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최후의 날>
최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를 두고 “시네마가 아니다”라는 발언은 수많은 사람들의 설왕설래로 이어졌다. 여러 회사에선 자본을 쏟아부은 무언가로 영화보다 더 영화다운 장면이나 연출을 선보일 수 있다고 증명했다. 과거 영화란 단어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는 다른 매체에의 변용으로 영화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감히 말할 수 없다. 영화를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비평가들 또한 이것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는데 한낱 평범한 관객인 내가 그걸 알겠는가. 하지만 적어도 그 사례에 적합한 영화는 말할 수 있다. 비간 감독의 <지구 최후의 밤>이다.
<지구 최후의 밤>은 불가사의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한 남자가 어떤 여성을 찾는 과정을 그린다. 작중 여러 차례 언급되듯 탐정물의 전개 방식이다. 남자의 행적에 꿈과 과거, 기억이 뒤범벅돼 모호해지긴 하나 그 안에서 단서들을 담으며 허겁지겁 따라잡을 수 있다.
그런데 명확한 실체가 가까워질 때쯤, 비간 감독은 갑자기 영화를 두 동강 낸다. 방금 전과 전혀 다른 상황으로 장면을 넘긴 후 남자의 “자고 일어나니 아무도 없었다”는 대사로 퉁치고 뻔뻔하게 장면을 이어간다. 심지어 이 장면은, 엔딩까지 이어진다. (이런 표기는 없으나 누가 봐도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2부는 1부와 상이하게 연출돼 이게 같은 영화가 맞나 의아하게 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1부와 2부의 이질감은 전혀 없다. 영화를 목격한 관객들은 모두 동의할 것이다. 이질감은커녕 서로의 단서를 통해 하나로 결합되는 경험을 했노라고. 약 한 시간 가량 단 하나의 컷으로 진행되는 2부는 1부에서 제시한 것을 변용하여 각 인물들의 행동에 정서와 당위성을 세우고, 나아가 하나의 세계를 확립하기에 이른다.
2부의 도전이 압도적이어서 그렇지, 비간 감독의 연출력은 1부만으로도 빛이 난다. “그 여자가 나오면 꿈이란 걸 안다”는 독백으로 시작하는 첫 컷부터 관객은 이미 그의 비범함을 예감할 수 있다. 두 시간대를 교묘하게 잇는 터널 장면이나 수영장 장면 등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하지만 화면의 아름다움은 여타 영화에서도 만날 수 있다. <지구 최후의 밤>가 위대한 건 하나의 작품으로 존재하는 완결성에 있다. 이 영화의 최대 단점이라면 모호한 스토리인데, 막상 영화가 추구하는 꿈과 기억과 영화이란 추상적 관념에선 가장 뛰어난 점이 될 정도다. 즉 한 편의 이야기가 아니라 영상, 음악, 소재와 태도를 총합한 영화로서 설계됐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미 평단에서 분석한 비평글에 비하면 이 글은 고작 추천사 정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쓴 건 <지구 최후의 밤>를 보면서 느낀 경탄과 영화란 것에 대한 진정한 고민, 완벽하게 설계된 작품을 구현한 감독의 비전을 조금이나마 전하고 싶었다. 정말 지리멸렬하게 지루한 영화이기도 하나, 영화가 끝날 때까지 버틴다면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라 장담한다. 부디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필견하시기 바란다.
※ 7월에 개봉한 영화를 갑자기 쓰게 된 건 한국 영상자료원에서 3D 버전을 특별 상영했기 때문. <지구 최후의 밤>은 일부 장면을 3D로 촬영했으며, 국내에선 특별상영으로 처음 공개됐다. 3D를 내세운 영화 대부분이 디지털 배경을 선택해 인위적으로 원근감을 넣은 것과 달리 <지구 최후의 밤>은 실제 공간을 해집었다. 3D의 감각이 다른 것은 물론이고, 작품 또한 한층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