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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thaul Dec 22. 2020

퍼스트 러브

나만의 악취미처럼 키득거리며 보는 유혈사태

사람을 웃긴다는 건 어렵다. 웃음에도 취향이 있기 때문에. 취향이 없는 분야가 있겠느냐만은 코미디는 그 '웃음'의 범주와 강도를 세밀하게 분석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장 어려운 장르다(라고 본인은 생각한다). 특히 그냥 코미디가 아닌 코미디 영화는 더 어렵다. 왜냐하면 영화는 기본적으로 100분 내외의 이야기 줄기를 따라가는데, 이야기를 헤치지 않는 선에서 코미디를 유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본인이 평소엔 '방청객'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웃음이 많지만, 영화를 보면서도 폭소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코미디 영화가 사람을 웃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통감하고 있다.


그런 고로 <퍼스트 러브>는 개인적으로 무척 성공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셀 수 없이 자주 키득거렸기 때문. '너만 웃겼으면 다냐'고 할 수 있는데, 후반에 새어나오는 웃음소리를 참지 못한 이는 나만이 아니었으니 나만 웃긴 건 아닌 모양이다. 적어도 '일본 영화' 혹은 '블랙 코미디 영화' 혹은 '타란티노식 유혈낭자 코미디' 혹은 '미이케 다카시'라는 카테고리를 보고 온 관객들에겐 쏠쏠한 재미를 선사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를 설명할 때 쿠엔틴 타란티노나 (그의 대표작) <펄프 픽션>이 주로 언급되는데 아마도 여러 인물의 사건을 동시에 그리는 비선형적 내러티브와 주요 인물들이 복서와 범죄자라는 공통점 때문일 것이다. 갑자기 사건에 휘말린 일반인과 매춘부라는 컨셉은 타란티노가 집필한 <트루 로맨스>를 떠올리게 하고. 미이케 다카시의 영향을 받은 타란티노를 닮은 다카시의 영화라니, 장르 영화 팬이라면 그 자체로도 흥미가 생길 것이다.


범죄와 코미디를 엮은 작품이 그렇듯 <퍼스트 러브> 또한 기본적으로 클리셰를 충실하게 이행한다. 조직 몰래 마약을 빼돌리려는 범죄가 헝클어지고, 죽을 각오를 한 남자는 죽지 못해 사는 여자를 만나며, 아무 것도 모르는 이들은 역시 아무 것도 모르는 적을 잡고자 전쟁을 선포한다. 어디선가 본듯한 이 전개 속에서 <퍼스트 러브>는 각 장면마다 일반적인 티키타카를 전복하는 상황을 전복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그리고 사실 이 웃음의 일타 강사는 카세 역의 소메타니 쇼타다. 야쿠자의 간부로 등장해 나름 원대한 계획을 세우지만, 실상은 <퍼스트 러브>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원흉이자 뒤처리반으로 얼토당토않은 순간들을 완벽하게 소화한다. 그러면서도 목숨을 쉽게 여기는 장면 속에서는 목숨줄을 쥐고 사는 인간의 둔감함이 야쿠자 카세에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카츠라기 역의 쿠보타 마사타카와 모니카 역의 코니시 사쿠라코가 영화의 관통하는 로망과 메시지를 담당한다면 소메타니 쇼타는 이 엉망진창 누아르의 선봉장으로 시선을 빼앗아간다. 


그렇게 어느 정도 키득거리다 보면 <퍼스트 러브>의 하이라이트, 어쩌면 미이케 다카시의 하이라이트인 유혈낭자 클라이막스가 온다. 당연하게도 이 절정의 순간에도 코미디는 곳곳에서 속출하는데, 그와 별개로 야쿠자와 중국 조직 간의 비장함 또한 살벌하게 그려진다. 몇몇 인물들은 생각지도 못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한편, 순식간에 존재감을 감추는 인물도 있으니 이 또한 '비선형적 블랙 코미디'의 클리셰를 연상시킨다.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한계라고 생각하면서도 영화 중간중간 보여준 암시와 회수에 비하면 조금 아쉽긴 하다. 


여기까지 오면서 키득거렸다면, 혹은 클라이막스에서 제법 흥분했다면, 100분 남짓의 이야기 끝에 도달할 때 이 정든 친구들을 떠나보내기가 아쉬울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퍼스트 러브>에서 말하듯 삶은 계속 되는 것이고, 그들은 살아갈 것이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면 그들이 바라는 삶을 누리도록 응원이라도 보내주자. 그들이 안겨준 웃음의 대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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