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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thaul Mar 10. 2017

이 젊은 감독이 말하는 예술이란

위플래쉬 vs 라라랜드

소년이 소녀를 만나다. 그 흔한 ‘Boy meets girl’ 양식의 스토리에 고전 뮤지컬 영화의 애정을 한껏 담아 완성한 <라라랜드>는 지난 2016년 관객들에게 가장 아름다웠던 영화 중 한 편으로 남았을 것이다. 재즈 피아니스트와 배우 지망생이란 등장인물들의 직업이 주는 즐거움과 두 사람의 사랑과 이별까지, 가장 비현실적이라는 뮤지컬 장르와 현실적인 전개가 만나 만들어낸 사랑이야기는 여느 로맨스 영화도 주기 힘든 기묘한 로맨틱함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다만 그뿐일까. <라라랜드>를 평범하게 로맨스 영화, 뮤지컬 영화 정도로 규정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든 건 세바스찬이 미아에게 처음으로 재즈를 설명하면서 “절대 편할 수 없는 것”이라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재즈, 불편함. 이 대목에서 <위플래쉬>의 데자뷔가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그렇다. 이 영화와 이 영화는 닮은꼴이다.


데미언 차젤레 감독의 데뷔작이었던 <위플래쉬>는 재즈 스쿨에서 독재자처럼 행동하는 플레처 교수(J.K. 시몬스)와 그의 제자 앤드류(마일스 텔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웬만한 액션영화는 명함을 꺼내지 말아야 할 정도로 박진감 넘친다”(김성훈 평론가)는 평처럼 음악으로 수(數)를 주고받는 듯한 이 영화는 데미언 차젤레 감독의 예술관이 무척 뚜렷하게 드러나있다.     


<위플래쉬>가 여타 음악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홀로’라는 이미지를 계속해서 부여한다는 점이다. 앤드류는 첫 장면부터 홀로 연습을 하고 있으며 플레처는 악단을 교육하는 입장이지만 학생들 간의 교류에 완벽하게 무관심하다. 모든 소리를 듣는 것은 플레처뿐이지만 그가 듣는 건 소리의 총합이라기보다 개인이 내는 소리이기 때문에 <위플래시>의 모든 관계는 플레처-학생이란 일대일의 관계가 성립된다.     


특히 앤드류는 애초 교우관계가 긍정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와 친구관계로 보이는 인물은 영화 내내 한 명도 등장하지 않으며 오프닝 장면부터 혼자 연습하는 장면들이 거듭 나온다. 이런 요소들을 통합하면 그가 미친 듯이 드럼 연주에 몰두하는 건 플레처의 영향도 있지만 전적으로 그의 본성, 예술에서 성취를 거두고자 하는, 혹은 인정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이다.     


앤드류의 그런 성향이 가장 잘 나타난 장면이 니콜(멜리사 베노이스트)과 만나는 일련의 장면들이다. 앤드류는 극장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니콜이 마음에 들지만 사적인 말 한마디 못 건넨다. 그러다 플레처에게 인정받은 날에서야 자신감을 얻고 니콜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 이후 플레처에게 엄청난 혹평을 받자 곧바로 니콜에게 헤어질 것을 통보한다. 자신은 예술가로서 성취를 거두기 위해 시간을 쏟아야 한다는 이유로.      


이처럼 예술에의 일방적인 애정을 드러내는 앤드류나 ‘각성’이란 이류 수많은 지망생들을 몰아붙이는 플레처의 단면이 사실 <라라랜드>의 세바스찬에게도 있던 것이다. “재즈는 절대로 편할 수 없다” “무대에서 각자 할 말을 주고받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세바스찬은 전작의 두 인물처럼 폐쇄적이진 않지만 예술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만은 동일하다.      


여기서 차젤레 감독의 예술관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는 건 미아의 행보이다. 미아는 배우 지망생이다. 배우는 대개 함께 호흡을 맞추며 장면을 구축해나가는, ‘앙상블’의 중요도가 극도로 높은 인물이다. ‘Someone in the crowd’ 시퀀스는 미아가 친구들과 함께 장면을 연다. 그러나 이 시퀀스가 지나가고 난 후 미아는 <위플래쉬>의 앤드류처럼 오로지 세바스찬만을 만나며 다른 인물들과는 소원해진다. 그의 친구들은 작품의 막바지, 플래시백에서만 잠깐 모습을 드러낸다. 미아는 배우로서 가질 수 있는 그 앙상블 대신 자신이 직접 쓴 대본으로 모노드라마를 올리는 걸 취하며 이는 모두가 무대에 오르지만 각자 할 말을 하려는 투쟁이란 세바스찬과 미묘한 동질감을 준다. 그 동질감은 결코 함께 할 수 없다는 믿음과도 같기 때문에 두 사람은 처음부터 닿을 수 없는 지점에 있었다.     


차젤레 감독이 세바스찬을 묘사하는 것 또한 인상적이다. 세바스찬은 자신이 원하는 예술을 위해, 그리고 미아를 위해 대중음악에 손을 대지만 이윽고 공연장에서 그의 얼굴에는 냉소적인 혹은 즐기는 듯한 뉘앙스가 가득하다.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에서 세바스찬은 미아를 위해 그렇게 일에 빠져든 것처럼 말하지만 근본적으로 그 역시 인정을 받아야 하는 성격인 것이다. 플래시백에서 미아 역시 세바스찬을 자신의 공연을 봐주는 한 관객으로 상정하며, 그 장면에서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원함을 보여준다. 예술가란 결국 자신이 인정받는 것을 원할 수밖에 없음을 내심 드러내는 대목이다.     


하물며 작품에서 그려지는 두 사람은 항상 행복한 듯 보여도 무대에서만큼은 각자의 길이 있다. 비약일지 모르겠지만 그 둘의 호흡이 확실히 드러나는 ‘A Lovely Night’ ‘Planetarium’은 모두 일상생활-꿈이란 상황이며 ‘Madeline’ 같은 경우는 분명 무대와 관객으로 분리돼있고 카메라 역시 그들을 각각 잡아낸다. 두 사람의 이별 역시 각자 자신의 무대가 준비되는 순간부터 서서히 벌어지는 일이다. 세바스찬은 그렇게 일에 빠져들게 되면서 미아와 이별하게 되고, 반대로 미아는 대본으로 만들어진 ‘내’가 아닌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나’의 모습으로 성공의 길에 들어선다.     


영화가 제작된 시기 덕에 잊곤 하지만 <라라랜드>는 <위플래쉬>보다 먼저 각본이 완성됐다. 즉, 앤드류의 ‘포기’는 세바스찬과 미아가 겪은 일 이후에 발생했다고 보면 데미언 차젤레 감독의 예술관이 더욱 또렷해진다. 꿈과 사랑 중 결국 하나를 포기해야 했던 두 사람의 선택이 앤드류에게 투영된 셈이다. 이처럼 치열한 예술관을 가진 데미언 차젤레 감독, 역설적이게도 그런 그가 협업이 반드시 필요한 영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필연성처럼 느껴진다. 

앞으로 뭘 더 만들지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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