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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Jan 29. 2024

그 남자가 다 그 남자라는 말

다시 태어나면 남편을 다시 만나야 하나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남편을 만날 건가요?"


내 대답은 늘 한결같다.


절대~ 아니죠!

왜요?

한 남자랑 한번 살아봤는데 왜 또 살아요.

이번 생엔 이런 사람이랑 살아봤으니 다음 생엔 다른 사람이랑도 살아봐야죠.


물론 순화된 버전이다. 내가 이 정도의 '경우'는 있다.  


내 생각에 저 질문엔 설명이 좀 필요하다. 질문이 "남편에게 만족하는가?"라는 질문이라면 당연히 "아니다". 세상에 자기 남편에게 만족하는 여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남편이란 남자는 늘 애인이던 시절의 남자와 비교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 설혹 그게 자기 자신이더라도~ 남편은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 되려고 최선을 다했던 과거의 자신을 절대 이길 수 없다. 그때 그가 더 머리칼이 많고 배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남편이 아내의 애인(당신의 아내에게 애인이 있다면~ 헐, 아내에게 애인이 있나요?)을 이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다. 남편이 되어 본 적 없는 애인을, 아내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토록 열심인 애인을, 당신보다 머리칼도 많고 배도 안 나온 애인을(아까는 이거 때문이 아니라며?), 당신은 절대 이길 수 없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서! 하지만, 저 질문이 "지금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살고 싶은가?"라는 뜻이라도 내 대답 같다. 당연히 "아니다." 나는 지금의 남편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다. 왜? 지금의 남편은 나라는 여편이 만든 사람이니까. 그와 함께 만든 이곳이 지옥이든 천국이든, 이곳은 그와 내가 '함께' 만든 곳이다. 좋든 싫든 우리가 함께 만들었다. 그러니 나는 다른 남자를 만나도 비슷한 지옥(이든 천국)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늘 입에 달고 다니는 "그 남자가 그 남자"라는 말은 이런 의미다.     


여전히 이 설명이 탐탁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내가 존경하는 후배 상담사도 내 대답에 동의했다는 점을 상기시켜야겠다. 내가 돌덩이 같은 남편과 일찌감치 계란에 벽치기를 경험하고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를 시전하고 살았던 사람이라면, 내 후배 상담사는' 배운 사람답게' 결혼하자마자 남편을 바람직한 부부관계의 정석대로 빚어가며 살았던 사람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다음은 아들 사춘기 문제로 후배의 상담실에 들락거리던 시절의 이야기.


나 : 같은 배에서 태어나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랐는데도, 우리 언니는 나랑 엄청 달라. 오늘 새벽에 언니가 형부한테 이렇게 물었다는 거야. "오빠, 우리 천국 가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왜 천국 가면 몸이 변할 거라고 하잖아. 지금이랑 다른 차원의 몸을 가지게 될 거라고. 그럼 우리 못 알아보면 어쩌지?" 그랬더니 형부가 뭐라 그랬게?

- 후배 : 뭐라 그랬는데요?

나 : 형부가 자기는 언니를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거야. 체취로! 형태가 변하더라도 체취로 널 알아볼 거야!

- 후배 : 캭~

나 : 설마 너네 부부도 이런 대화 하고 사는 건 아니지? 넌 어때? 다시 태어나도 지금 남편을 선택할 거야?  


후배는 나와 달리 남편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서로의 니즈를 표현하고 살았으니 후배도 언니랑 비슷한 대답이려니 으레 짐작하고 물었다. 그러나...!


- 후배 : 당연히 아니죠! 내가 저 인간 지금처럼 만드느라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나 : ㅎㅎ 그럼 다시 태어나면 다른 남자랑 살아보고 싶어?

- 후배 : 아뇨~ 다른 남자랑 만나서 처음부터 다시 또 이 고생을 하라고? 그럴 거면 이 정도라도 만들어놓은 지금 남편이랑 사는 게 낫죠.

나 : ㅎㅎ 그럼 넌 어쩔 수 없이 천국 가서 지금 남편이랑 다시 살아야겠구먼!

- 후배 : 악, 싫어! 난 이 세상에서 살았던 시간 만으로도 충분히 피곤하다고요! 난 다시 살기 싫어. 그곳이 천국이라도 다시 살고 싶지 않~.

 

이래서 내가 후배를 좋아한다. 자유와 독립이라는 허울을 쓰고 따로 또 같이 살았던 우리 부부나, 성장과 변화라는 훈련을 통해 함께 서로를 빚어갔던 후배 부부나, 결론은 똑같다(!)

 

폴 샤르트르가 말했다. 타인은 지옥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있어 보이는 말을 해놓고 연인인 보부와르와 잘만 살았다. (아마, 우리처럼 지지고볶으며!보부와르와 평생 '결혼 아닌 우정 같은 계약 결혼'을 선택하고, '함께 한다는 것'의 새로운 의미를 시전 하며 살았다. 타인이 때로 지옥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우리가 꼭 타인을 지옥처럼 느끼며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남편도 마찬가지. 남편과 함께 사는 것이 때로 지옥 같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여편인 내가 함께 만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것을 분명 '함께' 천국으로 만들 수도 있... 지 않을까. 흠.


다만 상담사의 현실적인 조언을 기억하면 더 좋을 것 같 하다.

천국도 피곤할 수 있는 것.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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