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거의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선다.
가뿐한 걸음일 때도 있고, 다리에 곰 두 마리 달고 꾸역꾸역 갈 때도 있다.
몇 달을 같은 길로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눈에 익은 이들이 있다.
집과 경복궁역 사이 길에서는 부드러우면서 동시에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사람,
서촌에서 광화문으로 넘어가는 대로변 횡단보도에서는 상명 초등학교 스쿨버스 두 대,
경찰청에서 세종문화회관으로 가는 길에서는 수수해 보이지만 실은 스타일이 확고한 사람,
세종문화회관을 마주 보고 선 횡단보도에서는 이 동네 저 동네에서 오는 정부청사 셔틀버스들,
오밀조밀 모여있는 식당과 카페들을 지나 광화문 대로로 넘어가는 길에서는 씩씩한 발걸음의 사람을 매일 아침 마주친다.
오늘은 저 이가 저런 스타일로 입었네, 오늘은 저 이 발걸음이 텁텁한 걸 보니 기분이 가라 앉았나 보다- 생각한다. 부러 의식하지 않아도, 의도하지 않아도, 그냥 자연스레 그렇게 된다.
밤새 내린 비에 로즈마리가 흐드러져 있거나, 라벤더 화분에 샛노란 버섯이 다글다글 자랐거나, 새벽 배송으로 먹거리가 한가득 오는 등의 이벤트가 있으면 평소보다 출근 시간이 조금 늦어진다. (물론 별일 없이 뭉그적거리다가 늦을 때도 있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눈에 익은 이들을 만나는 구간이 슬쩍 달라진다.
역 근처에서 보던 이를 집 앞 골목을 벗어나자마자 마주치고, 몸집만 한 악기를 끌어안고 있는 아이들을 태운 노란 버스는 이미 가버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카페자스 근처에서 보던 이를 폴앤폴리나 앞에서 마주치게 되고, 창문에 기대어 졸고 있는 어른들을 태운 셔틀버스는 아마도 가장 먼 동네에서 오는 것 같은 한 대만 지나간다.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나 홀로 친밀감 쌓은 이들을 마주하며 속으로 안부를 건넬 수 있는 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서늘해진다.
지구에서 제일 좋아하는 동네를 떠나는 아쉬움,
나의 부재를, 실은 존재 자체를 알 리 없는 이들에 대한 서운함,
대전으로 돌아가는 순간 또 무언가에 나를 갈아 넣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뒤섞여 마음이 쿵 하고 떨어진다.
이 동네에서 계속 있을 사람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정을 주지는 않았을 거다. 머무를 기한이 정해져 있으니 더 애틋하고 그렇겠지.
생각해 보면 사람은 언제든 돌아가게 되어 있는데-그게 천국이든, 연옥이든, 허공을 떠도는 것이든, 무로 사라지는 것이든- 하루하루는 왜 이렇게 지루한지 모르겠다. 기한이 있는데,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의 한계가 있는데-후손들 괴롭히며 밥 얻어먹는 한국 귀신으로 남고 싶지도 않음- 사는 게 왜 이렇게 지겨운지 모르겠다.
아마 언제 돌아가게 될 지 몰라서 그런가 보다.
당장 돌아가도 아쉽지 않게 살고 싶다.
지구에서 사람으로 머무는 동안 매일 애틋하게 살고 싶다.
지루하면 지루한 대로 서운하면 서운한 대로 신이 나면 신이 나는 대로 내 마음 오롯이 아껴주면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