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제가 좋아하는 작가 오소희 씨의 첫 책 작가 프로필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지금은 개정판을 내며 사라져 버렸지만요).
아이를 낳아 유년을 두 번 살면서 비로소 삶에 닻을 내리다.
그녀가 첫 책 <바람이 우리를 실어다 주겠지>를 내던 당시 저는 인터넷 서점에서 육아와 여행 파트를 동시에 맡고 있었기에, 그녀의 첫 책을 처음 읽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는데요. 출판사에서 따끈따끈한 신간을 가져와 저에게 검토를 맡기던 그 때가 생생합니다. 아침 샌드위치를 사러 잠시 회사를 빠져나와 까페에 앉아 기다리며 그녀의 책을 읽었습니다. 세 돌이 갓 지난 아들을 데리고 터키로 첫 여행을 시작하던 때. 그녀의 설레임과 마음의 동요가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여행에 앞서 자신의 짐보다 훨씬 더 많은 아이의 짐을 싸고, 낯선 여행지에서 만날 생소함에 위에 언제 틀어질지 모르는 아이의 칭얼거림까지 얹고는, 그렇게 여행을 시작합니다. 혹시 모를 비상약과 밤새 달려야 하는 장거리 버스여행에서 혹 벌어질 비상사태까지 생각하면서요. 그리고 아이의 육아와 맞벌이로 찌들 데로 찌들어 있던 제게 그녀는 얘기해 주었습니다. 아이는 인생의 짐이 아니라, 유년을 두 번 사는 행운이라고. 세 돌이 갓 지난 아이를 '이고 지고'가 아니라 '보폭을 맞추며' 함께 세계여행을 다니는 그녀의 삶은 저와는 달랐고, 당장 따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분명 한 번쯤 꿈꾸던 삶이었거든요. 그 꿈을 살아가는 그녀에게 단박에 반할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몇 년 후 회사를 그만두고 저에게도 잠시나마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녀처럼 전 세계를 넘나들며 낯선 세계와의 조우하는 행운은 없었습니다. 시간이 생기니 돈이 없고, 첫째가 생기니 둘째가 생기더라고요.^^; 무엇보다 저는 그녀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두 아이와 함께 한 그 시간만큼은 적어도 저에게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운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싸이월드를 찾았을 때의 기억이 납니다. 프로필의 두 아이 사진 옆에 제가 이렇게 써놓았더라고요.
세상에 태어나서 내가 가장 잘한 것은 너희들을 낳은 것이란다.
누가 썼냐고요? 당연히 제가 썼습니다. 힘들다 힘들다 해도 생명을 잉태하고 경험하는 일은 제 인생에 '예기치 못한 기쁨'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조각조각 남긴 사진과 글을 모아 나만의 매거진을 하나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를 돌아보고 추억을 저장하는 것은 제 천성과 맞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요. 후배가 작년에 그랬거든요. 중년에 천성과 맞지 않는 일도 좀 도전해 보라고. 그러니 지금 저는 타고난 천성에 균형을 좀 맞춰보고자 이렇게 추억팔이를 시작하려고 하는 겁니다.
맞습니다. 한동안 계속 현실적인 이야기만 쓰고 있다 보니 너무 팍팍하더라고요. 촉촉한 이야기가 필요했습니다. 다 지나가버린 일이더라도요. 언젠가 다시 만날 일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어린 시절의 추억은 우리가 나중에 만날 천국의 찰라적 경험이라면서요. 그런 천국보다는 낯익은 이야기들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