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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론

by ROVER

나는 가정 내에서 평생 착취와 폭력, 희롱을 당해 오면서 그것이 사랑이라는 세뇌에 속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가장 괴로운 건 늘, 내 친모의 미성숙과 무능이었는데 내가 어린 시절 친족에게 숱하게 성적인 폭력을 당해 왔다는 사실을 어렵게 꺼내 놓았을 때 내 친모의 미성숙과 무능은 절정에 이르렀다. 그는 자기 친정인 내 외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자기 삶과 나를 제물로 삼는 이였는데 자기 친정에 속하는 누군가의 성범죄를 밝히는 나를 등지면서까지 자기 친정 사람들 비위를 맞추고자 했다. 외가 사람들 또한 잘못된 건 나라고 입을 모았다. 그 충격적인 모욕을 5년이나 견딘 끝에 나는 그들 모두와 절연하고 먼 도시로 떠났다. 단 한 사람도 초등생이었던 내가 당한 폭력에 공감해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삼켜 내는 데 꼬박 3년이 걸렸다. 그 사이 나는 공황 장애를 겪었다. 30대 초반의 일이다.


내 삶은 왜 이따위인가. 그 생각이 나를 끊임없이 탐구의 세계로 이끌었다. 끝내 나는 동서양의 모든 지혜들을 통합해야 우리가 삶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는데 그중 우리가 경험하는 최악의 고통과 거기에 숨겨진 교훈, 기회를 이해하기에는 점성학 출생 차트의 카이론이 가장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카이론은 인간이 살면서 경험하는 상처와 치유, 성장과 성장 공유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자리인데 내 카이론은 점성학 출생 차트에서 가족에 해당하는 자리에 있다. 그것을 처음 발견하고 깊은 공감을 받은 듯하면서도 이상하게 뭔가가 해방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내가 그것들을 경험했구나, 그다음은 뭘까, 라는 생각에 대한 답까지 카이론은 제시하는데 내 카이론에 따르면 나는 이 비참한 가정 경험에서 치유된 뒤 나 같은 사람들을 도우며 배움과 성장을 이어 나갈 수 있다. 나는 상담을 업으로 하니 이쪽에서 남은 과정을 풀어나가려 한다.


실제로 내가 원가족을 떠난 뒤 관련 정보들을 사람들과 나누고 특히 나르시시스트와 관련된 상담을 하기 시작했으므로 내 카이론은 지금까지 그 자리에서 내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상처 입은 치유자인 카이론.

20대까지 태양보다 달보다 내게

더 큰 영향을 미쳤던 그것을

지금은 하나의 도구로 쓰고 있다.


내가 주로 무엇을 하러 이곳에 태어났는지 보는 것도 점성학 차트에서 흥미로운 부분이지만 내가 어디서 가장 깊은 상처를 경험하게 되는지 보는 것도 그 못지않게 흥미로운 경험, 유익한 경험이다. 카이론을 직면한다고 가진 상처가 갑작스럽게 아무는 건 아니지만 이 개념을 익히고 있으면 피해자 의식에서 빠져 나와 삶을 어떤 기획자의 시선에서 바라보게 된다.


내 삶에서 이것이 계획된 것이라면 나는 이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자문하는 시간 속에 일방적인 피해자는 없다. 의식 변환기이자 인류의 주체성 확립이 본격적인 숙제가 되는 지금, 내가 가진 이 작은 지식들을 공유함으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내면 세계에서 도약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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