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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thaul Mar 14. 2017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복수

녹터널 애니멀스 vs  고백

복수는 언제나 흥미롭다. 복수는 각종 예술 작품들은 물론 최초의 법전인 함무라비 법전에서조차 등장하며 그 자체만으로도 구미를 당기게 하는 힘이 있다. 그것이 옳고 그른지, 혹은 어떤 방식을 택하는지, 마침내 성공한 복수는 과연 어떤 결과를 남기는지 등등 복수는 수많은 상상의 갈래를 자극하는 소재이다.     


<녹터널 애니멀스>는 드러나지 않지만 전적으로 복수극에 가까운 이야기다. 톰 포드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미묘한 권태에 빠져있는 미술관 아트디렉터 수잔(에이미 아담스)이 자신의 전 남편이었던 소설가 에드워드(제이크 질렌할)가 보낸 소설을 읽게 되는 내용을 담는다. 톰 포드 감독의 감각으로 꽉 짜인, 미적 감각이 가득한 프레임을 보면서 희한하게도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고백>이 떠올랐다.     



각각 미국, 일본에서 제작된 작품이고 그 서술 방법도 판이하게 다른 두 작품이 연상된 건 ‘복수’라는 소재 말고도 무엇 때문이었을까. 둘 다 소설을 원작으로 두고 있다는 점(특히 <녹터널 애니멀스>는 소설이 극 중 필수 전개 요소이기도하며), 작품 속 여성의 모습이 인상적이기 때문이리라.     


두 작품은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훨씬 많으며 그렇기에 그런 부분들을 짚어보는 것이 더 흥미롭다. 둘 다 복수극이라고 상정하긴 했지만 <고백>은 그것을 도입부에서 밝히면서 작품을 열고 <녹터널 애니멀스>는 결말에서야 그것을 짚으면서 막을 내린다. 복수를 제하면 두 작품의 정서는 완벽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외면적으로 보이는 그림도 판이하다. 액자식 구성을 띤 <녹터널 애니멀스>는 기본적으로 화려한 상류층의 모습을 담아내면서 동시에 황야의 이미지를 포착해 두 가지 공간을 구축한다. 이 영화는 공간의 대비를 전면으로 내세운다. 수잔의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이지만 영화 속 「녹터널 애니멀스」는 선형적인 구성이기에 상대적으로 시간의 특성은 희석된다.      


반대로 <고백>은 시간을 보다 부각한다. 무채색, 회색 톤의 영상을 기본 골자로 고속 촬영과 이와 대비되는 홈비디오 풍의 저속 촬영을 끊임없이 인서트로 사용한다. 이런 무채색의 연속에서 해 질 녘 같은 자연광은 보다 부각되고, 연출에서도 필요에 따라 스포트라이트를 사용해 시간대와 인물을 두드러지게 하는 편이다. 

    

이런 차이는 당연히 그 그릇에 담긴 내용물 또한 다른 방향성을 띠고 있어서다. <녹터널 애니멀스>는 결국 자신의 소설로 수잔의 추억과 죄책감을 자극해 모멸감을 선사하는 에드워드의 복수극인 셈이다. 오로지 과거의 장면으로만 등장하는 에드워드는 무척 위트 있고 섬세하며 노력형 인간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잡고 싶었던 에드워드를 수잔은 어느 순간 철없는 인간으로 취급하며 결국 두 사람 사이에서 최고의 결실이라 할 수 있는 아이마저 지우고 만다. 에드워드는 그런 수잔의 심리를 파고드는, 자신의 상실감과 절망을 아로새긴 작품으로 그에게 정말 사소해 보이지만 사적인 복수를 행한다.     


그래서 <녹터널 애니멀스>는 「녹터널 애니멀스」의 시퀀스들을 제외하면 수잔의 심리와 기억을 그리는데 충실하다. 화려한 문화적 환경 속에서 수잔은 끊임없이 혼자이고 외로워하며 에드워드의 소설에 몰입하게 된다. 수잔은 <녹터널 애니멀스>에서 가장 명확하게 그려지는 인물이다. 작품 제목부터 에드워드가 수잔을 불렀던 별명인 것으로 암시하듯 수잔의 일거수일투족은 영화에 담긴다.     


반면 <고백>의 유코(마츠 다카코)는 살인사건의 피해자이자 복수의 가해자로 등장해 이 영화가 그리는 묘사 속에서 늘 모호하게 그려진다. 명백하게 자신의 속내를 풀어내는 주요 인물 수야(니시이 유키토), 미즈키(하시모토 아이), 나오키의 엄마(기무라 요시노)와 달리 유코는 미즈키를 만난 후 울음을 터뜨리는 것조차 그 이유를 짐작할 수밖에 없듯 상대를 속이고 의도를 감추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 유코는 그저 작은 불씨를 남겼을 뿐이고 이를 번지게 하는 건 소년 A, B의 진상을 알고 있는 학급 친구들일뿐이다. 이는 <녹터널 애니멀스>의 사적 복수와 다른, 그러나 결코 공적 제도의 복수라고도 볼 수 없는 <고백>의 복수법이다.     


두 편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는 불쾌함을 주면서 서로 다른 갈래를 남긴다. 「녹터널 애니멀스」의 파격적인 이야기는 <녹터널 애니멀스>의 수잔과 에드워드에게 과연 어떤 관계가 형성될까를 기대케 하지만 실은 아무 일도 없는 것이 결말이다. 이 허무함은 당시의 기대감을 뭉개버릴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기대마저도 무색하게 만든다.      


<고백>은 유코의 복수가 성공하는 것을 목도케 하지만 끝까지 그의 의도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가늠할 수 없게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너져버린 인물들의 모습은 지켜본 이들까지 절망케 한다. 복수에 휘말린 군상의 심리를 그려낸 <고백>은 복수가 가지는 파급력을 감추지 않고 드러낸다.     


어떤 장르에서건 마음껏 활용될 수 있는 복수를 은밀하게 감춘, 화려하게 드러낸 두 작품은 인물만이 아니라 관객들까지 궁지에 몰아넣고 톡 건드려 나락으로 밀어 넣는다. 당연히 뒷맛도 씁쓸하고 찝찝하다. 하지만 언젠가 그 찝찝함을 재현하기 위해 다시 보고 싶은 날이 오는, 알 수 없는 중독 또한 남는다. 그 기묘한 중독이야말로 복수를 논하는 예술 작품이 계속 맴도는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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