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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드캠퍼스 Apr 14. 2018

한 대학생의 낯선 인간관계 적응기


 사람은 처한 환경에 따라 인간관계가 바뀌는 것 같다. 특히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인간관계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못해도 2년은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다른 지역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하고, 주위에 처음 보는 사람들뿐이었던 나는 새로운 환경과 낯선 인간관계에 적응해야만 했다. 물론 고등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도 새 환경에 적응하고 새 인간관계를 쌓았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는 중학교 때와 유사한 점이 많았기에 낯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중·고등학교는 우연히 만난 친구들과 한 반에 모여 1년을 생활한다. 그리고 다음 해는 다른 반에 들어가지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과 또 같은 반이 되어 생활한다. 중·고등학교 때의 인간관계는 하루의 긴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보내야 하기에, 보기 싫어도 볼 수밖에 없다. 일단 가까이 붙어있으니, 내가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다. 조금만 노력하면 평생 갈 친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해질 수 있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같은 반이었던 친구도 있었고, 십년지기 친구도 있었다. 내 고등학교 친구들은 전부 최소 2년은 서로 알고 지낸 사람들뿐이었다. 딱히 내가 노력한 것도 없었고, 서로 같이 지내다 보니 어느새 친해져 있었다.


 그동안 친구들을 저런 방식으로 사귀어왔던 난 대학교 인간관계도 고등학교 때처럼 알고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친해질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단지 알고 지내기만 하니 정말 알고 지내는 것에서 끝이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친해졌던 것처럼 친해졌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동안 당연했던 ‘친구’는 더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혼자 타지로 떨어져 대학 생활을 하니 친했던 고등학교 친구들과도 만나기 힘들었다.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했다. 새 장소에 와서 친해진 사람도 없는데 친했던 사람들과도 점차 멀어져가니 외로움을 더 크게 느꼈고, 어떻게든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빠졌다. 전과 같이는 다른 사람들과 친해질 수 없다고 생각해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기 시작했다. 먼저 같이 밥 먹자고 하거나, 같이 놀기로 한 모임에 나도 끼워달라고 말하는 등 가능한 한 자주 사람들과 함께 다니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내 시간을 투자한 만큼의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나’를 이만큼 버렸는데도 내가 얻고 싶던 인간관계는 형성되지도 않았고,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만나자고 하는 등 먼저 부탁하는 입장이 되니 ‘다른 사람들은 내가 아쉬우니까 먼저 부른다고 생각하겠지?’ 같은 의심도 했다. 인간관계에 과하게 집착했다가 오히려 인간관계에 회의를 느꼈다. 이만큼 나를 포기했는데도 내 고등학교 친구들만큼 친한 사람이 생기지도 않았으니, 인간관계를 아예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은 지치고, 인간관계는 포기한 상태로 며칠을 보내다 아는 형과 우연히 주점에서 술 몇 병을 사이에 두고 얘기하게 됐다.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았던 속마음을 그때 그 형에게 다 털어놓았다. 그 형은 ‘종종 내가 먼저 불러줘서 같이 놀고 고마웠다고, 네가 항상 부른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은 너를 아쉬운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냥 네가 먼저 주변인들을 모으는 사람이 되면 되는 것이라고 조언해줬다. 그날 내 속 얘기를 다 꺼내고, 그 형의 조언을 들으며 내가 인간관계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인간관계를 ‘나’를 포기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이 ‘나’는 내 가치관, 내가 해야 할 일을 위해 써야하는 시간 등 오로지 나만을 위한 것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니 한 사람과 친해지는 것을 ‘내가 이만큼 포기했으니, 너도 나를 위해 이만큼은 포기해줘야 하지 않아?’ 식의 거래로 바라보게 됐었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단순히 대가를 반드시 받아야 하는 거래가 아니며,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임을 알게 됐다. 한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당연히 시간을 써야 하고, 상대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그게 ‘나’를 포기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 자신만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 필요한 시간, 생각 등을 확보한 후에야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 그동안 내가 인간관계 형성 때문에 괴로워했던 것도, 내가 안정되지 않은 것을 상대방에게 내 부족한 부분을 채워달라고 부탁만 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상대에게 부탁하고, 그 사람이 해줄 수 없는 것인데 상대방이 해주지 않았다고 혼자 상처받기를 반복해왔다.


 결국 나는 몇 달간 ‘나’를 위해 살아왔다. 내가 쉬고 싶으면 아무 생각 없이 쉬기도 했고, 가고 싶던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모아 같이 놀았다. 다만 내가 아쉬워서 친구들을 모은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오랜만에 만나고 싶어서 친구들을 불렀다. 인간관계에 대한 내 생각이 바뀌고 내 삶의 태도도 바뀌면서 줄어있던 자존감도 다시 커졌고,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받지 못해서 남에게 구걸한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남에게 받은 것이 많고 그 마음에 보답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렇게 생각이 180도 바뀔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내가 괴로워했던 이 경험은 다른 사람이 보기엔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심각하게 고민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내 경험을 쓴 것은, 나처럼 인간관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내 이야기가 그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친함’에 집착해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는 말아야 한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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