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 희생된 장병들의 희생으로 얻어진 자유
보훈의 달 6월을 맞이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현충일이 있어서 그런지 6월의 시작은 5월의 달콤함도 없고 12월의 들뜸은 더더군다나 없다. 지난 메모리얼데이에서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했던 바이든 대통령은 ‘현충일은 항상 고통과 자부심이 뒤섞인 날’이라고 표현했다. 이라크에 파병됐다가 암으로 일찍 죽은 자신의 큰아들 보 바이든이 죽은 날도 메모리얼데이라고 운을 떼는 여든의 아버지는 의연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자식을 일찍 앞세운 아비의 슬픔이 왜 없겠는가. 병역의 의무가 없는 미국에서의 자원입대란 직업으로서의 선택을 뛰어넘는다. 고위관리에 있는 아버지의 후광으로 얼마든지 편하게 지낼 수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보 바이든은 육군에 입대를 했다. 게다가 이라크전에 참전했다니 그런 아들로 인해 자부심은 대단하지 않았을까 싶다.
고통과 자부심, 상반된 두 단어는 6월의 무게를 더했다. 자유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굴절을 갖고 있었다. 고통도 모두 다 같은 고통이 아니다. 두려움에서 오는 고통이 다르고 책임감으로 감내하는 고통의 크기가 같을 수는 없다. 자부심은 고통의 질량이 떳떳할 때 얻어지는 법이다. 부끄럽게도 내가 이해했던 그 자유의 크기는 지엽적이고 협소했다.
‘민주주의는 항상 챔피언이 필요하다’며 바이든은 아들의 죽음을 언급했다. 챔피언은 싸움에서 이긴 승자를 뜻한다. 지금도 실전을 위해 병사들을 해외에 파병하지만 미국은 호전적인 국가는 아니다. 오히려 중립을 지키려고 애를 썼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군 잠수함이 영국 여객선 루시타니호를 격침해서 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자 미국은 연합군에 가담하게 되었고 2차 대전 때도 일본,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은 독일과 홀로 맞서던 영국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어 지원을 하게 되었다. 일본이 기습적으로 진주만을 공격하지 않았더라면 미국은 고립주의를 택했겠지만 독일과 이탈리아가 미국에 선전포고를 한 이상 미국도 뒤로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다. 피할 수 없을 땐 맹렬하게 싸워야 한다. 결국 미국의 참전으로 2차 대전은 막을 내렸다.
전쟁에서의 승리는 병사들의 목숨을 앞세워 얻어낸다. 미국이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갖추고 있다지만 사실 그 군사력의 뒷면에는 수많은 병사들의 희생이 함께 하고 있다. 그럼에도 바이든은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연설은 구실을 만들어 군 입대를 기피하려는 한국의 몇몇 지도층 자녀와 비교된다.
전쟁을 겪은 한국, 지금도 전쟁에 참전 중인 미국. 두 나라는 똑같이 전쟁을 비난한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전쟁을 겪은 한국은 종북 프레임으로 자유를 지키려 전전긍긍하고 병역의 의무가 없는 미국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애국심을 강조한다.
6월에는, 특히 6월에는. 플러턴에 있는 힐크레스트 공원을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한국전쟁 때 희생된 미군의 이름이 새겨진 오각 별 비석 앞에 서면 느껴질 것이다. 아직도 북한 땅에 매몰된 무명의 용사들 수혈 덕에 지금의 자유가 있는 거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