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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페이지 Aug 12. 2020

벽에서 손 떼고 섰던 1초

2020. 8. 11. 화 / 238 days

무슨 일이니, 무슨 일이야. 정말 이게 무슨 일이야. 엄마는 호들갑을 떨 수밖에 없었어. 왜냐하면 다인이가 벽에서 손을 떼고 1초 정도 서있었거든!


엄마는 그 광경을 직접 목격했지만 보고도 못 믿을 광경이었어. 어머어머어머어머라는 소리밖에 안 나오더라고. 아빠한테 호들갑스럽게 다인이가 손을 떼고 잠시 서 있었다고 정말 빨리 걷겠다고 알리고서야 실감이 났어. 벽을 잡고 서기 시작하면 약 3개월 후에 걷는다던데, 그렇게 되면 우리 다인이 9~10개월 만에 정말로 대지에 서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다인이의 외할머니는 그 이야기를 전해 들으시곤 내가 아는 아기 중에 가장 빨리 걸을지도 모르겠다며 신나 하셨어. 그리곤 엄마도 익히 알고 있는, 다인이 이모가 걷게 된 이야기를 또 한 번 말씀해주셨단다. 이미 여러 번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것 같은 이야기지만 신나서 말씀하시니 한 번 더 들어드리기로 했어.


다인이 이모는 잡고 걷기는 하는데 도통 걸을 생각을 하지 않는 아기였대. 소파든 뭐든 잡고 슬슬 슬 걸어서 가고 싶은 곳에 다 가는데 손을 떼고 걷지는 못한 것이 돌이 지나도 걷지를 못하더래. 천천히 걸으려나보다 하고 외할머니는 별로 신경을 안 쓰고 계셨다더라고. 그러던 어느 날, 이모가 "시-꺼-"라고 말하곤 앉은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열세 걸음을 걸어갔대. 무슨 설화 속 주인공처럼 말이야. 그날 이후로 이모는 잘 걸어 다녔다고 합니다.


이모가 집에서 첫째라서 그런가 인상적이어서 그런가. 이런 에피소드는 이모의 이야기만 가득하고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아 살짝 아쉬웠어. 엄마는 삼남매의 둘째로 자라서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해 샘이 많았거든.


다인이는 우리 집에서 첫째니까 그런 걸로 섭섭할 일은 없겠지? 엄마가 일기로 다인이와의 일들을 조금씩 남기고도 있으니까 더더욱.


그나저나 우리 다인이는 어떤 식으로 걷게 될까? 이모처럼 갑자기 벌떡 일어나 걸음을 걸을까? 아니면 어느 날 자연스럽게 벽에서 손을 떼고 걷게 될까? 어떤 모습이든 엄마가 그 역사적인 첫걸음의 순간에 꼭 함께 있어줄 거야. 그리고 나중에 네가 자라면 우리 다인이의 첫걸음이 어땠는지 꼭 알려줄게.

그리고 오늘, 엄마의 충동구매의 산실 스마트 키보드(디지털피아노)가 도착했어. 새하얀 기계가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더구나. 엄마도 어릴 적에 피아노 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어. 악보를 잘 못 읽어서 음악을 외워서 피아노를 치곤 했었는데 지금은 가물가물해. 20년 넘게 피아노와는 담을 쌓고 살아놓고는 이제 와서 충동구매라니. 물건을 샀으니 쓰임새를 다하도록 해야지. 이사 가면 잘 보이는 자리에 피아노를 꺼내어놓고 꼭 칠 거야. 그런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지 마. 혹시 아니. 오늘 엄마가 산 피아노 덕분에 우리 다인이가 음악인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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