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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희 Nov 16. 2021

오각의 별에 새겨진 이름들

재향군인의 날에 나는 플러턴에 있는 힐크레스트 공원으로 향했다. 십시일반 추모비 건립에 힘을 보탠 분들의 기사를 보며 그동안 동참하지 못해서 빚진 마음이 컸었다. 축사에 이어 미 참전 용사들에게 한복을 선물하는 순서는 감동이었다. 노병들은 지난 날 전쟁에 참여했던 그 시절의 젊음보다 더 고았을 두루마기를 입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뒤이어 하얀 휘장이 벗겨지자 전사자들의 명단이 새겨진 오각의 별 모양의 석판들이 드러났다.

휘장을 걷어내자 별 모양의 석판이 드러났다

 3만6천591, 한국 전쟁 중에 전사한 미군들의 숫자다. 꽃다운 나이, 인생에 있어 가장 찬란했던 젊은 용사들은 총알을 끌어안고 대지 속으로 사라졌다.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잃었던 그들이 땅에 묻혔다가 누군가에 의해 다시 하늘 아래 드러났다. 10여 년 전 추모비를 건립하자고 제안하며 종잣돈을 내놓았던 고 김진오 전 한인회장의 깊은 속이 새삼 귀하다.


 목숨을 앗아가는 전쟁만 잔인한 게 아니다. 사람의 기억은 믿을 게 못된다. 나이가 들면 이름을 떠올리는 것도 쉽지 않다. 시간은 아름다운 육체를 바람처럼 흩어놓고 기억은 그 시간보다 더 빨리 앞장섰다. 때문에 오각형 별 모양의 검은 석판에 조각된 전사자들의 이름에서 이제야 단단함이 느껴진다.

두루마기 한복을 입고 있는 한국전 참전 노병들

 장진호 전투에서 수많은 연합군 병사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갔다. 피해는 중공군도 마찬가지였다. 그 싸움으로 중공군도 전열을 가다듬는데 6개월이 걸렸다한다. 잠시 주춤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더라면 중공군의 열세에 한반도의 운명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국면을 맞이했을 것이다. 한국전에서 전사했던 모든 군인들의 희생을 추모하는 추도사가 하루 동안 이어진들 시신이 되어버린 그들을 위로하기엔 충분하지 않다.

 

파라 칸 어버인 시장과 태미 김 부시장도 그날 행사에 참석을 했다. 얼마 전 인종차별적 발언을 들었다는 어버인 태미 김 부시장에 대한 신문기사가 떠올랐다. 시의회 미팅 중에 유진 캐플란이라는 사람이 ‘재향군인 묘지를 왜 어바인에 만들지 않냐’며 한국전에 희생된 미군들의 숫자를 들먹이며 자기들 덕에 한국이 공산국가가 되지 않게 됐다고 트집을 잡은 모양이다. 그 말을 들은 부시장은 ‘나는 미국인이고 미국은 내 나라’라고 응수했다.

태미 김 부시장의 부모 중 한 사람은 한국 사람이다. 미국 국적이니 당연히 ‘나는 미국 사람’이라고 하는 건 맞다. 하지만 유진 캐플란의 불만은 참전용사에 대한 대우를 언급한 것이다. 한국사람이 아니고 미국 사람이라면 더더군다나 실언을 한 셈이다.

어바인 부시장이 겪은 인종차별적 발언

 미군의 희생에 대해 감사와 예의를 표해야 한다. 2018년 공영 TV PBS와 공영라디오 NPR이 외부업체에 의뢰한 조사에 따르면 미 국민이 가장 신뢰받는 기관에 ‘군’이 뽑혔다. 미국 사람들은 군인에 대한 존경심은 아주 깊다. 미국인이 미군에게 존경심을 아끼지 않는 건 실제로 전쟁터에 참전하기 때문이다. 어느 부모라고 직업군인이 되어 전쟁터에 나가는 걸 기뻐하며 반기겠는가.

석판 기념식에 참석한 재향군인들

  젊디젊은 그들은 다른 나라에서 목숨을 잃었고 그들 덕에 살아남은 우리는 발전을 이어갔다. 세월이 전쟁의 참혹한 기억을 무디게 만들어도 감사는 의도적으로, 의식적으로 해도 부족하지 않다. 전쟁 중에 전사한 모든 군인들에게 감사와 보은의 마음 갖도록 후손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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