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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단편소설)


혹시 '지폐 알레르기'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가 설명하기를  '지폐 알레르기'는 지폐를 만지면 피부에 알레르기가 온 몸에 두드러기처럼 퍼지는 희귀한 병인데 자신이 그 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현금은 지니고 있지 않으니 자신의 자서전을 써주는 댓가를 나중에 다른 방법으로 결제해 주겠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 말을 어렵게 꺼내는 그를 바라보며 속으로 '그런 말도 안되는 병도 있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돈 받고 자서전을 써주는 삼마이(일본어에서 파생된, 가부끼극에서 단역엑스트라를 일컫는 말로 방송가에서 삼류를 뜻하는 은어)작가라고 날 바보 취급하는 건가 생각했다.


‘글을 써줘 말어?’


명색이 나름대로 문학의 열정을 가지고 있는 작가인데 아무리 돈이 궁하지만 이런 사람의  자서전까지 써야 하나 살짝 갈등이 왔다.


‘하기야 나도 뭐 이상한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긴 하지.’


난 어릴때 공부를 곧잘했다. 자연히 성적이 무척 좋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험장 제일 앞자리에 앉기만 하면 머리가 노래지는 희귀한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 특히 시험 감독관과 바로 마주보는 앞자리에 앉으면 입에서 거품도 나오게 되는 간질현상까지 추가되는 참으로 특이한 정신병이였다.


매번 중요한 시험때마다 내 자리는 제일 앞자리에 그것도 시험관 바로 앞에 배정되어 시험을 치기는 커녕 번번히 교실에서 쫓겨나가 양호실에 입원되었다. 재수, 삼수를 해도 이상하게 시험 당일날 내 좌석은 언제나 시험관 바로 앞자리였고 어김없이 나는 교실에서 쫓겨났다.


 -공부를 잘하면 뭘하냐 대학교에 들어가야지..


아버지는 조신하게 집에서 재수하고 있는 내 뒷통수에 대고 매번 이말만 반복하였다.


-아니 공부를 잘해야 시험을 잘 치고 대학에도 들어갈거 아닙니까?   


울컥하는 마음에 아버지에게 대들었지만 돌아오는것은 귀싸대기였다.


-이 자식이 어디 부모한테 대들어


아버지는 얼굴을 붉히며 나에게 고함치고 어머니가 말리고… 아.. 정말 재수 기간 동안 재수없게 이런 일만 단조롭게 반복되었다.


윌슨병, 근이영양증, 고셔병, 베체트병, 코렐리아드랑예증후군, 망막색소변성증,부신백질이영양증,소뇌실조증,레트증후군,루게릭병,

쇼그렌증후군….


이건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찾아낸 불치병 이름인데 혹시 내가 가진 시험장 맨앞줄 알레르기란 병이 있는지 검색하다가 모으게 된 불치병 리스트였다.


후에 이 불치병 리스트는 아버지한테 얻어 맞을 때나 어머니한테 잔소리 들을 때, 잠시 힘든 현실을 벗어나고 싶을때 입으로 웅얼거리는 주문이 되었다. (사실 웅얼거린다고 더 혼났었지만)


시간이 흘러 내가 국문과에 어렵게 입학해서 소설을 쓰고자 마음 먹었을때는 이런 불치병이름들은 내가 만든 소설속의 캐랙터에게 굉장히 요긴하게 써 먹을 수 있는 리스트가 되었다.  


내가 문학에 입문하게 된 것은 삼수, 사수 뒤에 가까스로 치를수 있었던 대입시험 점수로 들어갈수 있었던 학과가 국문과밖에 없어서였다. 허지만 어릴때부터 낮은 자존감으로 똘똘 뭉쳐진 나 자신에게서 문학은 훌륭한 탈출구가 되어 주었다. 문학속에서는 나를 제외한 다른 멋진 모습으로 태어나는 것이 가능했고 돈도 하나 안들이고 내가 만든 세계속에서 모든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속에서 눈부신 조명을 받을 수 있었다.


누가 들으면 거참 단순한 문학관이라고 폄하할 수 있겠지만 내가 좋다는 동기가 반드시 남에게 감탄을 자아낼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 또한 나의 소신이였다.


남자로써 평균미달의 168cm의 키에 직사각형같은 얼굴에 잔뜩 겁을 집어먹은 듯한 큰눈에 들창코와 순대를 갖다 부친것같은 두툼한 아랫입술을 가진 내가 모든 여성들이 흠모하는 매력적인 남성으로 사랑을 받을 곳은 오로지 소설 속밖에 없다고 나는 확신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있었다. 번지르하게 이상과 꿈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아도 사람은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내 문학의 주제는 언제나 ‘사랑’이였다.


세속적인 사랑이 아니라 다이아몬드처럼 투명하고 순수한 사랑.


나는 불가지론자이지만 사랑이야 말로 조물주의 본성이자 하나님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세상 모든 문화의 주제는 사랑이다.


대중가요도 영화도 종국에는 다 사랑타령이다. 설령 딴주제를 이야기한다고 해도 사랑은 반드시 곁들인다. 그래서 나의 문학세계는 딴 걸로 빙빙 돌리지 말고 그대로 ‘사랑’을 표출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종교를 욕하고 종교인들에게 반감을 가지는 이유는 다른 것이 없다. 바로 사랑이 없다는 이유에서라면 틀린 말이 아니다. 예를 들어 성경이 오류투성이고 신학이 비이성적이라고 반박하는 사람들은 아주 극소수다. 물론 유명한 석학들이 요목조목 성경구절들을 반박하지만 일반인들은 그들이 사실 무슨 말을 하는지 관심도 없고 이해도 하지 못한다. 오로지 종교인들이 사랑이 없냐 있냐에 따라 광분하고 악플달고 욕지거리를 하는 것이다.  종교를 떠나는 사람들도 반드시 떠나면서 하는 말이 ‘교회에 사랑이 없어 떠난다’라고 한다. 신학이 납득이 안가서 떠난다고는 하지 않는다.  


-저는 지폐 알레르기 때문에 카드만 사용하죠. 참! 원고료 넣어드리게 구좌 번호 주시죠.


그는 갑자기 생각난듯 말했다.


-예? 거 참 난처하네요. 전 곧 한국으로 역이민 가거든요. 은행구좌가 없어요. 은행구좌를 닫았거든요.


잠시 ‘지폐 알레르기’환자님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나와 그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한국으로 되돌아 가신다고요?


-예. 부모님이 한국에 계시거든요.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 쯤에 한국은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사회적으로는 계급주의 국가로 변화되었다. 많은 한국 젊은이들이  전세계 각지로  흩어졌고 나는 홀홀단신 미국행을 택했다. 몇 십년 전에는 경제대국이였지만 지금은 국가적 파산 일보직전인 미국을 택한 이유는 단지 미국땅 어디엔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것이 있을 것만 같아는 생각에서 였다. 물론 아메리칸 드림의 그 찬란한 분홍빛에 크게 기대는 걸지 않았지만 극도의 빈부격차와 선진국형 이기주의/개인주의가 판을 치는 한국의 일당 사회주의 정부보단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부패한 정부를 무너뜨리고 국민 모두가 이나라의 주인으로 평등하게 잘 살아보자는 캐치프래이즈를 걸었던  정당들은 하나 같이 정권을 잡자, 걸었던 꿈이 컸던 만큼 몇십배 몇백배 철저히 순진한 한국 국민들의 희망을 하나씩 부숴 뜨렸었다.  혁명의 정신이고 뭐고 희망을 잃어버린 대한민국 국민들은 가지고 있는 돈보따리를 챙겨 해외로 이주할 준비를 서둘렀다. 주위의 많은 친구들이 미국행을 택했다. 부모님은 외아들인 나에게 여행가방을 챙겨주면서 자신들은 그냥 한국에 남겠다는 말을 했다. 그래도 전세계에서 자기 모국만한 나라가 어디 있겠냐며 한국사람은 그래도 한국 땅에 몸뚱아리를  묻어야 한다는 말을 덧부쳤다.  나는 더 이상 질문을 달지 않고 홀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전 팔레스타인 한 지방도시에서 태어났죠.
 
 내 과거의 여행에서 현실로 나를 돌아오게 만든것은 오랜 침묵뒤에 입을 연 그의 이 한마디였다.
 
 나는 정신을 추스리고 랩탑컴퓨터를 열었다. 그리고 스크린에 뜬 그를 만나기 몇일전에 자서전을 쓸때 도움이 될만한 신상정보자료라고 그가 보낸 이메일을 힐끗 쳐다보았다. 고향이 팔레스타인이라니 한국인이 아닌가? 그래도 액센트는 좀 특이하지만 한국말은 참 잘한다고 인정했다. 뭔가 웅얼거리는 듯하는 발음인데도 정확하게 상대방은 이해할 수 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마음전체로 이해가 된다면 과장이겠지만 그의 입의 나오는 한 단어 한단어는 내 마음속에 울림이 있을 정도였다.


나와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곳은 LA 코리아타운의 한 호텔커피숍으로 토요일 정오인데도 커피숍내에서는 나와 그’지폐 알레르기’환자님 그리고 굉장히 일하기 싫어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여종업원 밖에 없었다.


이 자서전 작업은 한국으로 되돌아갈 비행기표값도 없어 난처해 하는 나를 본 하숙집주인이 소개해준 일감인데 망치지 말아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나는 헛기침으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아..네..어디보자...출생지도 팔레스타인지역의 예루살렘이란 곳에서 태어나셨군요. 엉? 그런데 생일에 월일은 있는데 생년이 없는데요?
 
 나는 그냥 12월25일이라고 적혀있는 걸 발견하고 커피숍 가죽소파에 몸을 담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제 자서전에는 생년이란 무의미한 것 같으니 그냥 제가 드린데로 12월25일이라고만 적어주세요.
 
 나는 그가 몇살쯤일까 찬찬히 바라보았다. 어디에서 구했는지 한복 두루마기같은 윗옷을 입은 조금 깡마른 체구를 가진 그의 인상은 어디선가 본것같은 친근감이 묘하게 흘렀다. 전체적으로 풍기는 분위기로 보아(한국에서도 요즘 30대는 한복두루마기같은 옷을 절대로 입지 않는다)가까스로 불혹을 넘긴 것같아 보이는데 동안에서 나오는 미소는 정확한 나이의 추측을 완전히 미궁속으로 밀어넣었다.
 
 -그냥 연도는 제외하고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해가 태어났다고 적어주시면 안될까요?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지? 뭐야 자서전에 자신의 나이를 밝히길 싫어하다니..’
 
 이번 자서전은 때려 치울까라는 생각을 가까스로 가라앉히고 나는 앞에 놓인 작은 테이블위의 식어 빠져버린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혹시 나이를 밝히기 싫으신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그래도 자서전을 몇번 써본 작가의 자존심(의뢰인을 철저하게 연구하고 나서 전지전능적 관점에서 글을 쓴다는)이 발동해서 묻는 나의 질문의 톤이 약간 무례했음에도 그의 미소에는 1밀리미터의 흔들림이 없었다.
 
 -자서전에는 그냥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쓰고 싶습니다. 물론 특이한 줄은 압니다만 제 요구대로 생년은 적지말고 그냥 생일만 적어주세요. 나중에 그 이유를 독자들이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뜻 잘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몇가지 궁금한 점을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손가방에서 작은 음성녹음기를 꺼냈다. 나는 자서전을 쓸때 되도록이면 의뢰인의 삶을 ‘사랑’할려고 애를 쓴다. 의뢰인의 숨소리까지 빠뜨리지 않고 녹음을 해서 반복해 듣다보면 어느정도 ‘사랑’까지 갈 수 있다.


-작가님은 왜 다시 한국으로 역이민을 가시는거죠?


내가 주섬주섬 인터뷰를 준비하는 동안 그가 먼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긴장을 했다. 자서전의 작가는 의뢰인의 삶을 사랑해야지 의뢰인과 인간적으로 친해지면 안되기 때문이였다. 작가는 의뢰인의 삶속에 전지적 관점에서 철저히 이방인처럼 행동해야 했다.


그런데 그가 왜 역이민을 하느냐는 질문에서 나는 오래전 친구가 나를 걱정해주는 듯한 연민이 느껴졌다.


그는 마치 내 마음을 확 풀어지게 문을 여는 열쇠같았다. 그의 말이 왜 정답게 느껴지는지 이유를 전혀 알수가 없었다. 나는 일부러 무심하게 대답했다.


-미국이 천국인줄 알았는데 살다보니 한국이 천국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더 나은 곳을 ‘천국’이라는 단어로 비유하길 좋아했다. 이민의 목적은 현재 자신이 사는 나라의 환경보다 더 나은 환경의 나라로 이사가는 것이다. 물론 해외유학도 마찬가지다.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더 나은 교육적 목표를 이룰수 있는 곳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자신이 이사갈 곳을 막연한 소문만 듣고 간다는 점이였다. 철저하게 이민가고 싶은 나라를 사전답사 하거나 조사를 하고 이민을 가는 사람들은 드물다는 것이다. 마치 ‘복권’이 당첨되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막연히 꿈을 이루게 되리라 믿고‘무작정’떠나는 것이다.  


-천국이라..재미있네요. 그럼 작가님은 천국이 있다고 믿는건가요?


-제가 믿는다기 보다는 그냥… 주위에 교회다니시는 분들이 많아서 ‘천국’이라는 단어를 나도 무심결에 쓰게 되었는데 사실 전 바로 눈 앞에 보이는 현상들만 믿죠.


-그럼 천국을 안 믿는건가요? 그런데도 한국으로 다시 역이민가는 이유가 천국이라는 것을 깨달아서라니 좀 이해가 가질 않는데요.


듣고 보니 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천국을 믿지도 않으면서 천국을 찾아 이나라 저나라 이민다니는 건 논리에 어긋났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나라 없는 유랑민으로 이렇게 있는지도 없는 지도 모르는 천국을 찾아 떠돌아 다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한번 나는 생각해보았다.


지금 천국 반대 지옥같은 한국사회의 젊은이들은 집단으로 다들 정신적 공황상태 속에 빠져있다. 워낙 고생을 모르고 자라서 인지 사회가 조금 혼란스러워지자 자살까지 하는 청년들도 많았다. 돈이 무조건 최고라는 물질만능주의가 극에 치달았고, 정치와 경제계는 서로 유착되어 부폐될대로 부폐되었었다. 당시 한국사회는 세계 제7대 경제대국이라고 연일 매스컴은 떠들어 댔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한국 사회는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피폐되어 있었었다.   


-그럼 질문을 다르게 한번 해보죠. 천국은 어떤 곳이라고 상상하십니까?


그는 또 나에게 질문을 하였다. 어 이러면 안되는데…질문을 할 사람은 난데..마음이 이렇게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동안 대답은 의지와 상관 없이 내뱉어졌다.


-천국은 사랑이 넘치는 곳이겠죠.


-사랑이라.


그는 또다시 입을 다물었다.  마치 한말을 내가 다시 한번 묵고해보라는 무언의 권유처럼.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의 열렬한 지지자는 아니지만 나는 모든 콤플렉스나 알레르기(나의 시험장 맨앞줄 알레르기도 포함해서)는 무의식속에서 ‘결핍된 사랑’의 결과때문에 나타난다는 주장에는 공감하는 편이였다.


세상엔 너무 사랑이 없다.


내가 불가지론자로 신 혹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있더라도 우리 인간과는 아무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사랑’이라면 ‘천국’의 반대 개념인 ‘사랑’없는 ‘지옥’같은 현실이 어떻게 만들어 질 수 있겠는가 하는 점때문이였다.  


-좀전에 작가님께서 한국으로 역이민가시는 이유가 한국이 천국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말은 곧 한국인에게 천국같은 사랑을 느낄수 있는 유일한 곳은 결국 한국 밖에 없다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죠?   


질문은 어렵고 길어졌지만 마음은 점점 편해졌다.  


-맞습니다. 물질이 풍족해서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존중해주는 곳이 천국이죠. 미국이 예전에는 초강대국이였다가 금융사태후에 망하게 된 것은 인간을 사랑하기 보다 돈을 사랑해서 아닙니까? 얼굴색깔이 틀리다고 사랑은 커녕 인종차별하는 미국은 정말 지옥입니다.


나의 대답은 단호했다. 진작 미국 오기 전에 알았더라면 미국으로 오는 길을 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격동적인 역사의 회오리가 몰아치자 아무 생각없이 한국을 버리고 미국을 택한 내가 어리석었다.


-상대적으로 한국이 미국보다 사랑이 있어 보이는 천국이라서 역이민을 택하신다는 말이 정말 인상깊네요.


그는 나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마치 한국도 과연 천국이겠느냐는 질문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그런 보장은 절대 없다. 지금 나는 무조건 한국으로 역이민을 가야한다는 생각밖에 머리에 없기 때문에 논리적인 계산이나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였다.


나는 시애틀 타코마 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에 첫발을 디뎠다. 공항에 닿기도 전에 저공비행하는 비행기의 창문을 통해 보이는 높은 침엽수와 잔뜩 찌푸린 날씨는 참으로 생경스러웠다. 아버지가 예전에 잘 아시는 친구분이 시애틀에서 치킨테리야키집을 하는데 그분이 나를 공항에 픽업하러 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가 나의 투자이민수속을 도와줄것이였다.


‘나도 이제 치킨테리야키라는 것을 만들어야 하나?’


다른 나라에 도착하는 기대감보다는 착찹한 마음이 나를 지배했다. 대부분 미국으로 이민오는 한인들의 직업은 미국으로 첫발을 딛을때 공항에 픽업오는 사람의 직업을 따라가게 된다는 대화를 부모님께 들은 적이 있어 그래도 명색이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사람인데 미국에서 닭요리나 해야 한다니 서글퍼지기도 했다. 허나 한편으로는 유래없는 국가재정파산으로 이민자나 유학생들의 돈보따리를 노린 미국정부의 무차별 적인 입국 비자 남발덕분에 군사독재 사회주의 한국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의 글쟁이로 굶어 죽지 않고 미국으로 오게 된 안도감도 느껴졌다.


하여튼 복잡 뒤숭숭한 마음으로 나는 미국땅에 들어왔다.


공항에 나를 픽업하러온 아버지 친구분은 한인들의 미국이민역사가 하와이의 사탕수수밭에서 비롯된 것 처럼 가진 몸뚱아리로 일단 이민초기에는 몸고생은 각오해야 한다고 차안에서 누누히 강조했다.


가내 수공업처럼 집에서 직접 자른것 같아 보이는 좌우대칭이 어색한 깍뚜기머리를 한 아버지 친구분은 사실 몸고생 밖에 할 수 없어 보였다.  아버지가 그의 최종학력이 초등학교였다고 말을 했던 기억이 스쳐지나갔기 때문이였다. 철저히 일반화의 오류로 가득한 자신의 가치관을 남에게 들이내미며 오직 자신이 겪은 경험이 미국생활에서 발생되는 모든 문제의 솔루션이라고 강압적으로 주장해댔다.


처음에는 그냥 아버지 친구분이라고 고분히 인정을 해주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내버려두니 계속 편집적증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내 머릿속에 주입시키려 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게 소위 미국에 일찍 온 올드타이머들의 전형적인 삶의 태도라고 했다. 아버지의 친구분은 철저히 떠나온 한국의 모든 경력과 학력은 미화시키고 미국에서 자리잡고 성공하면 끊임없이 한국을 기웃거리는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무소속 자유인처럼 행동했다.


-그건 그렇고 자서전에 특별히 넣고 싶은 내용은 없으십니까?


참으로 이상하게 앞에 앉은 지폐 알레르기 환자분과 대화를 나누기만 하면 내 머릿속은 이민초기의 과거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뱃속도 배멀미를 겪는것처럼 메스꺼워졌다. 나는 어금니를 깨물고 의자를 그에게 바짝 당겼다.


-제 자서전보다 작가님의 이야기가 훨씬 흥미진진할 것 같은데요.


나는 난처해졌다. 어서 인터뷰를 끝내고 자서전을 써야 역이민갈 경비가 마련될터인데..


-전 뭐 특별난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먼저 선생님의 자서전부터 끝내고 시간이 되면 차차 말씀을 나누기로 하죠.


나는 서둘렀다.

계속 그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말려들어 또 내 이민역사를 읇조릴것만 같았다. 나는 다시 찬찬히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팔레스타인지역에서 태어났으면서도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 사나이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워낙 한국말이 능숙해서 중동지역에서 태어난 한국인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자세히 보니 중동본토인같게도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겉모습의 이질감은 그의 말투와 행동 그리고 풍기는 분위기로 상대방을 편안하고 오래전 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같은 친근감이 느껴지게 만들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움이라고나 할까? 다시 그의 신상정보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가 제공한 신상정보에는 출생지 베들레헴이라는 것과 생일12월25일이라는 것 그리고 눈을 끌지 않는 소소한 정보만 담고 있었다.


-갑자기 외람된 것같습니다만.. 원래 한국분이시죠?


-왜 그런 질문을 하시죠?


-한국어를 너무 잘하셔서요.


-요즘 외국인들도 한국어들 많이 배워서 한국어 잘들 하잖아요


-그럼 한국분이 아니세요?


-작가님이 한국분이라서 한국말을 할 뿐이죠. 그러니까 전 단지 작가님과 소통하기 위해서 한국말을 쓸 뿐입니다.


-오. 몇개국어를 구사하시는 모양이죠?


-상대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는 편입니다.


나는 작가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자리를 고쳐잡고 그를 다시 똑똑히 응시했다. 특이한 캐랙터를 발견했을때의 쾌감이란 작가가 아니라면 절대로 모를 것이다. 그건 마치 막힌 수도관이 뻥뚫리는 듯한 쾌감과 같다고 설명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얼마만에 느끼는 카타르시스인가? 이민와서 미국땅에서는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영혼의 통함이 아닌가?


이게 사랑이다!


주절주절 설명을 달 이유는 전혀없는 것이다. 문학에 입문하면서 나의 본질적 문학주제는 ‘사랑’이라고 입만 떼면 외쳤었다. 아마 내 뼈를 깊숙이 사골국물로 우려내면 사랑만  나올 것이다. 그런 나였기에 사랑이 나타나자 본능적으로 반응한 것이였다. 아. 이성적으로는 도대체 설명 할 수 없는 아니 표현을 넘어 저 편에 존재하는 이 충일감! 그렇다. 나는 오랜동안 사랑을 사랑해왔다. 사랑만을 주제로 글을 썼다가, 찢다가, 멈추었다가, 다시 펜을 든 것 이였다. 오로지 사랑만을 위해 살았으며 사랑만이 나의 종교이자 신인 것이다.


사랑이 세상 모든 만물을 뒤덮고 있는 곳 바로 그 곳이 ‘천국’이며,  나는 그 사랑을 누리며 살 당연한 권리가 있는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반드시 난 그 ‘천국’으로 이민을 갈 것이다. 설령 천국이라 생각하고 이민을 갔다가 나처럼 아니라고 깨달으면 지체하지 말고 당장‘역이민’을 가야 한다. 사실 살아서 ‘천국’을 맞이하는 건‘복권’에 당첨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기는 하다. 허지만 ‘복권’이라도 사야 당첨되는 것이 아닌가?    


-그럼 저랑 편하게 이야기부터 나누죠.


나는 그와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대화를 하다보면 자서전을 집필하는데 도움이 될 자료 몇개는 건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였다.  


-하하. 그렇게 합시다


그는 파안대소를 지었다.  


어.. 저런 미소를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런데 그게 언제, 어디인지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럼 먼저 작가님 미국에 이민와서 힘드셨던 이야기부터 들어볼까요?


그는 상대의 마음을 꿰뚫는 독심술이라도 배운 것 같았다. 마침 내가 미국에서 고생한 이야기부터 꺼낼 참 이였기 때문이였다.


-네..


나는 짧게 대답하고 간단명료하게 미국와서 무얼 했는지를 이야기했다. 난 차라리 짧고 간단한 대답이 차마 다 말 못할 과거를 더 극명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어설픈 변명처럼 주렁주렁 말꼬리를 달아봐야 ‘미국에서 이민자가 고생하는 것이 너 하나 뿐은 아니다’라는 비꼬는 반응만 들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아버지 친구분인 깍뚜기머리 아저씨의 소개로 내가 미국에서 가진 첫직장은 치킨 테리야끼 식당이 아니라 새우통조림 공장이였다. 시애틀시 외곽지대에 위치한 공장인데 내가 과거에 참으로 좋아했던 새우요리를 새우의 새자만 들어도 구토가 나오게 만드는데는 정확히 보름이라는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바다에서 낚여진 새우의 머리부분을 손질하는 것이 나에게 할당된 작업이였는데 시간당 최저임금에 매일18시간을 매주 일하니 급기야 작은 새우들이 인간의 손가락처럼 보이는 환영까지 일어났다. 처음에는 생전 처음 해보는 육체노동에 몸이 익숙치 않아 그럴꺼라 생각하고 한 1년은 참아보자고 다짐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새우가 사람의 손가락처럼 보이는 환영이 점점 선명해져갔다. 밤에 악몽까지 시달렸다.


-그렇게 고생을 하셨는데 좀 쉬어볼 생각은 왜 하지 않았죠?


-당시 내가 미국에서 정착하도록 도와주신 분이 1년 365일 쉴틈을 주지 않더군요.


-네?..


-제가 그 분 집에 얹혀 살았는데 매일 날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죠. 새우공장에서 일을 하지 않는 날에도 그 사람 가게에 가서 방값 정도 되는 일을 해야만 했어요.  


-저런..


나를 바라보는 그의 안타까운 눈길에 어느샌가 내 마음을 스스르 녹였다.


-정말 어디론가 도망쳐버리고 싶었지만 미국은 자동차가 없으면 다리없는 장애인이나 마찬가지란 것은 아시죠? 운전면허증 한번 따볼려고 면접시험을 얼마나 많이 보았던지..

그 우라질의 알레르기때문에 시험에 번번히 낙방을 해버리고 말았죠.


-그게 무슨 말씀이죠?


-전 시험 칠때 맨 앞자리에 앉기만 하면 아주 이상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죠. 미국와서도 예외가 없더군요...


-저도 아까 전에 말씀드렸지만 저도 특이하게 지폐에 알레르기가 있죠. 그런데 돈을 멀리하게 되는 그 알레르기가 나중에 나를 돈에서 자유롭게 해주더군요.


-돈으로 부터 자유라.


알레르기가 지나치게 물질에 빠지지 않도록 경고 해주는 정신적 장치가 된다니 알레르기도 다 나쁜것만은 아니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이 왜 그렇게 눈부시게 성장을 하다가 갑자기 전세계가 폐기처분한 구닥다리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꺼내게 된 줄 아세요?


그는 이야기의 화제를 돌렸다.


-물질만능주의가 그렇게 만든것이 아닌가요? 가진 사람은 너무 가지고 못가진 사람은 죽을 정도로 가난하니까 한국사회가 내린 특단의 조치가 사회주의로의 회귀가 아닌가 생각하는데요.


그러나 거창한 캐치프래이즈를 내 걸었던 한국정부의 사회주의로의 회귀는 결국 돈있는 '갑'들이 모든 권력을 쥐게 되었고 국민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에는 공평하게 배분되는 돈을 위해 죽사사자 일할 필요가 없다고 포기해버리는 무기력한 게으름뱅이로 전락되어 버렸다. 조금이라도 정신이 제대로 박힌 한국의 젊은이들은 한국을 등졌다. ‘사랑’을 찾거나 노동을 해서 정당한 댓가를 받고 그것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이상주의자들은 가차없이 해외로 이민을 떠나버렸다.


-저는 한국이 불평등 사회로 전환한 이유를 다르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


-그건 한국이 민족주의라는 자가당착에 비롯된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가당착이라..


-자기가 한 말에 갇혀버리는 자기모순에 빠진것이죠.


-민족주의라는 자가당착이 사회주의를 불러들였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그는 자신이 앉은 의자를 내 앞쪽으로 조금 끌어당겼다. 조용한 커피숍이라 의자 당겨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제가 싸잡아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죄송스러운데 한국인들은 다들 인종차별주의자들입니다. 단일민족이라는 민족주의를 뒤집어쓴 인종차별주의자들이란 말씀입니다.


-예? 인종차별주의자?


나야말로 미국으로 이민와서 주로 받은 차별이 인종차별이였다. 그런데 내 앞의  ‘지폐알레르기’환자분은 되려 한국인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라고 했다.


-아주 사소한 것도 서로 비교,차별을 잘하는 한국인들을 컨트럴하는 방법은 독재자나 하나의 사회주의 독재정부가 나서서 쥐고 흔들수 밖에 없죠. 한국이 우리 한민족만 최고니 철저히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을 배격하고 쇄국하겠다는 인종차별주의정책을 고수하니까 겉으로 다수의 행복을 외치는 폐쇄된 사회주의로 자연적으로 흘러들어가게 된것입니다. 절대로 북한과 같은 독재공산국가가 되지 않겠다고 발버둥치고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면서도 결국에는 자신과 사회를 함부로 군인들에게 맡겨버리는 자기모순, 자가당착에 빠져 버리다니 정말 가슴이 아픈일이죠.


그의 말을 듣다가 나는 기분이 조금 나빠졌다. 구구절절 그의 말에 공감은 하지만 한국인인 나에게 한국인은 자기모순에 빠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직접 부르는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기 때문이였다. 사실 한국인만큼 인종 차별을 민족도 없다. 여기 미국에서도 흑인, 백인에게 차별당하는 만큼 라티노들을 인간취급하지 않는 한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인종차별받으면 안되고 나는 인종차별해도 되는 건 정말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자가당착이다.


-아까 미국보다 한국이 천국이라고 하셨는데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한국이 미국보다 좀 더 나은 지옥이지 이분법적으로 분석으로 해서 어느 한쪽은 천국, 다른 한쪽은 지옥 이렇게 두곳으로 나누기에는… 제 관점으론 무리인것 같습니다.


그는 조용하지만 강하게 말을 맺었다.


-그래도 저는 모국인 한국으로 역이민을 가고 싶습니다. 말이라도 통하는 한국으로 가고 싶습니다.


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놀랄정도로 감정이 솟구쳤다.


윌슨병, 근이영양증, 고셔병, 베체트병, 코렐리아드랑예증후군, 망막색소변성증,부신백질이영양증,소뇌실조증,레트증후군,루게릭병,

쇼그렌증후군….


불치병 리스트를 천천히 속으로 외우자 감정이 조금은 추스려졌다.


새우공장에 일하게 된 후 2년이 지난 어느날, 나는 깍뚜기 머리 아저씨의 차의 키를 훔쳤다. 10년된 깡통밴이였다. 깍뚜기 머리 아저씨는 언제나 이 깡통밴을 애지중지하였다. 집에 BMW와 벤츠는 언제나 세워두고 깡통밴만 매일 몰고 다녔다. 자신에게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시켜준 신주단지 같은 그런 밴을 훔치게 되서 미안했는데 그 미안함도 약 10초정도였다. 생면부지 미국에서 같이 지낸 옛정을 생각하면 약 10초정도는 미안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저씨의 고물 깡통밴을 훔쳐 시애틀을 벗어나기로 작정한 이유는 새우가 사람 손가락으로 보이는 정신적 트라우마를 견디면서 맡겨둔 2년간 내 임금을 모조리 아저씨가 빼돌렸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였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였다. 운전면허 필기시험에 번번히 낙방한 나에게 깍뚜기 머리 아저씨는 미국에서 신분증격인 운전면허증이 없으면 은행구좌를 열수 없다며 새우공장에서 나오는 내 임금을 자신이 직접 가로채면서 그것도 모자라 매달 하숙월세비, 밥값으로 따로 꼬박꼬박 받아먹었던 것이였다.

어디에 선가 주어 들은 개똥철학이 생각났다.


‘나를 한번 속이는 것은 네 잘못이다. 나를 두번 속이는 것은 내 잘못이다. 나를 세번 속이는 것은 네 잘못도 내 잘못도 아니다.’


이 철학에 근거하여 내가 속은 것은 나의 잘못도 있다라는 판단하에 나는 조용히 깍뚜기 머리 아저씨 집에서 나온 것이다. 돈을 내놓으라고 야단법석은 떨지 않았다. 그냥 그러기 싫었다. 후에 내가 LA로 흘러들어와 그때 일을 회상해보면 그건 아마 내가 ‘사랑’을 추구하는 평화주의자였기에 가능했던 일같았다.     


-한국에 역이민가시는 거야 본인의 마음에 달려있죠. 그런데 저는 이 세상 어디에 이민가더라도 ‘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그는 그렇게 말했다. 허지만 내 마음속은 내가 깍뚜기머리 아저씨에게 그렇게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했어도 어디엔가 참사랑이 존재하는 ‘천국’같은 곳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괜한 반발심이 생겼다. 그래서 사춘기 청소년처럼 대들려고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이상하게도 불쑥 솟아올랐던 발발심은 거북이 머리 감추듯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그의 눈빛에는 경외심까지 불러 일으킬만한 숭고하고 거룩한 에너지가 흘러넘쳤다. 그의 말대로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천국’에서만 뿜어 나올만한 에너지가 같았다. 나는 커피를 마시려고 커피잔에 손을 가져갔다. 어느샌가 커피숍종업원이 커피잔을 가져갔는지 탁자위에는 휭하니 바람만 잡힐 뿐이였다.


‘내가 잡으려는 모든 것들도 다 바람인가? 내가 추구하던 사랑도 결국 정욕적이고 일시적이고 이기적이고 거짓되고 위장되고 충동적이고 무모한 것인가’


혼란스러웠다. 나의 영혼이 한국으로 다시 역이민 가더라도 그 ‘사랑’을 찾을 수없어 결국에는 다시 어디론가 이민을 떠나야 하는 떠돌이 영혼이라니 그의 말대로 내 자신이 안타까워졌다.


‘그냥 착각을 하고 살면 안될까? 그냥 ‘여기 사랑이 있다’고 거짓에 영혼을 현혹시키고 어디 이민가지 말고 한곳에 정착해서 살면 안될까?’


나는 깡통밴을 몰고 미서부를 정처없이 떠돌아 다녔다. 깍뚜기머리 아저씨를 벗어나고자 떠돌기 시작한 자동차여행은 호주머니에 돈이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지속되었다. 덕분에 미국서부지역을 여행하는 기회를 가진것인데 그게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서부여행이 되었다. 그 여행은 모래사장 위에서 파도에 지워진 발자국처럼 흔적없이 나를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또한 글을 쓸려고 컴퓨터자판앞에 앉는 순간 머릿속의 낱말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처럼 그 여행은 나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지게 만들었다. 밤의 별과 낮의 구름도 나를 알지 못하고 길가의 바위와 나무도 나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딜릿버튼을 누른것이다. 세상도화지에 내 모습을 지우개로 지우는 것처럼 말끔히 내 존재를 기화시켜버리자 그제서야 미국으로 이민온 기분이 들었다. 그때 나는 익명성이야 말로 이민자에겐 첫단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알레르기로 경쟁사회에서 뒤쳐져진 나같은 언더그라운드 인생이 이민자로서 새출발을 하기 위해선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무명자가 되어야 참다운 새출발을 할수 있는 것을 깨달았다. 맨앞자리 알레르기도 내 무의식중에 경쟁사회를 거부하고 남앞에 서길 싫어하는 거부감이 내 무의식속에 쌓여서 표출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도 서부여행중에서 였다. 사랑은 커녕 질투와 미움으로 가득찬 인간들이 서로 밟고 밟히는 곳이 바로 이 지구…바로 지옥이였던 것이다.   


-제가 자서전을 작가님께 부탁드리려고 했던 이유는 나도 이 세상 속의 이민자 였기에 때문입니다. 같은 이민자로서 다른 이민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마 저의 자서전으로 달래고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서 였습니다.  


나는 커피를 한잔 더 마시고 싶었다. 카페인으로 정신을 각성시키고 싶었다. 그도 나처럼 이민자였다는 말에 내 정신을 더 집중시키고 싶었다. 커피숍 종업원을 찾기위해 두리번 거렸지만 텅빈 커피숍은 적막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선생님도 이민자였다고요?


-그렇습니다.          


-보내주신 자료에는 그런 사실이 없었는데…


그가 보내준 산상정보를 다시 머릿속의 서랍에서 꺼내려고 애썼지만 부질없는 짓이였다. 그냥 그가 말하는 대로 그도 나같은 이민자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작가님 이민의 아픔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이해 알수 있습니다.


순간 입에서 고맙다는 감사가 나올 뻔했다. 참으로 오래간만이였다.


‘난 복권에 당첨된거야!’


한국을 떠나 미국땅에 와서 나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난건 ‘복권’이 당첨되는 기적같은 일이였다. 복권을 일확천금을 한순간에 받는다는 것만으로 제한한다면 그건 흔한 일이고 대수롭지 않은 일인 것이다. 돈만이 아니라 퓨어 소울 메이트처럼 한순간의 만남으로 완벽한 친근감을 느끼는 일도 복권이 당첨되는 일이고 어떻게 보면 그거야 말로 참복권을 맞는 것이고 진정한 기적인 것이다. 그게 나혼자 ‘천국’같은 곳에서 잘 살아보겠다고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와서 고독속에 헤맨끝에 비로소 깨달은 복권의 의미였기 때문이였다.


‘ 아’


순간, 이제서야 내가 이런 만남을 가지다니 회한이 밀려왔다. 동시에 익명자였던 떠돌이가 이제서야 호명자로 어느 상대방의 의미있는 인간으로 바뀌는 짧은 기쁨도 함께 밀려왔다. 마음속에서 한꺼번에 두가지 상반되는 감정이 휘몰아치게 만들다니 내 앞에 앉은 ‘지폐알레르기’선생님은 정말 보통분이 아니다는 경외심이 솟구쳤다.  


‘이제 싸늘하고 외로운 이민생활의 종지부를 찍는 것인가?’


나같은 이민자의 마음을 이해해줄 사람을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여지껏 이민와서 친구 한명 사귀지를 못했는데 이렇게 마음이 합하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을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 기분이 마치 날아갈것만 같았다.


-그럼 시간이 되신다면 제 이야기를 더 해도 될까요?


자서전이고 뭐고 나는 그에게 매달리고 싶어졌다.


-시간은 충분합니다. 작가님! 계속 편하게 이야기 하세요.


깍뚜기 머리 아저씨의 깡통밴으로 돌아다니다 도착한 곳은 남캘리포니아의 로스앤젤레스시 코리아타운이였다. 로스앤젤레스의 이름속의 천사가 내 삭막한 영혼에 ‘사랑’을 가져다 줄것같은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프리웨이에서 내려 코리아타운의 피코PICO라는 이름의 거리에 들어섰다. 피코는 서반아어에서 유래한 단어다.


미국에 이민오자 마자 느낀것이지만 내가 한국에서 느끼던 ‘미제’는 미국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길거리 이름부터 음식이름까지 죄다 서반아어-스패니쉬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라티노의 정열과 원색적 화려함으로 겉만 치장하겠다는 정도를 벗어나 미국땅에 존재하는 영육혼 모두 다 스패니쉬로 덧입혀져 있었다. 그건 미국도 원주민 인디언들을 학살하고 세운 이민자의 나라이기에 마땅히 내세울만한 정체성이 라티노정서 밖에 없기 때문인 것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민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기는 커녕 까다로운 비자제도를 만들어 많은 미국이민자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쉽게 ‘불법체류자’신분으로 전락하도록 몰아갔다. 또한, 이민자의 심정을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히 파악해서는 ‘천국’을 찾아 이민온 사람들을 ‘천사의 도시’라고 유혹해 불러들여 불체자로 올가미를 씌우고는 페이먼트의 노예로 전락시켜버리는 악마같은 짓도 서슴치 않았다. 한국에는 도저히 살수 없어 이민오게된 ‘생계형’이민자가 아니라 나처럼 좀더 나은 천국을 찾아 이민온 ‘웰빙형’이민자에게 미국의 이런 두얼굴이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이런 경우 이민자들은 두가지로 반응을 하게 되는데 첫번째는 나처럼 철저하게 속고 농락 당했다고 느끼고 역이민을 준비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주저앉고 영과 혼을 악마에게 저당 잡히고 깊은 쾌락속으로 심취해버리는 것이였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작가님은 진정 ‘사랑’을 ‘사랑’하시는 분 같군요. 하하 제 말이 좀 이상한가요?


그는 하얀 이빨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 웃음은 참사랑이 존재하는 천국으로 반드시 역이민을 가야한다는 나의 형이상학적 주장을 공감한다는 뜻으로 보였다.   


-혹시 사후의 세계에 대해 생각해보신적이 있는지요?


약간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나에게 물었다.


-예?


-혹시 죽음 뒤의 세상에 대해 생각해보신적이 있는 지요?


조금전 웃던 얼굴과는 정반대의  심각한 표정으로 그가 물었다 .


-죽음뒤의 세상?


갑자기 커피숍 전체가 어두워졌다.

그와 내가 앉은 자리만 스포트라이트로 비추는 듯 밝을 뿐이고 주위는 온통 짙은 검정색으로 물들어버렸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죽음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전 불가지론자입니다. 신은 신이고 인간은 인간입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만 존재하고 죽음이 닥치면 흙으로 돌아가버리죠.


-그럼 결국에 이 세상에만 존재하다가 사라져 버릴 작가님은 왜 세상에 존재도 하지 않는‘사랑’이나 ‘천국’에 그리 연연하시면 글을 쓰실려고 하시죠?


나는 할말을 잃었다. 대답을 하려하려고 했으나 묵직한 무엇이 가슴을 턱하니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렇다. 난 불가지론자가 아니라 신이 사랑이라는 전제하에서 신이 존재한다는 유신론자였다. 삭막한 미국 땅에서 그토록 애타게 찾으려했던 것은 바로‘사랑’이였다.  로스엔젤레스 코리아타운에 홀로 들어와 동네 구멍 가게 같은 리커스토어에 하루 16시간씩 일하면서 견딜수 있었던 것은 어디선가 있을 ‘사랑’이 존재한다는 강력한 신앙과 같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였다. 무례하고 거친 흑인손님들을 매일 상대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하숙집 아파트로 들어가 글을 쓸때 나의 모든 글의 주제는 언제나‘사랑’이였다. 폭풍이 휘몰아치고 지진이 나고 쓰나미가 몰려와도 난 ‘사랑’을 발견할때까지 찾을 것이고 그 ‘사랑’을 기다릴 것이라고 수만번 맹세했었다.


-사랑이 나를 이 지옥에서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마치 신부앞에 고해성사를 하는 비장한 마음으로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불가지론자가 아니라 유신론자에 가깝군요. 작가님이 사랑을 조물주로 생각하시는 것 같으니까요. 음..제가 드릴 말씀이 있는데 양해해주실거죠?


그의 눈이 사람의 눈빛이라고는 볼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빛났다.


-예. 물론 입니다. 말씀하세요.


-제가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인간은 네가지 굶주림에 빠져있다고 합니다.


-네가지 굶주림요?


-그렇습니다. 그건 바로 정신적인 굶주림, 대화의 굶주림, 접촉의 굶주림 그리고 마지막 번째가 사랑의 굶주림입니다. 인간은 굶주림의 환자죠. 애초부터 그렇습니다. 그건 아마 인간의 태어날때부터 굶주림을 충족시켜줄 에너지원과 단절되어 있기에 그런 갈급함이 생기지 않았나 나름대로 생각해봅니다.


-굶주림을 충족시켜줄 에너지원?


-하하. 작가님이 이해해주세요. 제가 한국말 어휘력이 좀 떨어져서요. 뭐라할까 에너지원보다 좋은 말이….갈증을 해결해줄 생수라고 해야 더 좋을까?


그는 멋쩍은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잠깐 이‘지폐알레르기’ 환자님을 어디서 봤더라..’


나는 또다시 그의 정체에 대해 끝이 없어 보이는 미궁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작가님은 한국에서 한해 자살하는 사람이 몇명인지 아세요?


-…….


-매년 만삼천사백명이상이라고 통계자료를 발표하더군요. 강도 9.0의 지진에 의한 쓰나미보다 많은 영혼들이 굶주림으로 외로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마약,알코올, 정신장애를 가진 인구가 500만명에 이르고 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좀전에 말씀드린 4가지 영혼의 굶주림으로 혹은 사랑하지 말아야 될 허무한 것들을 사랑해서 스스로 인간은 망가뜨리고 서로 죽여서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작가님은 죽음이후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 세상이 존재하시는 것처럼 오늘 ‘사랑’을 노래하고 글을 쓰셨더군요.


나는 어안이 벙벙했졌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내 삶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넓디 넓은 광장에서 모든 것이 까발려진것 같은 충격이 내 몸 전체를 전율시켰다. 이제서야 그가 누구인지 알것 같았다.


‘이 사람은 바로….’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신은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해도 작가님 마음은 언제나 진정한 신의 모습인 ‘사랑’을 그리워하셨으니 신의 존재를 믿었다고 인정한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 아침 내가 하숙집을 나올 당시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기억의 열차는 거친 숨을 내쉬며 처음에는 힘겹게 엔진을 시작했지만 단숨에 나를 내가 머물고 있는 하숙집으로 옮겨주었다.


LA 한인타운에 위치한 하숙집은 하우스전체를 개조해 만든 여러개의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이였다.


나는 같이 방을 쓰고 있는 룸메이트가 잠이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벙크침대에서 내려와 역시 조심스럽게 욕실에서 고양이 세수를 했다.


화장실변기뚜껑 올리는 데도 소음이 난다고 여자처럼 변기에 앉아서 소변을 보았다. 그리고는 부엌으로 갔다.


전혀 아메리칸스타일이 아닌 하숙집 아줌마가 차려놓은 1년365일 똑같은 전통 아메리칸 아침식사용 시리얼을 우유에 부어 마시면서 식탁위에 아줌마가 써놓은 메모을 읽었다.


메모는 한 사람의 자서전을 한번 써보라고 권유하면서 그의 신상에 관한 자료도 같이 동봉했다는 내용이였다.


나는 입가에 묻은 우유를 닦으면서 제법 두꺼운 그의 자료를 훌텄다.


자료중에 나의 깊은 인상을 준 부분은 그가 장사판을 뒤엎으면서 화를 내는 부분이었다.


자신의 집앞도 아니고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 상거래를 막는다는 사실이 흥미로왔다.


그의 주장은 더 이상 자신의 부모집에서 더러운 장사를 집어치우라는 것인데 나는 그 부분을 읽으면서 그가 화폐(돈)를 싫어하는 일종의 알레르기가 있지 않는가하는  재미있는 생각을 했다.


그건 내가 ‘맨앞줄 알레르기’를 앓고 있기때문에 그와의 묘한 동지애를 느끼게 해주었다.


나는 자료를 잠시 더 자세히 읽어 보았다.


그리고, 나는 하숙집을 나와 리커스토어로 걸어갔다.


길을 걸어가면서 그가 주장했던 ‘사랑’에 대해 곰곰히 되짚어보게 되었다.


그의 ‘사랑’이 내가 갈구했던 ‘사랑’과 웬지 일맥상통하는 것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의 사랑은 정욕적이고 일시적이고 이기적이고 거짓되고 위장되고 충동적이고 무모한 인간들의 사랑이 아니였다. 굳이 인간관계에 비유하자면 부부애에 가까웠다.


‘영혼의 결혼’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완전히 100% 스캐닝하고 난 다음에 결혼을 하지 않는다. 결혼하고 나서 부부싸움도 하고 희노애락을 나누면서 죽는 날까지 매일매일 서로 알아가는 것이다.


마치 남편이 아내를 너무나 사랑하는 나머지 존중해주고 아끼는 것처럼 참으로 신성하고 순결한 사랑이 그의 사랑이였다.


그런 관계중간에 악마가 교묘히 스며들었다 .


‘그런 사랑은 없다. 즐거움을 맛보라’


그러면서 악마는 관능적인 몸짓으로 인간을 잠자리로 불려들였다.


쾌락을 한번 맛본 인간은 이남자 저남자 더 많은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된다.


결국 그는 그런 문란한 아내의 마음을 눈치채 버린다.


집에 돌아와보니 아내 혼자 덮고 있는 이불 밑에 웬 남자의 다리가 이불 밖으로 쓰윽 나온것을 발견한 처용處容의 처참한 마음이 된다.


찢어져가는 가슴.


그는 아내가 돌아올때까지 상처난 가슴을 안고 애절하게 기다린다.


그렇게


영원히


또 영원히


찢어지는 가슴으로 눈물을 머금고 아내를 돌아오길 바라보는 순결한 사랑이 바로 그의 사.랑.이.였.던.것.이.다




이야호!


나는 기쁜 나머지 도로 중간에서 껑충 뛰며 소릴 질러댔다.


그래. 내가 여태껏 추구해왔던 사랑은 거짓사랑이였다. 시작하는 동시에 서로 밀고 당기고 힘을 죄 다 빼야 하는 가짜짝퉁사랑이였다. 그리고 그 사랑을 유지할려면 그냥 죽을 만큼의 괴로움을 각오해야 하는 파괴적인 사랑이였다. 그냥 충동적이고 본능적인 사랑이고 새디스티스와  메조키스트와의 관계같은 사랑이였다. 가해자가 되든지 피해자가 되는 것이 죽음의 사랑이였다.


여태까지 내가 더러운 악마의 거짓말에 속은 것이였다.


복권맞았다!!


나는 목이 터져라 외쳐댔다. 진실하고 순수한 사랑을 찾았다고.


아.


그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였다.


나는 그의 아내이고 그의 사랑은 나와 영혼이 결합된 순결한 결혼이였다.


이야호!  


이건 대박이야


잭팟이 터진거야


난 복권에 당첨된 것이다.


더 이상 이나라 저나라 ‘사랑’을 찾으러 떠돌이 이민생활을 할필요가 없어졌다. 이민자는 사랑을 찾는 구도자인데 오랜 차별과 설움의 광야끝에 드디어 영원한 안식과 평안이 머무는 사랑의 천국을 발견한 것이였다.


이제 진정한 사랑을 찾았으므로 정치적으로 혼탁해진 사회주의 국가 대한민국으로 역이민간다해도 겁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민자는 마음에 늘 그늘이 내리워져 있는데 이 참사랑의 햇볕이 모조리 그늘을 없애고  광합성을 통해 영혼을 새로 소생시킬것이라는 희망이 용솟음쳤다.


한국에 두고온 부모님들이 보고 싶어졌였다.


나는 신이 나서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커스토어로 들어갔다.


리커스토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데 복면을 한 흑인과 마주쳤다.


어?


흑인의 안주머니에서 나에게 총을 겨누었다.


왜 저러지?


내 몸이 돌처럼 굳어 움직여지지 않았다.


정말 나를 쏘려구하나?


그냥 멀뚱히 나는 복면의 흑인을 바라만 볼 뿐 이였다.


타앙


타앙


타앙


세발의 총소리가 나를 기다렸다는듯 울렸다.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리커스토어가 위치한 지역은 미국전역에서 유명한 흑인갱들의 우범지대 중심부에 속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도 그럴 듯이 리커스토어에서 일하면서 한편의 갱스터무비같은 총싸움들을 가게문 바로 앞에서 생생하게 매일 지켜봐 왔었다.


긴장의 끈을 늦춘 내가 잘못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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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그렌증후군….


나는 불치병리스트를 외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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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


이제는 입을 열 수도 없게 되었다.


머릿속에서 내 삶이 영화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오늘부터 자서전 쓰기로 했는데라는 생각도 스치고 지나갔다.


평안해졌다.


너무 평안해졌다.





‘그래 괜찮아. 이제 사랑을 찾은걸….’






-수고하셨어요. 그동안 힘드셨죠?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더 이상 이곳은 커피숍이 아니였다.


나는 내 앞에 앉아 있는 그가 누구인지를 말하려고 했다.


그는 그냥 환한 미소로 나에게 팔을 벌렸다. 그의 미소만큼 주위도 환하게 변했다.  


주위가 밝아지자 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악수를 청하는 그의 손바닥에는 어른 검지손가락이 하나 통과할정도 큰 구멍이 나있었다.


악수를 하는데 울컥 눈물이 쏟아지려 했다.




그가 말했다.



-여기는 눈물이 없습니다.



정말로 눈물이 나오질 않았다.



*이 짧은 소설을 LA 4.29 폭동때 희생 당하신 모든 분들을 위해 바칩니다.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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