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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Dec 16. 2024

이스라엘의 신은 백성에게 왕을 허락하지 않았다

멀쩡한 인간도 완장만 차면 개가 되는 이유



다른 종교의 경전이나 신화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던가? 왕을 원하는 백성에게 왕을 허락하지 않는 신의 이야기가.


다윗과 솔로몬이라는 위대한 왕을 배출한 이스라엘 왕의 계보를 처음 연 것은 바로 '사울'이다. 이스라엘엔 원래 왕이 없었다. 대대로 사사와 선지자가 고루 신의 뜻을 대리하며 백성들을 다스리고 있었다. 하지만 사사였던 사무엘의 뒤를 이은 아들들이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기 시작하면서 백성들의 원성은 높아졌다. 참다못한 백성들은 사무엘을 찾아와 왕을 세워줄 것을 요구한다. (성경 속에서 훌륭한 아버지의 뒤를 잇는 아들의 계보가 드물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윗-솔로몬 정도인데, 다윗에게는 아버지를 왕좌에서 쫓아내고 반기를 든 다른 아들 압살롬도 있었다는 것!)


하나님께서는 왕을 세워달라는 백성들의 요구를 기뻐하지 않으셨다. 사무엘이 이를 두고 하나님께 기도하자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라.' 하지만 언제나 그러셨듯, 하나님은 인간의 요구에 무조건 거절하지 않으신다. 이번에도 기이할 정도로 백성의 청을 수용하고 스스로 깨달을 기회를 허락하신다.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삼상 8:9)


그리하여 사무엘은 왕을 요구하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너희의 양 떼의 십 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그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니(삼상 8:11~18)


너희가 그토록 원하던 왕은 네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뺏어 자기 측근에게 줄 것이며, 너의 아들과 딸을 데려다 자기 하인과 종을 삼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백성은 사무엘의 이 모든 말 듣기를 거절하며 재차 왕을 요구한다. 그렇게 세워진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바로 사울이다. 기름 부음을 받고 왕으로 세워졌으나 곧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했던 왕. 기이할 정도로 정적 '다윗'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괴롭혔던 왕. 끝내 자신의 어리석음과 악함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왕. 사울.




변방에 국경이 생기기 전, 국민과 국가라는 개념이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한 때. 그전까지 백성들은 늘 이민족으로부터의 침략으로 한시도 편안할 날이 없었다. 하지만 왕을 갖게 되고 통치를 받기 시작하면서 적로부터안전보장받게 되었다. 하지만 한숨을 돌리게 되자마자 그들의 입에선 다시 이런 한탄이 새어 나오기 시작다.  

"변방의 도둑을 피해 왔더니 더 큰 도둑을 만났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나. 외부의 적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 주는 위해선 군대가 필요하다. 그들을 유지하기 위해선 세금이 필요하다. 백성들이 먹고 자는 곳, 곡식을 거두고 뭔가 좀 여유가 생기려 할 때마다 세금이 붙기 시작한다. 곧 어린 아들에서 죽은 아버지한테까지 부역의 의무가 뒤따른다. 백성은 그제야 깨닫게 된다. 아, 정부란 것은 바깥 도둑놈 다 막아줄 테니 나한테만 당하라는 것이구나. 법이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으로 보장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소한을 보장해 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거구나. 그러니 정치평론가 유시민 씨의 말처럼, 우리는 어쩌면 정치와 정치인에 대해서도 아래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는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는 제도이며
국가는 선을 행하려 하기보다 악을 저지르지 않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신은 알았던 것 같다. 인간은 힘을 다룰 줄 모르는 존재라는 걸. 한낱 인간에게 너무 많은 힘이 주어지면 결국 미치광이로 전락한다는 걸. 그래서 예로부터 참 괜찮았던 사람도 완장만 차면 개가 되고, 정치권에만 들어가면 인상이 달라지게 되는 거구나.


학교 다니며 반장이나 부반장 같은 걸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 완장을 차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힘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 유독 잘 공감을 못하는 편이다. 이런 나에게 남편이 가르쳐 준 진리가 있다. 남편은 나와 달리 어렸을 때 완장을 많이 차 봐서 그런 심리를 좀 아는 것이겠지.


"힘을 가진 사람이 독단적이 되는 것의 원리는 이거야. 누군가의 대표가 된다는 건, 내가 그들 중에 제일 뛰어나다는 거잖아. 그들이 나를 대표를 뽑아줬다는 건 내 판단과 행동을 신뢰하고 지지한다는 의미고. 만약 나와 저들의 생각이 똑같다면 아무 상관이 없겠지. 하지만 내 생각과 저들의 생각이 부딪칠 땐 어떻게 되겠어? 나는 옳고 저들은 틀리게 되는 거야. 왜? 나는 저들보다 똑똑해서 대표가 되었으니까. 그래서 주변에서 아무리 전문가들이 직언을 해도 듣질 못하는 거야."


힘이란 그런 거다. 절대 반지 같은 것. 원래 그가 어떤 사람이었던 상관없다. 권력은 인간보다 힘이 세기 때문에, 인간은 순식간에 권력에 지배된다. 마치 인간이 권력을 쥐고 휘두르는 것 같지만, 권력이 인간을 사로잡는다. 인간을 흔들어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하게 만든다. 주제넘게 힘을 쥔 인간의 광기를 막을 수 있는 건 오직, 그 힘 위에 더 큰 힘이 있다는 걸 알게 할 때뿐이다. 


그걸 민주주의 헌법에서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라고 명시하고 으며, 성경에서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권세'라고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사사(士師) :  시대에 유대 민족을 다스리던 제정일치의 통치자(네이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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