 10월 5일부터 7일. 7일이 상경길이라 영화는 포기했으니 실질적으로 이틀만 영화를 관람했다고 할 수 있다. 이틀간 총 다섯 편의 영화를 봤다. 다른 사람들처럼 기대작을 예매하거나 미리 가서 줄을 서서 티켓을 구매할 만큼 부지런하지 못해 자리가 있는 영화 중 내키는 것을 골랐다. 다섯 편 모두 국내에 개봉할 가능성이 저조해 보이니, 각 영화의 감상을 간단하게나마 한 편으로 모아 게시한다. 인명, 지명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탓에 인물의 이름이나 지역명은 잘못 기입했을 수도 있음을 미리 말씀드린다.


<화이트 온 화이트>

테오 코트 / Alfredo CASTRO, Lars RUDOLPH, Lola RUBIO, Esther VEGA, Alejandro GOIC / 100min

사진사 페트로는 지주가 결혼할 어린 신부의 사진을 찍기 위해 티아레 델 푸에고에 온다. 식을 올린 후에야 남은 돈을 받을 수 있는 페트로는 기다린다. 하지만 식은 미뤄지고, 페트로는 마을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 된다.

<화이트 온 화이트>는 다분히 흥미로운 영화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실존하는 권력인 지주는 대표적인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리게 한다. 마치 페트로의 직업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듯 광활한 풍경을 담는 와이드숏과 인물의 표정을 담아내는 클로즈업의 교차가 아름다움을 뽐낸다.


또 배경이 20세기 초반인 만큼 페트로의 사진 촬영 작업이 하나의 행위로 빛을 발한다. 지금이야 ‘찰칵’하고 간편하게 담기는 순간이 이 당시엔 적어도 20초는 기다려서 상을 포착하는 인내의 결과물이다. 페트로의 사진은 결국 관객이 목도하고 있는 이 영화와 다를 바가 없기에 우리는 시간이란 속성을 다시금 체감할 수밖에 없다. 신부의 아름다움을 담기 위해 집착하는 모습 또한 윤리와 예술성의 미묘한 긴장감을 연상시킨다.


이 사진을 찍는 행위와 페트로가 결국 ‘밥값’을 하기 위해 주민들과 원주민 몰이에 나서는 과정은 현재 강대국이라 불리는 국가가 오랜 시간 정의로운 이미지를 주조하는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화이트 온 화이트>는 다층적인 텍스트를 안고 있지만, 대신 정말 상당히 느리고 지루하다. 복합적인 텍스트를 다뤄도 이를 관통하는 갈등이나 메인 플롯이 있으면 나은데, 이 영화는 그것이 부재하다. 덕분에 지지부진한 이야기를 견뎌야 꽤 멋진 엔딩을 맞이할 수 있다. 확실하진 않지만, 이 영화를 볼 때 상영관에서 여덟 명가량이 나간 듯했다. 솔직히 그 마음, 나도 이해됐다.


<즐거운 우리 집>

짠 우 단 / HY MINH, HANG BICH, PHUONG DUY, TIEN HUU, DIEU PHI, THANH HUU / 86min

사고를 당해 6개월 만에 집에 온 아들 탄. 할아버지는 몸져누워 생을 마감하기 직전이고, 아버지와 어머니, 삼촌은 미묘하게 서로를 견제한다. 탄은 여동생처럼 여기는 사촌이 사라졌단 걸 알게 된다.


올해 정신없이 작품을 고르긴 했다. 호러 영화인 줄도 모르고 이 영화를 봤다. 베트남 호러 <즐거운 우리 집>은 중반까지는 쏠쏠하게 재밌다. 오프닝으로 어떤 사건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이후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이 상황을 전혀 모르는 탄을 등장시켜 관객들도 이 음침한 가족 간의 관계를 관찰하게 한다.


베트남 특유의 습한 기운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긴 <즐거운 우리 집>은 밀실 스릴러와 오컬트 호러를 교묘하게 오간다. 호러라면 치를 떠는 필자도 과연 이 가족의 비밀이 무엇인지 궁금해 좌석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는 다채로운 변화를 주기보다 원 패턴에 그저 설명을 더하는 수준에 머문다. 낮이 되면 탄은 사촌을 찾다가 가족들의 변화를 느끼고, 밤이 되면 잠들다가 악몽을 꾸는. 이 패턴이 반복되고 만다.

특히 중반 이후 스토리 전개가 여러 차례 전복되는데, 하필이면 마지막 복선 회수가 최악이다. 이 반전 때문에 영화 전체가 유지했던 분위기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영화에 들어간 호러 장면들이 당위성을 잃고 만다. 


결국 <즐거운 우리 집>은 자신의 장점을 스스로 던져버리고 감성적인 드라마로 뛰어든다. 그곳에서라도 조심스럽게 안착하면 좋을 텐데, 베트남의 습기와 가족의 미스터리에 심취한 관객이라면 그저 빨리 자리를 뜨고 싶을 것이다.


<봄봄>

리 지 / MINCHENG LI / SUXI REN / WEIRAN HE / 98min

치치하르시의 공장 노동자 따촨은 다음달에 해고된다. 그나마 위로금이라도 받을 수 있는데, 얼떨결에 도둑으로 몰리면서 위로금도 없이 쫓겨난다. 공장 반장은 따촨이 직접 도둑을 잡아오면 위로금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따촨은 생활비를 벌면서 밤에 도둑을 잡기 위해 잠복한다.


사실 그렇다. 노동자를 그린 영화제 영화. 대강 그림이 그려진다. 하지만 <봄봄>은 달랐다. 오프닝에서 동베이성 지역의 상황을 적은 텍스트가 나오길래 사실적이고 건조한 영화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감독이 알리고 싶었던 메타적인 요소를 떼어놓고 봐도 <봄봄>은 만족스러운 극영화였다.


<봄봄> 속 노동자의 현실은 비참하다. 공장은 줄줄이 문 닫고, 위로금도 없이 해고돼 이 일 저 일 기웃거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봄봄>은 이 현실이 늘 비참하지도 않다는 걸 인정한다. 아무리 고돼도 우린 때때로 즐거운 순간을 만끽하고, 반대로 그 행복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봄봄>은 한 노동자의 불투명한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 미약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희망에도 눈길을 준다.


구태의연한 얘기지만, 영화는 하나의 컨셉이나 방향성을 유지할 때 관객들에게 인상을 남기기 쉽다. 그건 거꾸로 말하면 전혀 상반된 것을 혼합시키는 미묘한 선을 지킬 때 영화가 더 풍부해지고 돋보일 수 있음을 말한다. 희비극이 매혹적인 이유도, <기생충>이 올해 최고의 극찬을 받는 이유도 그 미묘한 카타르시스 때문이다.


<봄봄>이 딱 그렇다. 전반적으로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순간의 유머와 행복 또한 결코 놓치지 않는다. 최선의 답이 눈앞에 있는데도 고생을 자처한 따촨이 마침내 그 답을 받아들일 때, 그의 어리석음에 혀를 차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깊이 응원해주고 싶은 건 <봄봄>에서 그려진 그의 모습이 결코 우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본인은 마음에 들었지만, <봄봄>도 국내 개봉은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이 달짝지근한 맛을 다른 관객들과 더 나누고 싶은 마음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름들로 만든 노래>

프랑수아 지라르 / Tim ROTH, Clive OWEN, Gerran HOWELL, Jonah HAUER-KING, Misha HANDLEY,  Luke DOYLE, Marina HAMBRO / 113min 

마틴은 청소년 음악 경연대회를 심사하던 중 자신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도비디와 똑같은 버릇을 가진 참가자를 발견한다. 도비디는 첫 데뷔 무대를 앞두고 말도 없이 사라졌다. 마틴은 도비디의 흔적을 좇아 그가 사라진 이유를 추적해간다.


이번에 본 다섯 편 중 가장 개봉 가능성이 높은 영화. 왜? 팀 로스와 클라이브 오웬이 나오니까. 반면 영화를 끝까지 보면 출연진 이름값에 비해 개봉을 안 하겠구나 싶다. 영화의 주된 소재가 종교이기 때문이다.


마틴은 영국 런던에서 나고 자란 영국인이다. 그와 함께 지내게 된 도비디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건너온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다. 두 아이는 음악을 통해 서로의 생활을 공유하게 되지만, 끝내 종교나 혈통의 문제에서 서로가 똑같을 수 없음을 인지한다.


<이름들로 만든 노래>는 방대한 영화다. 영화는 거의 50년에 가까운 세월을 함축적으로 다룬다.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두 주인공의 직업에 맞춰 아름다운 연주를 감상할 수도 있지만, 영화 대부분은 마틴의 추적과 두 사람의 과거를 묘사하는 데 주력한다.


유명 배우에 음악이 곁들여진 미스터리 드라마. 여기까진 대중적인 작품처럼 보인다. 하지만 도비디가 사라진 이유에 깊이 들어갈수록 관객들 사이에서 극명한 호불호가 갈린다. 그가 사라진 원인이 인종, 종교와 연관이 있는데, 하필 그게 한국 관객에게 무척 낯설면서도 낯익은 유대인과 유대교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유대인은 우리에게 (홀로코스트의) ‘피해자’ 이미지다. <이름들로 만든 노래> 또한 그걸 묘사한다. 하지만 유대교는 낯선 종교를 넘어, ‘선민주의’ 종교로 부정적인 이미지다. 결국 상이하게 다른 두 이미지가 잘 섞이지 못해 관객의 몰입을 흔들리게 한다.


결정적으로 이 영화, 사실상 종교 영화라 봐도 무방한데 그 대상이 유대교라 많은 관객들을 벙찌게 한다. 도비디에겐 유대교가 종교 이상의 민족 정체성이기에 갑작스러운 변화를 맞이할 수 있겠으나 아무래도 동양권에선 워낙 낯선 종교라 관객 입장에선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때문에 팀 로스, 클라이브 오웬이란 인지도 있는 배우들이라도 이 영화를 한국에 개봉시킬 만큼의 여력이 될지 모르겠다. 과거 장면도 많은 만큼 두 배우 못지않게 아역 배우가 많이 나와서 비중도 주연이라 밀기 참 애매하고.


<미립자들>

블레이즈 해리슨 / Thomas DALOZ, Néa LUDERS, Salvatore FERRO, Léo COUILFORT, Nicolas MARCANT, Emma JOSSERAND / 98min

피에르는 과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다. 친구들과 밴드 합주도 하고, 때때로 대마를 피기도 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점점 미세한 변화가 생기고, 로신과 사랑을 꽃피운다. 그러다 가장 친한 친구 메루가 캠핑 도중 사라진다.


<미립자들>은 정말 특이한 영화다. 사실 영화라기보다 컨템퍼러리 미술 작품을 요리조리 엮은 느낌마저 든다. 분명히 캐릭터나 스토리가 있긴 한데, 이미지가 그 모든 걸 집어삼키는 형상이다.


SF를 좋아해서 봤지만, 작중 마을에 입자 가속기가 기동 중이란 것을 제외하면 SF랑은 거리가 멀다. 필자가 과못알이라 그런지 몰라도. 제목처럼 작품 전체가 과학적 물질에 위태로운 청춘의 삶을 빗대고 있음을 어림잡아 짐작할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파편적인 형태의 작품이라 구체적으로 리뷰를 하기엔 정보가 한참 모자라다. 감독은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이고, 배우들 역시 그 지역 실제 고등학생들 중 선별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립자들>의 스며든 이들의 모습은 몽환적이고 신비하니, 해리슨 감독이 기억하는 로망스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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