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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듬 Jan 01. 2022

덕질의 해


지난 몇 년 간 무던히도 울면서 마음에 가득했던 더께들을 비워냈고 온데간데없던 에너지가 지난봄부터 조금씩 생긴 덕분에 맑은 것들로 채울 수 있었다. 매일 놀 궁리하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찬찬히 살폈다.


내가

이렇게나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렇게나 산책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렇게나 전시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렇게나 음악 듣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렇게나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렇게나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렇게나 공상에 빠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잊고 있었다. 정확히는, 알았지만 그놈의 쓸모를 따지느라 꽁꽁 싸매 두고 모른 척했다.


2021년 내내 '나' 덕질하면서 행복했다. 쓸모없을 자유를 누리며 삶의 우물을 넓히자고 이름 붙인 집에서 이름대로 잘 살았다. 매일 아침 눈을 뜸과 동시에 살아있다는 것에 실망하며 꾸역꾸역 살던 내가 한 해를 돌아볼 힘이 생겼고, 심지어 행복했다는 말을 하는 걸 보면 사람은 일단 살고 볼 일이다. 아마 여전히 공황이 오고, 불안에 잠기고, 밤새 오열하는 날들이 있을 테지만 그래도 더 열심히 나를 덕질하면서, 조금 더 쓸모없이, 그렇게 살아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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