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thaul Mar 18. 2017

누구도 아닌 나 자신

겨울왕국 vs 모아나

꿈이자 로망이었지만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과거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에게 한없이 아름다웠지만 사회적으론 보수적이라는 지적이 이어졌었다. 한정된 여성의 역할, 동화보다 더 과장된 해피엔딩, 백인 외 인종에 대한 선입견 등이 은연중에 반복됐기 때문이다. 그랬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겨울왕국>을 기점으로, 정확히 말하면 월트 디즈니 사 자체가 문화의 다양성을 논하려는 태도를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모아나>는 그런 디즈니 행보의 정점이다.     


그 이전에도 디즈니가 그런 비난을 무시했던 건 아니다. 뮤지컬 장르 한정으로는 <뮬란> <헤라클레스> <노틀담의 꼽추> 등으로 세계를 확장해왔고 마지막 셀 애니메이션인 <공주와 개구리>는 아예 뉴올리언스를 배경으로 흑인 사회와 음악을 전면으로 내세웠다. 그럼에도 <겨울왕국>이 변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던 건 2013년 전 세계 1위라는 흥행 기록과 함께 전작 <라푼젤>에서 제시한 여성상을 좀 더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겨울왕국>에서는 엘사와 안나 자매를 주인공으로 세워 그간 디즈니 뮤지컬 애니메이션의 단점을 타파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전성기이자 프린세스의 대표작인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에서 보여줬던, 일탈을 꿈꾸는 여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을 만나 로맨스를 맞이하던 전개 양식을 벗어났다. 오히려 안나와 한스의 로맨스를 반전의 장치로 사용하면서 마치 자신들의 작품을 패러디하는 듯한 뉘앙스마저 풍겼다.     


그러나 역시 중요한 건 엘사의 역할이다. 엘사는 작품 내에서 스스로 가진 능력이 ‘공주’라는 직위에서는 상당히 불편한 힘이기에 상황이 꽤 박하다. 그의 능력은 그가 성취한 것이 아니라 선천적이기에 더 가혹하게 느껴진다. 그런 그가 작품에서 독립성을 획득하는 건 스스로의 능력을 인정하는 순간에 찾아온다.     


엘사는 그 어떤 남성하고도 로맨스가 형성되지 않고, 초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독립적인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 에렌델을 얼린 사건조차도 본인의 입장에선 역으로 상처가 될 만하다는 것도 인물의 풍부함을 더한다. 엘사는 지금까지 디즈니 프린세스가 가져왔던 모든 법칙들을 전부 타파한 셈이다. 


엘사는 라푼젤(<라푼젤>)의 선천적인 능력과 티아나(<공주와 개구리>)의 주체적인 성격이 적절하게 배합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그럴 능력이 있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순간 그의 세계가 확장되고 온건하게 구현될 수 있는 건 그동안 고귀한 신분 혹은 충분한 능력이 있었음에도 신세한탄이 담긴 넘버를 불렀던 전작들의 프린세스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렇다면 이후 나온 <모아나>는 어떤가. 이 작품을 보면서 가장 놀랐던 건 열대지방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I Am Moana (Song of the Ancestors)’라는 넘버였다. 이를 듣는 순간 이 노래는 <겨울왕국>의 ‘Let it go’의 다른 버전이란 생각을 들었다. 그 어떤 디즈니 뮤지컬 애니메이션에서도 주인공이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외친 적도, 심지어 곡의 제목마저 차지한 적은 없었다. 이것은 작품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일종의 ‘선언’처럼 보였다.      


모아나와 엘사 모두 기본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욕망-능력을 인정한다. 다만 차이는 두 가지 중 어떤 것을 더 중점에 두었는가로 볼 수 있다. ‘Let it go’에서 엘사는 스스로가 가진 능력을 인정함으로 스스로 해오고 싶었던 것을 자각한다. 반대로 ‘I Am Moana’에서 모아나는 자신이 스스로 해오고 싶었던 것, 그것을 알게 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기에 엘사는 자신만이 가진 독특한 특성, 독립적인 개체로서의 자신을 인정한다면 모아나는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유전적인 특성, 모든 세계가 빚어낸 자신을 인정한다. 폭설의 겨울과 폭염의 바다에서 두 공주가 부르는 노래는 서로 다른 듯해도 닮아있다. 특히 그런 ‘선언’의 주인공이 모아나가 폴리네시아인, 즉 백인 외의 인종이란 것 역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특별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뮤지컬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제외했지만 두 작품의 교두보는 역시 <주토피아>라고 볼 수 있다. 종에 상관없이 각자를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편견 없는 사회를 구축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 작품은 개개인이 가져야 하는 자신에 대한 자각과 그렇게 상대를 바라보는 법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작품으로 봤을 때 모아나가 완성도가 매우 높다고 하긴 어렵다. 비주얼적으로 아름답고 상쾌하지만 바다라는 광활한 배경에 본격적인 전개를 맡겨버린 특유의 유쾌함에만 기반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럼에도 <모아나>라는 작품이 갖은 태도는 최근 디즈니가 지향하고 있는 모든 ‘사상’의 대표 명제라고 할 수 있다. 

    

디즈니는 자신들이 인수한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와 마블 스튜디오의 작품에도 꾸준히 새로운 시선들을 드러내고 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작품들은 다소 이견이 있지만 스타워즈 사가에선 유례없이 여성과 흑인을 주인공으로 낙점해 과거 스타워즈와는 또 다른 궤도를 취하고 있다. 추진 중인 실사 영화화의 두 번째 작품인 <미녀와 야수>에선 르푸를 게이로 만들어 <겨울왕국>에서도 제시된 성소수자에 대한 시선도 곁들였다. 거대한 기업인 디즈니가 이런 행보를 취하는 것 역시 어느 정도 사업적인 이득을 선점하기 위함이란 것도 배제할 순 없다. 그러나 개방적인 사회를 위한 이들의 선도가 계속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복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