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드캠퍼스 Nov 25. 2018

일기장을 꺼내보자


  “방학 숙제로 일기를 써가야 되는데 쓸 말이 없어요.”, “일주일 치 밀린 일기 써주세요.” 인터넷에 일기 쓰기에 대해 검색하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글이다. 일기는 이처럼 우리에게 초등학교 시절 가장 성가셨던 방학 숙제와 같은 이미지이다. 초등학교 시절 쓰던 일기는 나에게도 마찬가지로 성가신 방학숙제일 뿐이었다. 다른 여느 숙제들처럼 정해진 분량 이상을 채워서 선생님께 검사받아야 했으니 말이다. 특히 선생님께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부분이 그랬다.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를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시절 나는 선생님께 칭찬받을만한 이야기는 많이 적고 그렇지 않은 것은 생략하는 식으로 일종의 ‘이미지 관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는 더 이상 숙제로 일기 쓰기를 해야 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일기를 쓰지 않고 지내다가 내가 다시 일기장을 꺼내 든 것은 중학교 3학년, 졸업을 앞두던 그때이다. 이전과는 다르게 ‘스스로’ 꺼내 든 일기였다. 숙제가 아니었으니 누구한테 보여줄 필요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일이 없으니 그 속에 꾸며진 이야기를 담을 필요도 없었다. 그때부터 쓴 일기들은 날 것 그대로의 내 모습이 솔직하게 담겨있다. 그때의 나는 왜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고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나는 처음으로 큰 무게를 가진 ‘선택’을 하게 되었다. 내가 살던 동네는 비평준화 지역이라서 어느 고등학교로 진학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의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결정지을 수도 있을만한 선택이었다. 따라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엉켜 하나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때 내가 꺼내 든 것이 일기장이었다. 똑같이 혼란스럽더라도 고민하기만 하는 것과 그 생각들을 실제로 써보는 것은 많이 다르다. 어렴풋한 생각들을 꺼내서 구체화시키면 고민들은 보다 명쾌해진다. 그렇게 생각이 하나씩 정리되고 그때 비로소 해결책도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가진 많은 생각들을 가감 없이 꺼내놓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기’였다. 나는 그렇게 일기장을 다시 꺼내 들게 되었고 나의 생각을 하나씩 정리해간 것이다. 그때부터 다시 시작된 나의 일기 쓰기는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그리고 그때도 그랬듯 지금도 나는 큰 결정을 앞두었을 때나 생각이 너무 많아 머리가 아플 때 늘 일기장을 편다.

  단순히 일기를 쓰는 것이 인생에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친다고? 이렇게 의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 쓰던 일기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은 일기 쓰기를 귀찮고 유치한 행위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일기 쓰기가 생각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나의 생각을 정리해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에게는 일기의 힘을 또 한 번 느끼게 되는 일이 있었다. “R=VD”라는 말이 있다. 꿈을 꾸는 청춘들이 정말 많이 듣는 말이다. 특히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R=VD”라며 강조하시는 선생님들이 정말 많이 계셨다. 나에게는 와 닿지 않는 말이었다.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Vivid Dream을 가지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속는 셈 치고 일기장 맨 앞에 “ㅇㅇ대학교 ㅇㅇ학과 15학번”이라고 크게 적어두었다. 고등학생 때 나는 매일 일기를 적었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더라도 늘 내가 적어둔 그 글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그 글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정말로 ㅇㅇ대학교 ㅇㅇ학과에 15학번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일기에 적어 둔 꿈들은 실제로 이루어지더라.’라는 영화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일기에 적어둔 그 글 자체가 어떤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글을 매일 보았다는 것이다. 그 글을 보면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의지를 다졌고 크고 확고하게 적힌 나의 목표를 보며 힘을 얻었다. “R=VD”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나는 일기를 통해 Vivid Dream을 Reality 실현할 수 있었다. 

  대학생이 된 지금도 나는 일기를 계속 쓰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일기는 그동안의 일기와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학창 시절에는 내가 가진 목표를 이루기까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적고 의지를 다지는 내용을 주로 일기에 담았다. 그런데 이제는 나의 마음에 대한 것이 많이 담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면서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이다. 끝날 줄 알았던 경쟁은 끝나지 않고 점점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말과 행동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그만큼 상처도 많이 받는다. ‘대학교 친구는 진짜 친구가 아니다.’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대학생들은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그래서 점점 스스로를 감추고 더 많은 이미지 관리를 하게 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점점 진짜 나를 감추고 이미지 관리를 하게 되었다. 나는 이렇듯 인간관계에 지쳐 느낀 여러 감정들을 일기장에 솔직하게 적어내면서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일기를 통해 ‘이미지 관리’를 했다면 이제는 일기를 통해 이미지를 관리하느라 지친 마음을 ‘위로’ 받는 것이다. 



  때로는 작은 것이 큰 힘을 가지고 있을 때가 있다. 내가 겪은 일들,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솔직하게 적어두는 것은 어찌 보면 작은 일이다. 그러나 그냥 흘려보낼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기록해두는 것은 생각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다.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그 속에서 발견하게 될 수도 있고, 그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고 다시 힘내서 나아가기도 한다. 나만의 키다리 아저씨가 생기는 것이다. 

힘들고 지치는 일이 있다면 일단 한번 일기장을 펴보는 것은 어떨까.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