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려 며칠 동안 씻지 않은 얼굴이 말끔해졌다
길게 자란 수염을 자르고 싶지만 조금 더 게을러져도 좋은 계절이다
하늘도 바람도 모두 투명해지는 시간
시작만 해놓고 마무리 짓지 못한 채 덮어놓은
연애소설의 중간쯤이나 될까
지난여름의 화염을
조금만 더 그리워해도 좋은 계절이다, 라고 생각한다
후드득 떨어지는 것들에는 눈길을 주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몇 점 눈송이가 데리고 올 겨울을 떠올리며
첫눈 온다고 주고받을 안부를 미리 연습한다
미안하다 그대를 잊어서
미안하다 그대를 잊지 못해서
애써 밑줄을 긋지 않아도 평생 기억하는 문장이 있다
#가을안부 #이종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