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이후엔 그동안 해보지 않은 일을 해볼 것
신혼 초. 별로 잘 웃기는 편이 아닌 내가 딱 한번 시아버님을 빵 터지게 해 드린 적이 있었다. 친척 결혼식이 있었던가. 부산에서 올라오신 시부모님이 며칠 서울 신혼집에 묵고 계셨다. 점심상을 물리고 막 사과를 깎던 중이었다. 남자들 밥 챙기느라 식사도 제대로 하는 둥 마는 둥 하시던 어머니. 첫날 집에 발을 들이자마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쓸고 닦으시더니 그날 후식을 먹는 중에도 어머니는 잠시도 쉬지 않으셨다. 물티슈를 뽑아 뭘 또 부지런히 바닥을 계속 훔쳤다. 그때, 아버님에게 포크로 사과를 하나 집어드리던 내가 무심코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어차피 금방 더러워질 건데, 뭘 그렇게 열심히 청소하세요?
그때였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사과를 한입 베어 물던 아버님이 사과를 내뿜으시며 와하하하, 박장대소를 하셨다. 그게 그렇게 웃길 말이었던가, 하고 어머니와 내가 동시에 진의를 파악하는 사이. 나는 알았다. 아버님이 평소에도 청소에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자주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셨다는 것을.
평생 집안일에 진심이셨던 어머니와 달리, 나는 한 번도 집안일에 진심인 적이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주부가 된 뒤에도 집안일에 별로 맘 붙이지 못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결혼 전에도 금방 원복 되거나 뒤바뀌거나 되풀이해야 하는 일에는 잘 마음이 가지 않았다. 처음 누군가와 만나면 진심을 다해 사랑하고, 마음이 떠나면 애써 잡지 않았다. 물건이 망가지면 고쳐 쓰지 않았다. 이상한 방식으로 영원한 것을 추구했고, 금방 변할 것에 무심했다. 그러니 해도 티 나지 않고, 며칠 뒤면 뽀얗게 먼지가 앉을 청소 같은 것에 내가 눈길을 줬을 리 만무했다. 그 뒤 아이가 생겼고, 아들이 연이어 둘이 태어났다. 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10시가 넘어 들어왔고, 그런 남편이 어느 날 견종 중에서도 가장 털이 많이 날리는 스피츠를 집안에 들여온 이후에는 아예 청소에 담을 쌓고 살았다. 내가 깔끔쟁이였으면 저놈 우리 집에서 못살았어~, 하고 우기며.
내가 나이 오십에 뒤늦게 청소 알바를 하게 되었다고 하자 주변 지인들이 반신반의했던 것도 당연했다. 나 조차도 내가 이런 일을 하며 살게 될 줄 몰랐으니까. 일단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일이었다. 몸 쓰는 일에 대한 편견이 아니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 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조차 모르는. 그래서 자신이 없었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나는 평생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선택하거나 추구하며 살지 않았다. 그저 대학에 들어가 책을 읽었고, 졸업 후 책을 다루는 직업을 가졌기에, 경단녀가 된 후 다시 뭔가를 시작하려 했을 때에도 자연스럽게 책을 떠올렸을 뿐이다. 그나마 국어학원이 가장 가까운 선택지로 보여서, 애들 어느 정도 크고 난 뒤 2년 여 학원 알바를 했다.
하지만 뭐든 해봐야 제대로 알게 된다. 국어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제야 알았다. 학원은 내가 책을 좋아하는 방식과 전혀 가깝지 않았다는 것을. 무언가 좋아하면 그걸 업으로 삼지 말라더니. 현실과 이상 사이엔 어김없이 갭이 존재했다. 나는 티칭, 즉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에 타고난 알레르기가 있었다. 어떤 모임에서도 누군가 조금이라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방식으로 말하면, 바로 안에서 실소부터 일었다. 그러니 아이들 앞에서 내가 무슨 확신으로 가르칠 수 있었겠나. 이 나이 먹도록 내 인생 후반전에 떠오른 삶의 질문에도 아직 제대로 답하지 못했는데, 그런 내가 대체 누굴 가르친단 말인가. 이런저런 이유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살 만한 곳이며 희망이 가득한 곳이라고, 아이들 앞에 서서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내가 최근 인생에서 깨달은 것은 이현의 소설 <호수의 일>에서 주인공 '호정'의 부모님이 무심코 던진 다음 대사 같은 것이다.
"어느 날 돌아보니 내가 만두를 빚으며 살아가고 있더라고."
호정의 부모님은 젊은 시절 태권도 국가 대표 상비군이었다. 어느 날 둘은 사랑에 빠져 호정을 임신하게 되었고 그 바람에 선수촌에서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작은 만두가게를 운영하며 살고 있다. 젊은 시절 우리는 모두 호정의 부모님처럼 꽤 대단한 일을 하며 살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돌아보면 그중 대부분은 만두를 빚으며 살고 있는 것이다. 거기엔 어떤 평가도 들어 있지 않다. 슬픈 건, 아이들 사춘기와 갱년기를 겪으며 내 아이도 나와 크게 그다지 다르지 않을 거라는 예감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게 지금 나와 내 이웃이 살아가는 적당히 부침 있는 삶이며, 최근 내가 알고 경험한 진짜 세상이다.
중년을 지나며 보니 주변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었다. 달라진 삶의 조건을 기꺼이 내 것으로 받아들이며 사는 사람과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며 사는 사람. 그리고 후자 중엔 유독 우울증 환자가 많았다.
청소라는, 내 생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을 시작하며 나는 불현듯 오래전 상담사인 후배가 내게 했던 충고가 떠올렸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더 타성에 젖고 자기한테 익숙한 것만 하려고 하잖아요. 그래서 중년 이후엔 평생 해보지 않은 일을 일부로라도 해보는 게 중요해요."
그때 나는 후배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건 여행이나 취미 등의 버킷리스트 같은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나이 오십 쯤 되고 조금 일찍 은퇴한 내 또래들이 여유를 부리며 하는 그런 것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후배가 말한 '해보지 않은 일'의 진의를. 그게 꼭 럭셔리하고 낭만적인 일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중년에 저마다 도달한 삶의 조건이 다르 듯, 어떤 이에게는 청소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그 둘을 연결해서 해석할 만큼 조금 철이 들기도 한 것 같다. 그러니 지금 써나가는 내 이야기는 결코 우울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실로 오랜만에 내 인생에 대해 희망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