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에서의 한글교육은 교재가 아니라 교사들의 열정으로 이뤄진다
나는 지금 로스엔젤리스에 있는 남가주 한국학교 소속으로 글렌데일 한글학교 6학년 담임이다. 글만 쓸 게 아니라 지역사회에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문을 두드린 곳이다. 커피숍에서 만난 교장의 첫인상은 딱 봐도 교사 그 자체였다. 부수수한 머릿결, 영양크림도 안 발랐을 것 같은 화장기가 전혀 없는 수더분한 교장과 한 시간 넘게 대화를 했다. 조곤조곤한 음성으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교장과 함께 일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인연이 된 나는 토요일이 되면 교재가 든 짐 보따리를 싸들고 라크레센터에 있는 매그넷 고등학교로 향했다.
처음 내가 맡은 반에 듬직하고 잘생긴 녀석이 있었다. 수업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재빨리 판단한 나는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보충수업을 해주겠노라고. 매주 금요일 저녁 맥도날드에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녀석에게 복습을 시켰다. 물론 무료다. 사실 한 시간 더 한다고 성적이 쑥쑥 오르진 않는다. 다만 내가 특별하게 관심을 쏟고 있다는 것만 보여주고 싶었다. 내 마음이 녀석에게도 통했는지 6학년을 마치고도 고학년까지 계속 등록을 했다.
글쓰기 숙제를 잘 하는 아이들에게는 개별적으로 온라인으로 만나 글쓰기 방법을 알려주어 3.1운동 소사이어티에서 주최했던 3.1절 글짓기 대회에 응모한 8명이 모두 수상을 하게 됐다. 비대면 수업덕분이다.
내가 그렇게 열정을 불사르는 데는 200명의 학생들의 이름까지 외우고 있는 교장의 헌신과 날씨가 추우나 더우나 학생들에게 간식거리를 준비한 학부모님들의 노고 때문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엘에이의 남가주 한국학교에 대한 기사를 보면 뭔가 의도를 갖고 몰아가고 있는 듯 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윌셔 초등학교가 운영이 부실해서 세를 줄 수밖에 없었던 이사들의 결정, 투명하지 않은 회계를 빌미로 내정간섭을 하려는 한국정부, 이미 운영부실로 논란이 된 타 단체 소속 인물의 이사의 영입, 돈이 많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인색했던 새 이사장을 비롯 4.29폭동 성금으로 횡령의 의심을 받았던 인물의 거론을 지켜보며 학교라는 게 수익이 나는 비즈니스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왜? 라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뿌리교육을 앞세우지만 윌셔에 위치한 건물에 대한 부동산 가치에만 관심이 있는 건 아닐까?
부실하게 운영을 했으면 이사진들의 퇴진은 맞는 거고, 한국정부도 한글교육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면 분규단체로 지정해서 지원금을 갖고 압력을 넣을 게 아니라 전문적인 자문제공이 우선이었다. 뿌리 교육을 앞세운 분들이라면 한글학교 등록할 때 눈깔사탕이라도 들고 와서 교과서를 받아가는 학생들의 조막손에 들려 줄 정도의 배려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남가주 한국학교가 50년 가까이 되는 전통을 이어왔던 건 자기 시간 아까운 줄 모르고 교재 준비하는 교사들의 열정 때문이고 아이들을 이끌고 한글을 가르치겠다고 등록을 하는 학부모님들의 결단 때문이다. 맥도날드에서 보충수업 끝나길 옆자리에서 1시간을 기다려준 상민엄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으면 오늘 날의 남가주 한국학원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닌 제2, 제3의 상민엄마, 한인들의 자산이다.
한글이 적힌 맥도널드 포장지에 열광할 게 아니라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아도 묵묵히 한글지도에 힘을 썼던 한글 교사들에게 한인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