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샌물샌
2020. 8. 6. 목 / 233 days
다인이의 기상시간은 일정하지 않아. 6시일 때도 있고 7시, 8시, 일찍일 때는 4시에도 일어나. 오늘의 기상시간은 5시였어. 우리끼리 휴게실이라고 부르는 방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널 안은 아빠가 엄마를 깨우러 왔어. 퀭한 눈으로 "다인이 밥 주세요."라고 말하면 엄마는 잠이 덜 깼지만 번개 같은 몸놀림으로 일어나 다인이 침대로 가서 아침을 먹인단다. 칭얼거림을 멈추고 맘마를 먹는 다인이를 확인하곤 아빠는 반쯤 눈이 감긴 채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잠을 청하러 사라져. 이때부터는 엄마와 다인이 둘만의 시간이야.
밥을 먹고 난 직후의 너는 무척 쌩쌩하단다. 요즘 벽을 잡고 일어서서 걷는 일에 심취해서 30분 넘게 아침운동을 하는 너의 모습은 무척 신기해. 얼마 전까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거든. 벽을 잡고 세 걸음을 띄었다며 아빠와 호들갑을 떨던 게 엊그제인데 벌써 침대 옆에 세워져 있는 트롤리까지 손을 뻗게 되다니. 내일의 너는 또 어떤 모습으로 엄마 아빠를 놀라게 할지 기대돼.
일어나서 밥 먹다 자고 다시 깨어난 시간은 이유식을 먹는 시간보다 조금 일렀어. 그래서 엄마는 다인이와 함께 산책을 가기로 했단다. 밖에는 비가 내렸지만 나가고 싶었거든. 가는 길에 아빠의 부탁으로 빵집에 들렀어. 갓 구운 빵이 진열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엄마의 하루도 활기차게 시작되는 기분이 들었어. 요즘의 엄마는 다인이에게 집중해있다 보니 엄마의 시간을 갖는 일이 많이 줄었잖아. 그래서인가. 늘 누리다가 멀어진 것들과 다시 만날 때, 그것들이 무척 반갑게 느껴지곤 해. 이런 기분을 잠시 느끼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다시 다인이와의 시간을 보낼 힘을 얻는 것 같아. 아침밥이 하기 싫은 어느 날, 또 찾아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골라 집으로 돌아왔어.
채소가 많은 한 끼를 먹으며 아빠는 간밤에 일었던 비상사태를 엄마에게 전해주었어. 잠을 자다가 투둑 투둑 하는 소리가 들려서 거실에 나와보았대. 소리의 원인을 찾으려고 불을 켰는데 그 불(전등)에서 물이 주르륵. 너무 놀라면 사람이 아무것도 못하잖아. 한순간 그런 상태이다가 불을 끄고 다른 전등을 켠 후 원인을 잠시 찾아보았대. 원인을 찾았냐고 물었더니 천장에 설치된 시스템 에어컨의 물이 새서 흐른 거였대. 세상에. 우리 집엔 시스템 에어컨이 네 대 있는데 그중 하나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거든. 안 쓰던 녀석을 오랜만에 틀었더니 이런 난리를 피워낸 거 있지. 에어컨 업체에 문의했더니 다음 주나 되어야 수리해주러 오실 수 있다고 하셨대. 이게 웬일이람.
집에 문제가 생기니 아빠는 종일 신경이 그곳에 가있는 눈치야. 오후에 필요한 것들을 사러 잠시 나갔다 오는데도 내내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더라고. 에어컨 기사님이 빨리 오셨으면 좋겠어.
아빠가 바빠서 엄마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동안 다인이는 많이 걷고 많이 웃고 많이 찡얼거리는 여느 날과 같은 하루를 보냈단다. 오늘도 일찍 잠든 걸 보면 이제 일찍 자려나? 일찍 자고 엄마에게 소중한 저녁시간을 선물해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