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밥 세끼 걱정에 삶의 방향이 흔들릴 때면 마릴린 먼로를 떠올리거나 10.26사태로 사형을 받게 된 여섯 분의 충절을 느껴본다. 내가 마릴린 몬로를 떠올리는 건 그녀의 관능적인 몸매와 뇌쇄적인 미소 때문은 아니다.
몸매가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고 병사들을 위해 무대에 선 그녀, 그 사진 한 장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1954년 2월에 찍은 사진이라는데 사진만 봐도 한 겨울임을 알 수가 있었다. 2월의 한국 추위는 동장군이 보초 서는 기온이다. 그녀를 바라보는 미군 병사들은 죄다 털 달린 방한복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달랑 홑겹처럼 보이는 끈 달린 무대복이 전부였다. 그 옷이 아마도 빨간 색이 아닐까 짐작했으나 컬러 사진에는 네이비 블루였다. 백옥 같은 살결로 청명한 파란 하늘을 배경 삼은 그녀는 눈이 부셨고 아름다웠다. 옷을 입고 있어도 덜덜 떨릴 영하의 날씨를 마다하지 않는 그녀에게서는 샤넬 넘버5 향내가 아닌 인간미가 풍겼다.
‘따뜻한 사람이구나.’
신혼여행 중에 한국을 방문했다는 그녀가 다시 보였다. 결정은 마음가짐의 결과다. 생각은 위기의 순간에 초인적으로 발현되기에 무의식을 속일 수는 없다. 평소에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아무리 소신이 있다고 해도 사형이라는 최고형 앞에서 의연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1979년 10월 그리고 26일, 대통령이 총에 맞아 쓰러지고 긴박한 순간에 상관의 명령을 따르던 사람들. 10.26사태로 사형을 받은 이는 모두 6명이다. 그중 3사람은 엉겁결에 가담하게 됐는데 특히 정보부비서실 경비원 김태원의 의연함에 재판장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변호사에게 와전옥쇄(瓦全玉碎)라는 말로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고 전해졌다.
'기왓장으로 온전하기보다는 깨어진 구슬이 되겠다’
변호사도 그 뜻을 몰라서 집에 가서 사전을 찾아보았다는 사자성어는 김태원의 충절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케 한다. 해병대 대령으로 예편한 박선호 과장은 사형 전에 "다시 그런 상황이 와도 부장님 지시에 따르겠다"라고 했으니 법정에서 일관되게 김재규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주던 박흥주 비서관의 충절의 무게와 같다.
자신의 뜻을 펼치는 일은 꽃길을 의미하진 않는다. 대통령 저격으로 유신헌법은 막을 내렸으나 시해의 결과는 사형이었다. 신혼여행을 접어두고 신랑을 일본에 남겨둔 채 10군데나 되는 군부대를 순회하던 먼로는 조 디마지오와 1년도 채 못 살고 헤어지고 말았다. 소신은 또 다른 비운을 만들어내는 모양이다.
그래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길을 걸어가야 할 때, 가끔은 홀로 고독하다. 그렇다고 화장실 가는 일로 인생의 목표로 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전쟁으로 흠축난 거리 곳곳마다 절망의 그림자가 넘실거리던 한국을 기꺼이 방문했던 겨울 하늘 아래의 먼로를 좋아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