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잊었던 어떤 유용함에 대한 감각에 연결되다
본격적으로 청소를 시작한 첫 주. 안 쓰던 근육을 쓰다 보니 청소를 마치면 목과 허리와 손목이 뻐근했다. 평소 키보드나 피아노만 두들겨 대던 손가락이 마디마다 비명을 질러댔다. 주변엔 어린이집 식판 나르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어깨 수술을 받은 친구에다, 학교 급식실에서 몇백 명 분의 조리도구와 솥을 들고 나르느라 병원을 수시로 들락거리는 친구가 있었다. 괜히 말년에 안 하던 짓 하다가 병원비만 더 든다던 친구들의 충고가 어른거렸다. 그건 나도 싫었다. 처음으로 내 몸의 반응에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평상시 비타민도 잘 안 먹는 내가, 그러다 혹 몸 관리라도 잘못해서 갓 시작한 일을 그만두게 될까 봐, 내 충동적인 결정 때문에 다시 사람을 구하는 수고를 누군가에게 끼치게 될 까봐. 매일 몸을 유심히 살피게 되었다. 침대 곁에 예전에 사두고 잘 사용하지 않았던 적외선램프를 켜둔 채 잠이 들었다. 자는 동안에 몸을 이완시켰다.
효과가 있었다. 갓 일어났을 땐 다소 뻑뻑하던 근육이 늦은 아침이 되면서 차츰 자연스럽게 풀렸다. 온몸에 이상한 활력이 돌았다. 몸뿐만이 아니었다. 남자들 아침밥만 챙겨주고 나면 무기력하게 늘어지던 아침에 탄력이 생겼다. 어딘가 갈 곳이 생겼다는 것. 할 일이 생겼다는 것.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 아침과 저녁을 차려주면 먹는 둥 마는 둥, 해도 되고 안 한다고 누군가 크게 눈총 주지도 않는 집안일 같은 거 말고. 내가 책임감을 가지고 해놓지 않으면 다음날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끼칠 수 있다는, 나는 그 대가로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있으며, 그러니 잘 해내고 싶다는. 그건, 내가 이 사회에 쓰임이 있고 누군가와 함께 발맞추고 있다는. 오래전 잊었던 어떤 유용함에 대한 감각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건, 불 꺼진 병원 문을 딱 열고 들어선 순간 나를 맞아주는 따듯한 온기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고 난 사람들이 남기고 간. 펄펄 살아 있는 열기가 아니어서 더 좋은. 소파와 책상과 바닥에 은은하게 남아 있는. 사물만이 내게 건네줄 수 있는 평온. 진상 학부모도, 공부에 찌든 학생도 없는. 그리하여 나 스스로 계속 내 쓰임을 평가하고 자책하고 독촉할 필요가 없는. 내가 딱 찾던 적정한 온도의 알바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아... 이 좋은 걸 내가 왜 같이 하자고 했을꼬.
두세 번 함께 합을 맞추자마자 나는 파트너에게 말했다. 파트너는 나 같은 백수와 달리 어엿하게 자기 명의의 학원을 운영하는 무려 학원장이었다. 그러니, 쇠뿔도 빨리 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어이, 파트너! 허리 아프지 않아? 힘들지? 손가락이랑 손목 안 쑤셔?"
"아니? 나는 전혀 괜찮던데? 아무렇지도 않아."
"정말? 당신은 솔직히 말해서 이런 거 할 사람이 아니잖아. 학원 운영에 좀 더 심혈을 기울이는 게 좋지 않겠어?
"아니야. 나 이거 너무 재밌어."
"흠... 아닐 텐데. 청소하는 시간에 방학특강 하나 더 개설해서 학생 한두 명 더 붐업하는 게 낫지. 이런 일은 하찮은 나에게 넘기고, 자기는 학원장 본업에 충실하는 게 어때?"
친구도 처음의 진심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나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았기에 건넨 말이었다. 하지만 친구가 이제 와서 무슨 말이냐는 듯 '눈알을 부라리며(카톡 너머로 나는 그렇게 느꼈다)' 말했다.
"뭐래~~ 나 절대 그만 못 둬! 그만둘 거면 당신이 그만둬!!!"
같이 하니 백업도 되고 부담도 덜 되겠다며 간드러지던 우리 사이의 호의는 시작한 첫 주. 완전히 사라졌다. 안타깝게도 내 파트너도 나와 똑같은 걸 느꼈던 거다. 그 짧은 새에.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