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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thaul Sep 06. 2017

낭만과 파괴의 액션

킬러의 보디가드 vs. 아토믹 블론드

두 영화를 보기 전까지, 서로 연상되는 영화가 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킬러의 보디가드>는 코미디 버디 무비를 표방했고, <아토믹 블론드>는 첩보 액션 영화로 규정지었으니 말이다.


두 영화가 닮았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 지점에 있다. <킬러의 보디가드>를 본 후 <아토믹 블론드>를 봤을 때 전자가 떠오른 건 두 영화 속 액션을 그리는 태도가 상이했기 때문이다. 전자는 액션으로 낭만을 재현했고, 후자는 액션으로 파괴를 담아냈다.


<킬러의 보디가드>의 액션은 낭만적이다. 동양 무협처럼 유려하거나 아름다운 액션을 그린단 건 아니다. 액션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관객이 걱정 없이 즐길 수 있게끔 구성했다는 의미다.


두 남자의 여정에는 적들이 쏟아지듯 나타난다. 하지만 이들이 누구인가. 각 업계에서 '트리플 A급'의 킬러와 보디가드다. 영화의 내용 대부분이 혼자서든 둘이서든 이 난관을 타개해가는 과정이다.


앞서 말한 '걱정 없이'는 두 주인공의 실력이 주는 믿음 때문이다. 거기에 시종일관 욕설 섞인 대화와 엇나간 타이밍으로 유쾌한 분위기를 이어가는 '코미디'와 두 사람이 끝까지 함께 할 거라는 '버디 무비'라는 특성도 일조한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액션 대부분이 총기를 사용하고 주변 환경이 개방적인 추격전이란 액션의 콘셉트가 마침표를 찍는다. 즉 물리적인 타격이 상대적으로 적고 두 사람의 외형엔 큰 손상이 가지 않는다. 실제로 <킬러의 보디가드>의 적들은 트루퍼 효과급의 명중률을 보여주기도 한다.


'코미디+버디 무비+총기·추격전'이란 특성의 조화는 관객들에게 얼마나 많은 적들을 마주하든 마음 놓고 그들을 '응원'할 수 있는 믿음을 준다. 이는 최근 많은 영화들에서 사용하는 현실적인 액션과 기조를 달리 하는, 오히려 고전적인 액션에 가깝다.


반면 <아토믹 블론드>는 전혀 다르다. 오프닝부터 누군가의 죽음을 보여주고, 온몸에 멍이 든 주인공의 모습을 먼저 보여준다. 이후 그는 이중첩자를 잡기 위한 적진으로 던져진다.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 공격당하기도 한다. 일련의 전개로 <아토믹 블론드>는 '주인공'이란 불가침의 개념을 희석시킨다.


영화의 시대는 언제인가. 007 제임스 본드가 활약하던 냉전 시대의 끝이 보이고 표면적인 '적'의 경계가 와해되는 시점이다. 이중첩자란 소재와 이 시대적인 배경이 맞물리며 각 인물들을 더욱 외롭게 만든다. 퍼시벌의 말처럼 '생존'이 중요해진 것이다.


제이슨 본의 등장으로 '스파이'가 고귀했던 시절은 막을 내렸다고 하지만, 그래도 냉전 시기의 스파이는 여전히 007이나 장 피에르 멜빌의 인물들처럼 고귀한, 혹은 의연한 이미지가 강하다. <아토믹 블론드>는 그 시절의 스파이를 불러오면서 맨몸액션을 결합시켜 그 이미지를 파괴한다.

그 과정이 가장 도드라지는 장면은 단연 ‘계단 롱테이크’다. 로레인이 KGB 요원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당하며 온몸이 멍드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영화 초반부터 쌓아왔던 차분하면서도 무적 같던 스파이가 상해를 입고 부서지는 과정은 냉전 시대의 낭만적인 스파이상을 생존을 위해 온 힘을 쏟아내야 하는 한 인간으로 끌어내린다. 스파이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있음을 스파이의 액션과 신체를 통해 표현한다.


'시대의 파괴'를 돕는 장치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O.S.T와 네온사인을 연상시키는 조명들이다. 이런 극적 요소들은 영화가 자신의 임무를 보고하는 로레인의 '회상'임에도 계속 제기된다. 두 요소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시대의 이미지를 탈피하면서 동시에 새롭게 구축시킨다. 스파이의 이미지를 파괴하는 액션과 함께 선악을 구분 짓게 하던 경계가 무너지고 모든 것이 혼재돼버리는 순간을 형상화한다.


'적과의 협력'이란 모티브는 유사하나 서술한 태도의 차이가 <킬러의 보디가드>와 <아토믹 블론드>를 새롭게 보게 한다. <킬러의 보디가드>는 현대를 배경으로 낭만적인 영화적 액션을 장착하고 <아토믹 블론드>는 기억 속 격동의 시기를 무대로 지극히 현대적인 액션을 선사한다. 두 영화는 그런 역설을 연출의 방향성으로 잡고 작품의 메시지까지 연결시킨다.


'내 사랑 바퀴벌레'를 읊조리는 <킬러의 보디가드>과 '씨O새끼'를 되새기는 <아토믹 블론드>. 결말마저 대비되는 이 두 영화, 마치 한국의 개봉 시기 조절 중 의도치 않게 탄생한 짝패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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