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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Mar 03. 2024

전쟁이 일어나 봐야 믿을까

나는 공산당이 싫은 게 아니라 독재가 싫은 거라구요~



아들 : 엄마, 할머니가 용돈을 보내주셨다~ <건국 전쟁> 이 영화 꼭 보라고. 이거 무슨 영환데 그래? 

나 : 아... 그거,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관한 영화일 걸? 안 그래도 지난주 우리 교회 단톡 방에서도 그 영화 때문에 한바탕 난리였는데. 어떤 집사님이 이 영화 강추한다고 꼭 보라고 올렸는데 다른 집사님이 단톡방에서 정치 관련 이슈는 예민하니 내려달라고 했거든. 그랬더니 한 공동체 안에서 자기 의견 좀 올리는 것도 안되냐고 하면서 갑론을박.  

아들 : 근데, 할머니가 엄마랑 아빠한테는 얘기하지 말고 보래. 굳이?

나 : 그러게. 왜 그러셨을까. <건국 전쟁> 보는 게 뭐 어때서? 엄마 아빠는 그런 거 아무렇지도 않은데, 굳이 몰래 보고 말아야 할 건 뭐냐. 엄마는 그런 게 좀 이해가 안 돼. 예전에 박정희 대통령 얘기할 때도 말했지만, 누구나 한 사람 안에 공적이 있으면 과실도 함께 있는 거거든. 어떤 사람도 온전히 잘한 것만 있거나 혹은 못한 것만 있을 수 없어. 근데 어른들은 자꾸 공적만으로 기억해 주길 바라는 거 같아. 


몇 달 전 우리는 <서울의 봄>을 재미있게 보았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돈을 드리면서 꼭 보시라고 추천하지 않았다. 역사에 무관심하던 아들이 그 영화를 보고 현대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뻤을 뿐. 실제 역사와 영화적 설정이 어떻게 달랐는지, 그리고 영화의 어떤 설정이 당시 역사적 맥락을 잘 살려냈는지에, 지금의 세태와 어떻게 결부해서 평가할 수 있는지. 덕분에 이야기 나눠서 좋았다. 근데 어른들은 왜 돈을 주고서라도 우리를 설득하고 싶어 하는 걸까. 당신들의 세계와 결정이 옳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할까.  


이번 영화  <건국 전쟁>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그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생애를 다룬 내용이라는 것 외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근데 어느 순간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이런 쇼츠가 돌아다녔다. 그는 내가 엊그제 재미있게 보고 온 신작 영화 <파묘>를 예를 들더니, 이 시기에 대작들이 개봉한 이유가 자신의 영화를 순위에서 떨어트리기 위한 좌파들의 음모라고 했다. 좌와 우로 갈라치기 하며, 우파와 극우 기독교인들에게 관람을 독려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덜컥 '불호'의 감정이 생겨버렸다. 일제의 만행에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 해 굿하는 영화에 무슨 음모가 있다고? 저렇게 비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만든 영화라면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 댓글의 말들이 옳았다. 감독이 자기 영화를 스스로 '파묘' 하고 있었다.


좁혀질 수 없는 세대 차이를 만날 때마다 슬프다. 그게 나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버지요 어머니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아들 사춘기에 하도 아들이 우리말을 귓등으로 듣길래 시어머니 앞에서 하소연을 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 우리가 무슨 나 좋으라고 그러는 거냐고요. 다 저그들 잘되라고 하는 말이잖아요. 근데 왜 이렇게 말을 안들을까요. 우리말을 하도 무시하니까, 나중에 그런 맘까지 드는 거 있죠? 아...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이것들은 듣지 않겠구나. 큰일을 당해 봐야 그제야 깨닫겠구나. 우리가 옳았다는 걸. 에미가 아들에게 당해 봐야 그때야 알게 될 거라니...! 얼마나 말을 안 들으면, 부모라면 절대 하지 말아야 될 그런 생각까지 하게 만드냐 말이에요.


식탁 앞에서 내 말을 묵묵히 듣고 계시던 어머니의 표정이 살짝 웃음을 지었던가, 일그러졌던가. 순간, 섬광처럼 예전에 어머니와 정치에 대해 옥신각신하던 우리의 모습이 겹쳐졌다. 

헐, 그때 어머니도 딱 이런 마음이셨겠구나! 


'전쟁이 일어나 봐야 니들이 내 말을 믿겠구나...'


5-6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시부모님은 한창 '땅굴'에 꽂혀 계셨다. 북한이 전쟁 이후 휴전선에서부터 서울까지 땅굴을 수십 개 이상 파놓았으며, 이 중 일부는 지하철이랑 연결되어 있어서 여차하면 북한군이 이 땅굴을 통해 우리나라를 쳐들어올 거라는 거다. 우리는 잘 모르겠지만, 이미 우리 주위에 수많은 간첩들이 암암리에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일부 좌파 정치인들과 내통하며 호시탐탐 우리 사회를 적화통일시키기 위해 공작 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당연히 반박했다. 상식적으로 그랬다. 아무리 따져봐도 시간적으로나 물리적으로 그 많은 땅굴을 파기 불가능했다. 지하철과 하수도, 광케이블 등에 복잡하게 깔려 있는 서울 시내에 아무도 모르게 땅굴을 판다는 것은 건축토목학적으로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아무리 예를 들어 설명해 드려도 끄떡하지 않으셨다. 그 시절 대화는 늘 그런 식으로 흘러갔던 것 같다. 우리보다 정치에 관심이 많으신 시부모님은 정치 이슈에 대해 우리가 무관심하면 너무 안일하다고 걱정했고, 조금이라도 반대되는 의견이나 논리적인 증거들을 들이밀어 반박하면 우리가 빨갱이 사상에 오염될까 봐 걱정했다. 


나는 북한 자체가 싫은 게 아니다. 북한 동포들은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는 통일을 함께 이루어야 할 한민족이 아닌가. 나는 공산주의 사상 그 자체에 대해서도 특별한 감정이 없다. 민주주가 완벽한 제도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이유다. 모든 이상이 현실화되며 훼손되는 방식 때문이다.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부 형태'일 수 있지만, 그나마 우리의 어두운 본성을 누르고 선한 본성을 잘 발휘하게 해 줄 수 있는 정부 형태라고 생각한다. 


나는 독재가 싫은 것 뿐이다. 북한이 싫은 게 아니라 북한이 독재국가라 싫다. 이미 많은 국가에서 검증되어 폐기된 그 구닥다리 사상을 자신의 권력을 위해 악용하며 80년 가까이 독재를 하고 있는 김 씨 일가가 싫다. 남한이 전쟁 후 불과 몇십 년 만에 이렇게 눈부신 선진국이 되어 가는 동안, 북한 정권이 그 똑똑하고 부지런한 민족을 세뇌하고 억압하고 착취해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국민으로 만들어서 싫다. 마찬가지로 남한의 역대 대통령이더라도 그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력으로 국민을 장악한다면 그를 독재자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라면 서로 다른 의견이 상존하는 게 당연하건만, 소통을 통해 합의하는 방식 대신 가장 쉽고 무식한 방식인 무력으로 정권을 유지하려 했다면, 그런 사람은 국민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없지 않겠는가. 북한이든 남한이든 독재는 악하고, 충분히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치에 대해 어머니 보다 많이 알고 있지 않지만... 

그게 우리가 소중히 지켜나가야 할 민주적 가치라는 점만은 확실히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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