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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thaul Dec 29. 2019

21세기 영화계에 중요한 교훈을 남긴 두 영화

<캣츠> & <백두산>

극장가의 대목이라면 보통 세 가지를 뽑을 수 있다. 연초, 여름, 연말. 그리고 한국 한정 추석(북미라면 독립기념일). 특히 연말은 크리스마스와 한 해가 지났다는 들뜬 마음 때문에 영화를 보는 일이 폭등하는 시기 중 하나. 그런데 올해 연말 기대작들은 어째 영 시답잖다. 예고편부터 애매하더니 공개 직후 곧바로 혹평을 받아 누구보다 빠른 영화계 소식통들을 바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개봉하려고 했으면 개봉하는 게 답. 그렇게 <캣츠>와 <백두산>이 12월 연말 대목을 잡아보겠다고 나섰다. 둘 작품 모두 쟁쟁한 멀티 캐스팅으로 화제였고, 개봉 이후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CG가 거론되고 있으며, 미완성에 가까운 면모들로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캣츠>


<캣츠>는 뮤지컬, <백두산>은 액션을 표방하고 있음에도 두 작품 모두 본 입장에서 묘하게 비슷한 감상을 받았다. 소문만큼 불쾌하거나 이상한 영화는 아니지만, 그 작품만의 오리지널리티가 빛나는 부분은 거의 없고 배우들이 낭비되다시피 CG를 과장하고 있다.


먼저 <캣츠>를 보자. <캣츠>는 동명의 유명한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다. 그리고 그 뮤지컬은 또 노벨문학상 수상자 T. S. 엘리엇의 시를 모토로 한다. 한마디로 못해도 본전은 뽑는 최상의 안정성을 보장받은 조건이다. 그런데 톰 후퍼 감독은 이 작품을 뮤지컬의 분장, 아니면 (디지털 캐릭터 같은)완전히 다른 방식이 아닌 배우의 실사에 CG를 덧대는 방식을 선택했다.


톰 후퍼 감독의 의도는 이렇다. "(이 작품을 보면) T. S. 엘리엇이 고양이를 풍자하는 것만큼 사람들을 풍자하고 있다" "시의 진정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인간 고양이'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발췌 씨네플레이)


그의 말엔 일리가 있다. 그러나 나온 결과물을 보면 누구도 <캣츠>에서 인간의 풍자를 느낄 수 없다. 그저 인간도 고양이도 아닌 괴생명체에게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이걸 마냥 VFX팀을 비난할 수도 없다. 할리우드 영화라면 응당 사전 시각화(Previsualization)를 진행했을 텐데, 단순히 '인간 고양이 CG가 구리다'가 아니라 공간과 인물의 전체적인 비율도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진다. 고양이 같지 않다는 느낌은 얼굴뿐만 아니라 빈약한 털 묘사, 공간에 차지하는 인물의 부피가 적다는 것에서도 비롯된다. 이게 왜 문제냐 하면, <캣츠>의 공간은 CG가 아니다. 세트를 지었다. 뮤지컬 <캣츠>가 세트를 비대화해 인간 세계를 보는 고양이의 시선을 구체화한 것처럼. 톰 후퍼 감독은 그 방법을 고스란히 사용했는데, 카메라에 담기는 공간감이 무대를 보는 것과 다른 것을 염두하지 못한 듯하다. 아니면 세트와 인물의 비율을 잘못 계산했거나.

<캣츠> 메이킹 영상 중 일부. 이렇게 세트를 지었음에도 인간 세계에 던져진 고양이라는 느낌은 나지 않는다.

결국 톰 후퍼 감독의 실제 공간+반 디지털 캐릭터라는 시도는 완벽하게 실패했다. <캣츠>의 CG 문제는 늘씬한 인간형 캐릭터나 어색한 얼굴 합성도 있지만, 실물 세트란 선택이 공간과 인물 사이에서 발생한 이질감을 CG로도 가릴 수 없게 돼 쐐기를 박은 셈이다.


이렇게 복합적인 CG 사용의 문제는 결국 톰 후퍼 감독이 각 요소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는 의도를 표현하고자 '인간 고양이'를 선택했고, 무대에서처럼 과장된 세트를 사용했는데 이 CG와 실사를 결합하는 과정을 잘못 진행한 것이다. 왜? 의도와 비전만 앞서갔기 때문에.


이젠 <백두산>을 보자. 덱스터 스튜디오는 전작 <신과함께>로 CG의 능력을 한껏 과시했다. 하지만 동양 신화 배경과 판타지 장르의 만남이어서 무협 판타지 특유의 촌스러운 질감을 벗어나진 못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백두산>은 좀 더 매끄러워졌고, 관객에게 익숙한 풍경에 잘 녹아들었다.


<백두산>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해도, 분명 한국 영화에서 그동안 보여주지 못한 비주얼을 보여준 건 확실하다. 지진에 무너지는 서울의 풍경, 북한 철교 위에서의 레이싱 등은 한국 영화 중 웬만한 블록버스터도 보여주지 못한, 시도조차 꿈꾸지 못했을 장면일 것이다.

물에 휩쓸리는 이 장면도 볼만은 했으나, 정말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문제는 그것들이 정말 재밌냐는 점이다. <캣츠>가 이질감에 휘둘린다면, <백두산>은 기시감에 끌려간다. 분명 한국 영화에서는 신선한 장면이지만, 그 장면들을 곱씹어보면 여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한 번쯤 본 듯하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까놓고 말해서 정말 신선한 블록버스터가 더 찾기 힘들다. 재난물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그렇다 쳐도 <백두산>은 명백하게 한국이 배경인데도, 두 주인공이 말 줄이기 드립을 칠 때나 한국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만의 오리지널리티가 CG 기술력을 자랑하지만 어디서나 본듯한 액션 장인이 아니라 남북 관계 비유나 말장난 같은 코미디에 가장 많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런 장면들.

의도치 않게 12월 극장가에 뭉친 두 영화는 결국 한 가지를 시사한다. CG는 도구라는 것. 톰 후퍼라는 베테랑 감독도, 중견 감독 이해준과 신인 감독 김병서 콤비도 CG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톰 후퍼 감독은 CG라는 요소가 도구임은 알고 있었다. 그걸 자신의 의도를 위한 방법으로 선택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이전작들과 달리 써야 하는 것, 실제 배우에게 사용했을 때의 주의점, 카메라에 담긴 촬영본의 이질감은 끝내 살아남을 것이란 한계 등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배우의 얼굴을 그대로 둬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인간의 미적 기준'으로 캐릭터를 평가하게 한 것도 실수다.


반대로 <백두산>의 콤비 감독은 (두 감독에게 모든 권한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장르적 테두리에 갇혀 보여주는 것만 급급한 나머지 CG라는 도구를 안정적으로만 사용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장면들의 복제뿐이었으니까. 작품은 블록버스터를 표방하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언어가 맞붙는 장면들이 더 기억에 남는 것도 어쩌면 배우에게 진 빚일런지 모르겠다.


2019년 연말 기대작이었던 두 영화가 남긴 CG에 대한 방향성은 단순히 이 영화가 잘 만들었다, 못 만들었다 정도의 감상으로 끝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21세기에 들어서 VFX는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그 결과 만능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CG는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이다. CG를 가장 잘 사용한 영화로 늘 <조디악>이 빠지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데이비드 핀처는 드라마 장르임에도 당시 시대상을 위해 CG를 능수능란하게 배치했다. <백두산>을 만든 덱스터 스튜디오도 <1987>에서 1980년대 서울을 피부에 와 닿게 만든 적이 있다. 21세기에 연출자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캣츠>와 <백두산>은 실패로써 교훈을 남긴다. CG는 그저 방법이고 도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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