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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희 Aug 24. 2021

하찮은 직업,주말한글학교 교사

막말을 들어도 하소연할 데가 없는 타국의 한글교사들

이민역사의 시작은 한글교육에서부터 시작된다. 100년 전 조선 땅을 떠난 한인들의 한글교육은 자존심과 애국심으로 이어져왔다. 하지만 타국에서의 한국어 교육은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소리글자라고는 하지만 읽는 것만으로 한글을 깨쳤다고는 볼 수 없다. 듣기능력도 천차만별이라 개개인의 차이가 있는 수업현장은 애로사항이 많다. 그나마 한국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라면 나은 편이다. 부모의 도움이 없으면 숙제를 할 수 없으니 영어만 쓰는 학부모를 두었다면 숙제를 내주는 일도 심사숙고해야 한다.

 한글학교는 한글만 가르치는 건 아니다. 틈틈이 전통문화를 가르쳐야하기에 설날에는 세배도 드려 보고  삼일절에는 태극기를 그리며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과거사도 알려줘야 한다. 손으로 쓰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기에 토요일 하루 3시간은 그리 긴 시간은 아니다.

 그래도 학기 끝날 때마다 건네주는 또박또박 쓴 글씨로 쓴 카드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뿌듯함을 느끼게 한다. ‘수고하셨다’는 학부모의 인사는 얼마나 힘이 되는지 받아본 사람만이 안다. 서툰 한글로 적은 카드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고 현재에 대한 위로다. 그런데.

발언권이 없는 교직원들의 목소리

 “까불지 마.”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남가주 한국학원 임시이사회를 처음으로 참관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여자 이사에게 ‘못생긴 게’라고 말하는 이사장의 막말이, 발언권이 없어 한쪽 벽면에 몰려있던 교장들을 가리켜 ‘아줌마’라고 폄하하던 이사의 폭언이 귀에서 들리는 게 아니라 눈앞에서 뿌옇게 조명불빛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인성의 바닥을 드러내는 언어들을 서슴없이 구사하는 그들은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교육기관 이사장이었고 얼굴 바짝 갖다 대며 한 대 칠 것 같은 위협적인 행동을 한 사내는 전 남가주 학원비상대책위원회대표였다. 천박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총영사의 승낙을 받은 이사라니. 지난 50여 년 동안 남가주 학원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어왔던 간에 내가 목도한 장면은 글로 적기도 낯 뜨겁고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일망정....

 남가주 한국학원은 1972년 토요한글학교를 시작으로 한국정부 지원금 100만 달러와 한인사회 모금 기금 등 360만 달러로 1985년에 한인 동포 2세들의 뿌리교육을 위해 남가주한국학원 소속의 사립학교 ‘나성한국학교’(Los Angeles Hankook Academy)로 개교했다.

 1992년에는 다시 한인 사회에서 모금한 250만 달러를 들여 중등학교 과정인 ‘멜로즈 중고교’를 설립해 한인사회 내 사립 초중학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러나 이후 수차례에 걸친 학교 측과 이사진의 갈등 등 내부분란으로 정상적인 학교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했었다. 이로 인해 결국 1999년에 멜로즈 중학교가 폐교하게 됐고 결국 초등학교 운영도 어려움을 겪게 됐다. LA총영사관 측은 부실 운영 책임을 내세우며 기존 이사 전원이 자진사퇴할 것으로 요구했고 동포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었다. 

 파행, 난입. 등의 거친 단어들이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일간지들이 마치 교사들이 학생들을 볼모로 개학을 미루고 있는 모양새로 몰아가고 있었다. 사태가 이지경이 된 것은 어쨌거나 기존의 이사들 책임이다. 학교경영에 참여할 수 없는 교사들은 그것과 무관하게 일선에서 최선을 다해왔다. 하지만 어느 언론도 LA 총영사가"대한민국 정부가 조폭인 거 아시죠" 라며 교장들에게 화를 냈다는 표현은 찾을 수가 없었다. 급기야 교장단은 교직원의 이름으로 입장문을 언론에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교장들은 피켓을 준비해서 임시이사회가 열리는 회의 장소 밖에서 서성댔다. 발언권이 없는 교장들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연로하신 학부모님이 보다 못해 ‘학생들의 개학이 언제쯤 되겠냐’며 문을 여는 틈을 타 밖에서 애만 태우던 교직원들도 덩달아 따라 회의장으로 들어가 겨우 참관하게 됐다.


 참석이사는 총 8명 그중 기존 남가주학원이사가 3명뿐인 이사회의 구성은 공정할 수가 없는 비율이었다. 이사장을 비롯해서 5명이 외부이사였기에 어떤 의결도 5명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 날치기로 다시 전임 이사장을 재임명시켜놓고 우르르 나간 그들의 자리엔 그들이 먹다 남은 도시락이 그대로 놓여있었다.

본을 보여야 할 이사들의 기본인성

 창문너머로 삐죽삐죽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뻔히 보면서도 태연하게 밥을 먹던 이사들. 자기 먹은 것도 치우지 못하는 기본이 안 된 그들은 총영사의 명으로 영입되었고 그중에 한 사람은 영사관에서 나온 교육영사였다. 어린 아이들도 자기가 먹은 자리는 깨끗하게 치운다.


 ‘한 번 할 테면 해봐라’ 식의 귀 닫고 뻗대는 교육영사의 행정 처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건지. 재외공관은 지시하고 군림하려고 파견된 기관이 아니다. 한인들의 어려움을 살피고 그 고충을 해결해주는 것이 그들의 주 임무다.


 세상에 묻고 싶다. 학교 부실경영을 앞세워 내정간섭하려는 막돼먹은 외부 인사들의 학교운영을 지켜만 볼 것인지. 토요일 3시간 근무해봐야 4주 받는 돈이 고작 몇 푼 되지 않는다. 사명감이 없으면 한글을 가르치는 일은 할 수가 없다. 그날, 그 자긍심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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