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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죽는다

나보다 어린 이의 죽음을 떠나보내며

by 쏭마담


사촌동생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마흔여덟. 너무 젊은 죽음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한동네에 살았고 교회에서 함께 한 추억도 많았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자 뿔뿔이 흩어졌고, 그다음엔 하나 건너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띄엄띄엄 들었을 뿐이다.


다시 만난 건, 해외에서 살던 동생이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기특하게도 동생은 어린 시절 교회에서 언니 동생 하며 지냈던 지인을 함께 데리고 나왔고 우리로서는 거의 20년 만의 만남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그리워할 새도 없이 살았는데. 동생 덕에 갱년기를 코앞에 두고 다시 만났다. 가장 순수하고 예뻤던 시절의 우리로 돌아갔다.


그 후로도 동생은 잊을 만하면 우리를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네가 차려준 잔칫상에 초대 받아 우리는 내기라도 하는 듯 떠들어댔다. 안 보이면 잊고 살다가도 막상 부르면 언제 그랬냐는듯 네게 달려갔다. 그때도 너는 구석에서 조용하게 우리 이야기를 경청해 주는 사람이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공감하며, 함께 웃어주었다. 너에겐 나이 들어 만나는 여자들이 어느 정도 걸치게 되는 허례도, 삶에 찌든 하소연도, 더 이상 내 것 아닌 열망도 없었다. 너는 늘 열아홉 대학생 같기도 하고 동시에 중년의 어른 같기도 했다. 너는 세월에 걸맞은 모습을 잘 갖추며 살았다.


몇 년 전 암 선고를 받았던 너는 자연치료를 고집했다. 나는 그 마음에 십분 동의했다. 통증에 대해 누구보다 허약한 나이기에, 누군가처럼 방사선에 맞서 싸울 용기가 없기에, 나도 너와 같은 처지였다면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고 지지했다. 놀랍게도 한동안 네 몸속에서 자라던 암은 기적처럼 자취를 감췄고, 너는 그렇게 완치되는 듯했다. 몇 년 후 다시 발병했을 때. 이번에 너는 현대 의학의 힘을 빌렸다. 임상 실험도 마다 하지 않고, 최근까지 너는 의연하게 네 병에 맞서 싸웠다. 그럴 때조차도 너는 여력이 생길 때마다 우리의 안부를 물었고, 우리를 불러 모았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다.


몇 주 전 새로 시도한 임상 주사의 부작용으로 네가 병원에 다시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만 해도 네가 다시 거뜬히 일어나 "잘 지내시죠?" 하며 다시 우리를 불러모을 줄 알았다. 하지만 밤낮으로 네 곁을 지켰던 가족들의 바람도 무상하게, 어느 순간부터 너는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며 숨을 쉬었다.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말이 돌았을 때, 나는 너를 보러 가지 못했다. 처음엔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다음엔 네 얼굴을 차마 보지 못할 것 같아서. 오랜 투병으로 상한 네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네 프사 사진처럼 여느 때처럼 환하게 웃는 네 모습으로만 널 기억하고 싶어서. 우겼다. 나라도, 너라면, 그러길 바랐을 거라고.


그때 마지막으로 손이라도 한번 더 잡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네 얘기를 조금 더 들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마지막에 대해선 네 오빠가 다시 네 언니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들었다. 네가 호흡기 너머로 가늘게 숨 쉬는 동안 너의 오빠는 네 귀에 속삭였다. 커다란 인공호흡기에 갇혀 너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만 주루루 흘렸다. 네가 오빠의 목소리에 얼마나 답하고 싶었을지에 대해 생각하며 우리는 울었다. 나도 사랑한다고, 조금 더 사랑하고 싶다고. 너는 그 목소리에 얼마나 화답하고 싶었을까. 네 삶이 얼마나 충만했는지 잘 알기에 우리는 네 마지막을 이야기하며 네 장례식장에서 부둥켜안았다.


살아오면서 적지 않은 죽음을 보았지만, 네 죽음 앞에서 그동안 정의 했던 나의 모든 죽음에 대한 관념이 사라졌다. 꽤 오랫동안 나는 신에 대해 물었고, 최근엔 어느 정도 답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죽을 수밖에 없다고, 나는 배교자처럼 네 죽음 앞에 고백한다. 네 평생 신을 향한 사랑, 변치 않은 믿음과 헌신의 삶을 너무나 잘 알기에. 너무 때 이른 너의 죽음을 나는 어떤 언어로도 해석할 수 없다.


평생 인간은 신의 뜻을 구하지만, 한낱 인간은 신의 뜻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죽는다.


그저 저 넓은 우리 은하의 나선 팔 끝자락에 매달린 아주 작은 별 하나가 거느린 작은 행성 지구에서 살았던 수천억 인간 중 하나일 뿐인 우리는, 바닷가 모래알 보다 많다는 저 우주 너머 별과 그 별 사이에 놓인 무한한 공간 하나 헤아리지 못하는 우리가, 그 모든 것을 만드신 신의 뜻을 평생 헤아리다 갈 뿐이다. 우리는 그분이 땅의 기초를 어떻게 놓았는지, 우리를 어머니의 모태에 어떻게 심으셨는지, 광명이 어디로부터 오고 흑암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그저 보내신 대로 살다가 부르시면 모든 것 놓고 돌아갈 뿐이다. 그러니, 신에 대해 어쩌고 저쩌고 조금이라도 안다고 자부하는 내 안의 것들아. 그저 신 앞에 너의 입을 가리고 잠잠히 엎드릴 지어다.


지금으로선 그것 말고 네 죽음을 설명할 언어를 나는 알지 못한다. 너 천사의 죽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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