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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금주령

(단편소설)

오후 3시45분


슬림한 체형의 한 사나이가 비마저도 슬림하게 내리는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월요일 인데다가 비마저 내리는 날씨 때문인지 평상시에 사람으로 크게 붐비는 대구광역시 동성로는 발자국 소리가 울릴 정도로 한산했다.


약간 다리를 저는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사나이의 키는 대략 어림 잡아도180센티미터 이상은 되어 보이는 장신이였다. 운동으로 다져졌는지 탄탄하게 보이는 몸을 감싸고 있는 그가 입은 짙은 밤색의 자켓은 앙상한 늦가을 분위기와도 잘 어울렸다.


가을이 거의 끝나가는 10월 말이지만 비가 오기전까지는 낮에는 섭씨 28도까지 올라가는 무더운 날씨였기에 간만에 내리는 비는 사이다를 마시는듯 청량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사나이의 손에 들고 있는 검은색 우산은 비를 피할려는 목적이 아니라 우산으로 몸을 가리기 위한 목적인지 다른 행인들의 우산보다 어색할 정도로 크기가 큰 우산을 들고 있었다. 사나이는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걷다가 현대 백화점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주위를 조심스럽게 둘러본 뒤 백화점 옆 골목길로 사나이는 더 빠른 속도로 꺾어 들어 갔다.


코에 들어오는 공기마저 생경스런 풍경의 골목 길에는 작은 음식점과 카페들이 성욕이 아니라 식욕을 불러 일으키는 사창가처럼 늘어져 있었는데 가게앞 스피커에는 한국의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흑인 특유의 흐느적 거리듯한 음색의 재즈 음악으로 가득 흘러넘쳤다.


사나이는 어린시절을   보냈던 뉴올리언즈주의 어느 도시의 구토날 듯 하게 더러운 골목길에 서 있는 착각에 빠졌다.


넘실대는 파도위에   띄워진 배를 탄 듯 속이 메스꺼워 졌다. 사나이는 심호흡을 하기 위해 발걸음을 멈추었는데 그 곳이 공교롭게도 사나이의 약속 장소인 카페 <섀도우> 였다.
   
 섀도우..그림자라….
   
사나이는 오래되어 페인트칠이 벗겨진 간판위에 적힌 카페의 이름을 바라보았다. 브라운색 계통으로 채색된 바탕에 촌스런 고딕체 글자가 갈겨진 복고형 출구가 사나이는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 본 뒤 사나이는 문을 열고 카페 안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문 손잡이가 돌려지지 않았다. 완강히 저항하는 손잡이를 조용히 두세번 더 돌리다가 사나이는 문 중앙에 눈에 언뜻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작은 사이즈의 초인종같은 버튼 하나를 발견하였다.

사나이는 손끝을 조용히 초인종 위에 올려놓았다. 초인종을 누르자 초인종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문은 열렸다.
   
철컥
   
재질이 나무처럼 보였던 문은 단단하고도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며 부드럽게 열렸다. 카페안은 이제 안개가 자욱한 영국 캠브릿지로 바뀌었다. 현기증이 날 정로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데다가 담배연기가 꿰꿰한 곰팡이 냄새와 혼합되어 카페안 내부의 역겨운 공기로 산소호흡기를 챙기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직도 담배 피우는 사람이 있나? 요즘은 알프스에서 수입해온 신선한 산소도 포장되어 동네 편의점에서 판다던데...


사나이는 지금 당장 가게를 뛰쳐나가 산소 한 통 얼른 사오고 싶은 충동이 격렬할 정도로 일었다.


생뚱맞게 세련된 디자인의 테이블이 6개정도 놓여진 카페안은 형체를 알수 없는 검붉은색 벽지로 되어있었다. 카페 주인이나 종업원으로 보이는 사람은 전혀 보이질 않고 현관 정면으로 벽쪽 맨 끝에 놓여진 테이블에 60대 중반의 한 한국인 남자가 덩그러니 앉아 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사나이를 바라 보았다.


사나이가 만나기로 한 주선생이라 불리는 남자를 이 카페안에서 찾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주 선생님?
   
사나이는 천천히 테이블 앞으로 다가가서 걸음보다는 조금 빠르게 물었다
   
당신은?
   
데이비드라고 합니다
   
사나이는 완벽한 한국말로 대답했다.
   
한국말을 잘해서 혼혈인정도로 생각했는데... 어느 나라에서 오셨소?”
   
그게 중요합니까?
   
사나이가 무뚝뚝 하게 튕기듯이 대답하자, 남자는 시니컬한 미소를 띄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하. 아니 전혀. 그나저나 당신은 미국 영화 배우 브레드피트를 닮았는 것 같아. 잘 생겼어.
   
그러면서 남자는 입으로는 칭찬을 했지만 눈으로는 사나이를 약간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건 미국인인 사나이가 한국에서 불법 체류자로 살면서 흔하게 겪는 인종차별 중의 하나였다.


한국인보다 상대적으로 비만이고 덩치가 큰 미국인들을 멸시하고 빈정대는 일은 사나이가 일상중에 매번 겪는 일이였다. 10년 전 뉴욕 월 스트리트가에서 발발한 금융 사태로 미국 정부 전체가 파산상태로 들어갔고 멕시코같은 남미국가처럼 회복할 수 없는 후진국의 길로 추락하였다.


그 영향으로 미국민들은 전 세계로 이민을 가는 뿔뿔히 흩어지는 신세가 되었는데 사나이도 가난한 가족을 따라 한국으로 이민 온 이민1.5세였다. 가족들이 전형적인 앵글로 색슨 백인이라 처음에는 유럽 전체를 떠 돌아 다녔지만 유럽 상황은 미국보다 더 험악해 방향을 바꿔 아시아쪽으로 흘러 들어오게 되었다. 예전 한국이 미국의 우방이였다는 생각에 한국으로 많은 미국인들이 한국행을 택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미국에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들어온 미국인들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관리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서류상에 이상이 있을 경우에는 무조건 강제로 국외추방시켰다. 한국의 해안지역과 국제공항은 불법체류자들로 득실 거렸으며 당연히 범죄의 온상이 되었고 관용없는 한국정부와 한국인들은 미국인들을 인종차별했다. 불법체류자가 된 미국인들은 돈이나 한국영주권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서슴치 않는 범죄자로 전락했다.


사나이는 물에 젖은 자켓 그대로 테이블에서 의자를 꺼내 주선생이라고 불리는 한국인 남자와 정면으로 마주보는 위치에 앉았다.
   
데이비드씨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몸집이 거대하군요.
   
남자는 사나이가 과연 저 덩치로 일을 처리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테이블 위에 놓여진 담배 갑에 손을 가져갔다.
   
본론부터 말씀하시죠.
   
사나이의 약간 거친 대답에 주선생은 사나이를 미국인주제에 건방지다고 생각했다.
   
뭐가 그리 급하지?
   
주선생은 사나이를 노려보며 담배갑에서 담배 한 가치를 꺼내 입에 물고 나즈막하고도 비아냥 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하는 일이 모두 신속하고 빠른 것들이죠. 고객님들도 그걸 원하시고..
   
그러니 빨리 빨리 말을 하라 이거군.
   
사나이는 주 선생의 말에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한국인들은 빈정대기를 좋아해서 불법체류자인 자기가 맞상대 해 봐야 손해볼일 밖에 없을 것 같은 생각에서 였다.
   
의뢰를 하기 전에 오늘 비가 오고 분위기가 그런데 포도주 한잔 어때?
   
주 선생의 말에 사나이 얼굴이 약간 일그러졌다.
   
현재 한국 정부는 대통령의 특별법으로 강력한 금주령을 입법화한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1919년부터 1932년 미국에서도 있었던 이 금주법은 제2차 금융 IMF를 완전히 해결하고 한국을 선진국의  반열까지 올려 한민족을 구한 국민적 영웅으로 열렬한 지지를 국민으로 부터 받는 손효욱 대통령이 난데없이 입법화 시킨 사상 초유의 대통령 특별 금주법이였다.


손효욱 대통령에게 대통령 당선 이전 손효욱 대통령 가족이 추석을 맞이해서 고향을 방문했다가 다가오는 음주운전자의 차에 의해 아내와 부모를 그 자리에서 잃어 버리고 뇌진탕으로 하나뿐인 딸을 식물인간으로 만든 술은 손 대통령에게 철천지 원수보다 더한 대상이였다.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시작한 종교생활을 통해서도 술은 점점 자신이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하는 악마같은 존재로 각인되었다. 차라리 세상에서 없애 버리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손대통령은 늘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 불행한 가족사와는 정반대로 그의 정치적 위치는 순풍에 달리는 돛단배처럼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대통령직으로까지 올려 놓았다. 강력한 리더쉽과 위기때마다 따르는 정치적 운으로 대한민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강대국이 되었다. 손 대통령이 영원히 조선시대의 임금처럼 영원히 한국을 다스려 달라는 말이 국민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회자되었고 재임은 물론 국회에서 자발적으로 대통령 임기법을 바꿔 손 대통령이 현재 10년이 넘도록 대통령직을 연임하게 되었다. 이런 무소불위의 손 대통령이 금주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것은 숨쉬는 일보다 더 수월한 일이였다.
   
대통령은 그냥 대통령으로 행복하게 사시지 금주령인가 하는 케케묵은 법을 만들어 왜 이 고생인지 난 정말 이해가 가질 않아. 그렇지 않소?
   
주 선생의 손에는 사나이가 오기 전부터 테이블 위에 놓여진 글래스 잔의 포도주를 한모금 들이켰다. 미국의 금주법 시대처럼 금주법이 입법되어 실행되자 한국사회에는 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범죄와 밀주가 난무하는 무법 시대가 도래했다. 형사법이 강력해지고 검경찰의 칼이 서슬 퍼렇게 휘날려도 돈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몸의 신체일부분도 팔 수 있는 사람들이 겁은 커녕 술을 만들고 불법으로 판매하는 방법은 점점 교묘하게 지능화되었다.


술을 일단 만들면 금주법이전보다 20배의 이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한국내의 조폭같은 수많은 범죄조직들은 너도 나도 밀주양조업에 뛰어들었다. 특히 한국으로 들어온 미국인같은 불법체류 외국인들은 마땅한 직장을 한국내에서는 구할 수도 없고 구해도 차별대우가 심해서 수입이 변변찮아 경제적으로 도저히 한국에서 버틸수 없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밀주제조업이라는 범죄가 가담하게 되어버렸다.

금주법이 생기고 부터는 한국경찰에서는 초정예 요원들을 특별히 따로 모아 만든 ‘금주단속반’이라는 강력한 금주단속반이 있었는데 백주대낮에 카페에 앉아 포도주를 들이키다니 정말 이 주선생이라는 자는 대단한 인물이라고 사나이는 생각했다.
   
포도주가 들어가니 시장기가 도는 걸.
   
저의 타켓부터 말씀하시죠.
   
자넨 전문 업자라면서 차분하지 못하군. 뭐가 그렇게 급하지?
   
주선생이 말할때 입가에 마시던 포도주가 조금 스며 나왔는데 피를 마신 흡혈귀처럼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사나이는 주선생을 만나기 전에 그에 관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했었다.
   
주형돈.

그는 금주법이 발효 되기 전에 위스키를 만드는 한국 굴지의 양조업체인 코리아양조의 회장이였던 인물이였다. 재계100위안에도 들지 못했던 ‘코리아양조그룹’을 대한민국 최고의 제조업회사로 만든 신화적인 인물이였다. 평사원이였다가 그룹회장의 외동딸과 전격적으로 결혼하면서 화려하게 그룹의 제2인자가 된 인물로 준수한 외모, 유려한 화술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두뇌를 통한 귀신같은 경영술로 낮은 이윤으로 공장폐쇄까지 갔던 코리아 화학을 양조업으로 바꿔 위스키와 맥주같은 주류를 제조판매하여 단 시간 안에 단일품목으로   한국최고의 그룹으로 성장시킨 입지전지적인 인물 중의 한 사람이였다. 코리아 위스키는 성공한 사람들만 마신다는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과 오랜 기간 축적되있던 화학 기술을 통해 개발된 세상에서 유일한 콜라같은 독특한 위스키맛이 절묘하게 맛물려 일단 맛을 보면 중독까지 되는 신묘한 맛으로 대한민국 유통제조업계를 마구 뒤 흔들었다. 그랬던 주형돈과 코리아양조는 손 대통령의 금주법으로 모든 부와 명예를 일순간에 일장춘몽으로 바꿔버렸다.


주 선생은 취기가 도는지 버럭 사나이를 향해 말했다.
   
내가 누구인지는 알고있겠지.전문 히트맨이라면 그 정도 조사는 했겠지.
   
물론이죠. 주 회장님
   
주회장이라. 흐흐흐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이름인데.좋아 좋아.

주 선생은 목젖이 드러날 정도로 한참을 웃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웃다가 잠시 진정을 시키고 좀전보다 긴장을 약간 푼 표정으로 사나이에게 물었다.
   
당신이 가장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지?
   
미국인들은 개인적인 질문을 받는것을 가장 곤혹스러워한다. 오랜 동맹관계로 아마   주 선생같은 한국인들은 미국인들이 무얼 좋아하고 무얼 싫어하는지 대략을 알 것이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180도 바뀐 상태였다. 남의 나라에 살면서 그 나라의 관습을 따라주는 것이 현명한 생각이다.  사나이는 감정적인 한국인들 좋아할 만한 대답을 했다
   
가장 사랑하는 것을 빼앗아 간 사람이 아닐까요?
   
사랑?.흐흐흐.
   
사랑이라고 했어? 방금 자네? 흐흐흐흐
   
자네 살인전문가가 맞는가? 사람을 죽이는 사람 입에서 사랑이란 말을 들으니 정말 기분이 묘해지는데....... 흐흐흐
   
사나이는 주 선생의 웃음소리가 귀에 무척 거슬렸다.
   
사나이의 대답은 전혀 지어낸 대답이 아니였다. 사나이는 정말 사나이가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 간 사람을 가장 미워했다.
   
제시카
   
제시카

그녀의 이름이 생각이 나자 사나이 주위의 모든 생물들이 동작을 멈추었다. 제시카는 한국에서 만난 미국이였다. 제시카는 텍사스에서 온 백인여자였다. 사나이는 다른 미국남자들처럼 텍사스에서 온 여자가 좋았다. 금발에 아담하지만 숨막힐듯한 관능미가 출렁대는 체구를 가진 귀여운 얼굴의 텍사스 여자들이 너무나 좋았다. 아담한 체구때문인지 한국남자들에게도 굉장한 인기여서 한국영주권을 가지려고 위장결혼하는 대상의 십중 구는 텍사스출신 여자들이였다. 사나이도 그런 미국인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 부산외국인 특구의 클럽촌을 찾았다. 말이 클럽이지 공공연히 매매춘이 거래되는 공창이였다. 한국정부는 금주법을 단행하면서 매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많이 느슨 했었다. 한국에 들어온 불법체류 미국인들은 남자는 범죄, 여자는 매춘과 관련된 업종에 대부분 종사하게 되었다. 워낙 인종차별이 심한 한국인들이 많은 미국인들을 궁지로 몰아넣은 결과였다.

사나이가 제시카를 만난 날은 열대야같은 더위로 숨도 못쉬던 날에 갑작스럽게 소낙비가 내리던 날이였다.  사나이는 그 날 왜관으로 밀주를 배달하고 부산으로 돌아와 긴장도 풀겸 외국인특구로 발걸음을 향하다가 소나기를 만났다. 골목길 어느 집 처마에 큰 키를 숙이고 비를 피하는 사나이의 모습이 처량하기도 하고 거대한 동물원의 코끼리가 몸을 피하는 것처럼 웃기게 보였는지 어디에선가 나타나 사나이처럼 비를 피하던 제시카는 사나이의 등뒤에서 웃음을 터트렸었다. 사나이는 제시카를 처음보았음에도 오래전 부터 알고지낸 익숙함이 생겨 바보처럼 그녀와 같이 웃기 시작했다.


비가 억수같이 뿌리는 부산 골목길에서 사나이와 제시카 이 두 미국인들은 서로 한 참을 웃다가 격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그제서야 겨우 웃음을 멈출수가 있었다.


사나이는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하면서 같은 미국인들과 영어로 말하는 법은 없었다.


영어에 대해 컴플랙스를 가지고 있는 한국인들은 미국인들에게 자신들 앞에서 한국말만 구사하도록 강요하는 사회구조적 분위기 탓도 있었지만 사나이는 굳이 미국인들과는 영어를 쓰면서 커뮤니케이션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었기 때문이였다. 사나이는 미국인 동족들과 눈빛과 몸짓으로 모든것이 통할 수가 있었다.


제시카에게서도 다른 미국인동족들과 교류되는 흔한 감정이 아니라 사나이가 세상을 태어나기 전부터 원초적으로 학습되어진 본능이였기에 더더욱 제시카와 영어로 소통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인생의 마지막 모퉁이에서 만난 제시카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는 자체가 예배의식처럼 성스럽고 거룩한 행위였다.


사나이는 기꺼이 그녀에게 몸과 마음과 영혼을 바쳐야 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미국인들의 사랑법을 한국인들은 싸구려 B급 헐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바라보기만 하고 상대방을 탐색만 하는 한국인들을 이해시킬 수도 없는 차원이 다른 사랑법이였다.


미국인들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라고 한국인들 나름대로 평가하지만 미국인들에게 사랑은 이성적 논리적으로 내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지금 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열정이였다.

뇌로 잠시 시간여행을 하는 동안 눈으로 주 선생을 바라보면서 그가 혹시 술에 취한 것일까 사나이는 조금 걱정스러웠다. 금주 단속반들이 공기속에서 몸에서 일단 섭취됐다가 풍겨나오는 알코올성분을 100미터 내에서도 잡아내는 첨단 필터 장비를 가지고 음주단속을 하기 때문에 술을 취하고 만약 거리에 나갔다가는 백발백중 입건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였다. 술마시면 보석없는 감옥에서 6개월 구류를 지내야 했다. 중간에 불법체류사실이 밝혀지면 미국으로 그대로 형집행후 추방되어졌다.
   
자네는 내가 손 대통령을 죽여달라고 자네를 고용하려 하는 것 같아 보이는가?
   
사나이는 주 선생의 손에 아래위로 까닥거려지는 포도주 잔을 보다가 말하는 주 선생의 눈으로 시선을 옮겼다. 주 선생의 눈은 아주 미묘한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살의도 공포도 없는 무백의 빛깔을 내고 있었다.
   
난 손 대통령을 너무너무 존경해 그의 금주법이란 위대한 정책으로 난 정말 돈방석에 앉았어.
   
그랬다.
정부에서 금주령이 내려지자 대한민국 전역의 양주장은 모조리 폐쇄 조치가 되었고 공장은 문을 닫았지만 코리아 위스키에   중독된 자들의 입까지는 폐쇄시킬 순 없었다. 사람의 욕구란 자유로울때보다 금지될때 더 활활 타올랐으므로 자유롭게 마실 때보다 위스키에 중독된 사람들은 마치 히로뽕 중독자들처럼 윗돈을 더 얹어 주고서라도 마실려고 했다. 일단 지하금고에 비밀리에 두었던 비자금으로 아무도 모르는 태백산맥 험준한 곳에 비밀공장을 차린 주 선생은 술을 자유롭게 마실때보다도 돈을 더 모을 수 있게 되었다.

돈을 쌓아놓는 비밀창고를 따로 만들어놓아야 할 정도로 나를 부자로 만들어준 손 대통령을 어떻게 죽일 수가 있겠어?


사나이는 입을 굳게 다물고 주 선생이 계속 이야기를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나야말로 정말 손대통령께 감사해야지. 정말 기회가 온다면 그의 앞에 가서 엎드려 절하고 싶네 히히히히히..
   
완전히 술에 취했는지 이제는 악마처럼 기괴하게 웃는 주 선생을 사나이는 묵묵히 바라보았다.

금주법은 수 많은 한국내 조직 폭력배들과 심지어 한국 정,재계를 악마들이 들끓는 무법 천지의 아비규환으로 몰아넣었다.  밀주를 통한 축척된 검은 돈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이고 죽였다.  


사나이는 그 아비규환의 중심에선 킬러로 그의 머리속에는 이제 죽인 사람의 숫자를 세는 것은 시시한 일이였다.  그런 사람죽이는 백정같은 일은 대부분 사나이같은 미국인들이 도맡아 하였으므로 미국인들에 대한 한국일반인들의 시선은 점점 차가워졌고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더 이상 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미국인들은 더 더욱 그들의 차가운 시선과 차별대우로 철저하게 영혼이 갈갈이 찢어진 상처받은 존재로 한국의 길바닥을 떠돌아 다니게 되었다.


사나이의 어린시절은 현재의 비참함때문에 그의 기억속에서 더더욱 아름답게 미화되었다.


사나이의 부모는 뉴올리언즈에서 큰 자동차 딜러를 운영하는 부유한 자산가였다. 아버지는 독일계이민자의 후손으로 훌륭한 교육과 주위사람들에게 모범이 되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고 부모가 되어서도 그렇게 가정을 유지했다. 사나이의 아버지는 지금과 반대로 미국으로 이민온 많은 한국인들에게 일자리도 주고 친한 관계를 유지했었다. 그때 당시는 미국처럼 한국이 개발도상국의 위치에 있었던 그다지 부요한 나라는 아니였기때문에 한국에서 많은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유입되어 왔다. 영어가 많이 부족했던 한국인들은 세탁소나 한국의 구멍가게같은 리커스토어등과 같은 미국서민들을 상대로하는 비지니스를 택했다. 주로 손님들이 거친 흑인들이나 라티노층이고 가게에서 현금을 다루는 직종이라 강도들의 총에 많은 한국인들이 죽어갔다. 총을 호신용으로 자유롭게 소지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권총강도들이 특히 기승을 부렸다. 한국인들은 현금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소문과 함께 영어가 미숙하다는 점때문에 언제나 범죄의 주요타켓이였다. 사나이의 아버지는 그런 한국인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근면성실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에 되도록이면 한국인들을 채용하기를 원했다.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은 보다 한국인들을 특히 아버지는 좋아해서 주말이면 언제나 자신의 비지니스에 일하는 한국인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하였는데 사나이는 그때 한국인말을 몇 마디 익힐 수 있었다. 한씨 가족은 그중에서도 오랫동안 아버지와 친분을 유지해왔었는데 그에게는 아내와 딸 하나가 있었다. 한씨는 거의 십년이란 세월을 아버지 밑에서 일한 자동차세일즈맨이였는데 부족한 영어만큼 정직하고 성실한 세일즈맨으로 지금 생각하면 그 영어실력으로 어떻게 자동차를 팔았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데리고 있는 세일즈맨중에 매년 탑세일즈맨으로 성과를 올리는 놀라운 한국인이였다.


한씨는 전형적인 한국인 중년남자였다. 백인인 사나이의 가족들에게는 비굴할 정도로 친절했고 자신의 가족들에게는 무뚝뚝하고 엄격한 가장이였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는지 사나이도 동양여자 특히 한국여자아이에게 무척 호감을 느꼈다.


조용하면서도 남자를 배려할 줄 아는 순종적인 한국여자들을 어느 누구인들 좋아하지 않겠는가?


사나이의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났기때문에 따스한 한국여자들의 마음속에서 따스한 모성애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한씨의 딸의 이름은 수지로 한국이름도 수지라고 자랑스러워했었다. 한씨는 하나밖에   없는 딸의 교육을 위해서 미국으로 왔다고 말했다. 사나이는 정작 미국인들은 대학에서 공부를 등한시 하는데   한국인들이 그 어려운 대학공부의 진도를 따라하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나중에 아버지가 알려준 사실이지만 한국인들의 두뇌는 대부분 다 우수하다는 것이였다. 게다가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일하니 한국인들이 아메리카 드림을 이루는 일이 허다했다. 여기서 사나이의 기억여행은 멈추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인들은 미국인들에 코리언 드림을 이루게 해주고 있는가?
   
사나이는 주 선생을 바라보았다. 입장이 바뀌어 내가 지금 30년전으로 되돌아 미국에서 주 선생을 만났다면 그에게 아메리칸 드림을 만들게 도와주었을까?


사나이는 주 선생에게 보이지 않게 마음속에서 도리질을 했다. 한씨도 다른 많은 사람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수 있었던 시대에도 결국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지 못했었다. 어느날 수지와 사나이의 아버지가 아침에 같은 침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난뒤 일주일 뒤에 카타리나 수나미가 몰아쳐 아버지의 비지니스가 물속에 수장된 날 한 씨는 가족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해버렸기 때문이였다.

   
종교인들은 정말 어이없어 그토록 자신은 천당에 가는 것을 원하면서도 남들이 지옥으로 가는 것은 그저 구경만 하기 좋아하잖아.
   
사나이는 주 선생이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한국말 잘 못알아 듣겠어? 내가 천천히 설명해 주지 위대한 대통령이자 고매한 인격의 종교인이기도 한 우리의 손 대통령님의 금주법으로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범죄를 저질러 지옥으로 파멸되고 있잖아. 안그래? 종교인이라면 사람을 살려야지 얄궂은 금주법으로 술을 더 마시고 더 범죄를 저지르게   만들다니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듣겠어?
   
목소리를 조금 낮추시죠.
   
사나이는 엄숙하고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회장의 무백색의 눈빛이 시뻘건 선홍빛으로 변했다. 용수철처럼 튀듯 뭔가를 되받아 치려 하다가 억지로 자제하는 모습이 턱주변의 근육에서 확연히 보였다. 잠시 노려보다가 주 선생은 긴장을 풀었다.
   
이 카페는 내가 운영하는 카페네..뭐가 두려운가?
   
……………
   
모든 것은 돈이야 돈만 가지고 있다면 모든걸 살수가 있지. 사랑도
   
정말 사랑도 살 수 있을까?
   
사나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제시카는 사나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었다. 사나이는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지하 단칸방에서 미국산 쵸콜렛을 먹다가 문득 제시카가 뱉은 사랑한다는 말에 무슨 불법체류자 단속이라도 걸린것처럼 두려운 얼굴만 띄울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우리 신혼여행은 하와이로 가는 거야 와이키키해변으로.
   
왜 와이키키해변이였는지 제시카가 블루색 열대 해변을 좋아했는지 전혀 짐작을 할 수는 없었다. 불투명한 미래를 가지고 있는 사나이와 그녀에게 신혼여행도 실현가능한 일이 아닌데 하와이로 어떻게 떠난단 말인가 사나이는 궁금했지만 제시카에게 직접 묻지는 않았다. 그냥 그녀는 하와이가 지상낙원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말한 것이라는 것을 사나이는 알고 있었다. 파도가 박수치듯 철썩대고 보석같은 모래밭위에 비치파라솔을 놓고 시원한 버드와이저 맥주를 들이키는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은 제시카뿐만 아니라 모든 불법체류 미국인들에게는 간절한 소망이였다.


한국말을 전혀 쓸 필요가 없는 그곳에서는 처음 보는 모든 미국인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편가르기를 좋아했다. 돈이 많으면 돈 많은 사람끼리 학연, 지연 그리고 조그마한 땅덩어리에서도 경상도니 전라도니 출신으로 편을 가르는데 제시카와 여행을 떠날 하와이에서는 전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돈을 가졌으면 가진대로 신분을 떠나 단지 상대가 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벽이 허물어질 것이다. 사나이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행복함을 느꼈었다. 인간은 모두 행복을 추구한다. 제시카는 사나이에게 행복 그 자체였다. 제시카가 곁에 있다면 시궁창냄새나는 단칸방이 와이키키 해변으로 변했다.
   
행복은 그러나 겁많은 사슴이였다.


모를때는 그냥 주위를 맴돌다가 잡으려고 하면 얼른 도망치는 겁많은 사슴이였다.


제시카가 임신을 했다. 그런데 제시카가 일하는 클럽의 한국인 주인은 낙태를 권유했다. 제시카같은 백인여자는 한국에서 클럽이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돈이 없어 한국에서 절박한 순간을 경험했던 제시카는 순순히 그들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한국인들은 낙태나 해외입양을 코푸는 일정도로 생각하는 잔인한 민족성을 가지고 있었다.
   
낙태에 대한 기억이 나자 사나이의 얼굴은 약간 일그러졌다.


잠시, 사나이와 주 선생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사나이는 전문 킬러로 나서기전 꽤 오랜동안 대구바닥에서 흥신소의 해결사로도 일을 해 왔었다. 해결사는  의뢰인의 프라이버시는 절대로 공개하면 안되었다. 그건 자신의 죽음과도 바꾸어야 할 정도의 불문율이였다.  말이 모든 실수를 가져왔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사나이는 침묵을 훈련했고 이제 침묵안에서만 편안함을 느꼈다.


한국인들은 이혼하기 위해서 결혼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회에서 명망있는 위치의 한국인들의 부부들이 더 추악하고 복잡한 문제가 많았다. 게다가 준법 정신을 강조하는 손 대통령의 영향인지 사회 전반적 분위기는 뭔가 냉랭해서 서로 믿지 못하는 불신이 깊어져 있어 많은 한국인들이 사나이에게 주로 뒷조사를 의뢰했다. 특히 이혼할려는 한국인들에게서 높은 선수금이 들어오는 것은 이혼시 위자료를 더 받기 위해 배우자의 불륜들을 증거자료로 모으기 위한 많은 자질구레한 뒷조사가 많았기 때문이였다.
   
역시 술이란 좋은 것같아 생전 처음보는 자네에게 이런 내 속마음도 이야기하고 말이세. 그런눈으로 날 보지말아 난 당신을 내 진정한 마음을 털어 놓을수 있는 친구로 생각하고 있어
   
사나이는 주 선생의 얼굴을 보았다. 주 선생의 눈은 약간 겁먹은 듯하면서도 뭔가를   갈구하는 듯 슬푼 눈빛으로 변해 있었다. 손에 쥔 포도주잔은 벌써 깨끗이 비어져 있었다.
   
난 보기좋게 놈들을 속이고 대한미국에서 가장 부자가 되었네 놀랍지 않는가.
   
……………
   
자넨 무서울 정도로 말이 없는 친구로군.
   
누가 타켓인지 아직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타겟의 사진은 내 안주머니에 들어있어.
   
주 선생은 자신이 입고있는 검은색 양복의 왼쪽가슴을 손으로 툭 쳐보였다.
   
보여주시죠. 제가 여기온지 벌써 30분이 지났습니다.
   
서둘지 말라니까.
   
계속 이러시면 전 이만 일어서겠습니다.
   
아아 잠깐 내 이야기만 조금 들어주면 될걸 가지고 뭘그러나? 돈을 더달라면 더 줄수도 있어. 난 자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부자야.
   
사나이는 횡설수설하는 주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안테나같은 촉수를 마음에서 꺼내 자신과 주 선생이 있는 카페 안을 둘러 보았다. 카페는 그러고 보니 제시카를 마지막 보았던 곰팡이 냄새나는 카페와 많이 닮아 있었다.
   
아이를 지웠어
   
제시카는 이곳과 닮은 카페에 앉아 그렇게 말문을 꺼냈다. 사나이는 처음에 제시카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아이를 지우다니 아이가 낙서인가?
   
어차피 우리 같은 불법체류자들의 아이는 미래가 없잖아
   
미래가 없다니 과거와 현재가 있었는데?
   
사나이는 분노했다. 모든 것들이 그동안 한국에서 겪었던 이민생활의 애환과 함께 폭발했다.  


이제 겨우 행복을 찾았다고 얼마나 기뻤는데 그 기쁨이 남달랐던 만큼 분노를 걷잡을 수 없었다. 제시카는 분노하는 사나이에게 눈물로만 대답을 했다. 미국인은 웬만해서는 울지 않는데 이제  한국인이 다 된듯 제시카는 시도때도 없이 울어제키는 한국드라마의 여주인공처럼 울었다. 제시카를 만나기전에 사나이는 사실 아기의 옷을 사러 갔었다. 덩치가 큰 미국인의 옷을 한국인의 옷가게에 산 적은 없지만 아기옷이라면 괜찮을 것이다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아기자기한 한국옷을 아기에게 입혀주고 싶었다.
   
어느 병원에서 낙태수술을 했지?
   
사나이는 제시카가 혼자 그런 무시무시한 살인행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걸핏하면 낙태하는 한국인들이 시킨 짓이라고 생각했다. 죗값을 가르쳐주어야 한다고 사나이는 제시카를 닥달했다.
   
병원에 가도 아기는 이 세상에 없어.
   
제시카의 말을 듣는 동시에 사나이의 영혼이 몸속에서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사나이는 어지러움이 느껴져 눈을 비볐다. 눈을 천천히 떠서 카페 주위를 다시 되돌아 보았다. 바로 앞에 주 선생이 취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처음 자신이 들어올 때 카페안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지금 보니 사나이 왼쪽 편에 놓여진 테이블에는 깡마른 한국인 여자한명이 홀로  앉아서 커피잔을 홀짝거리고 있었다. 여드름이 난 얼굴의 웨이터 한명도 무표정한 얼굴로 카페 안을 홀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웨이터와 여자 손님은 전혀 사나이와 주 선생을 신경쓰고 있지 않아 보였다. 사나이는 주 선생을 바라보았다. 주 선생은 사나이에게 누가 타켓인지 전혀 알려주고 싶지 않은 시근퉁한 표정으로 빈 포도줏잔을 바라 보고 있었다. 사나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사나이는 주 선생의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의 주방 옆에 붙은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문을 열며 사나이는 살짝 주 선생을 훔쳐 보았다. 주 선생은 웨이터에게 뭔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사나이는 화장실로 들어가자마자 문을 소리 나지 않게 잠근 후에 양소매와 바지에서 분해되었던 9MM 권총의 부속품 들을 신속하게 세수 세면대 위에 올려놓고 재조립하기 시작했다. 권총을 조립하면서 사나이는 주 선생이 지금 앉아있는 테이블에 몰래 장치해놓은 도청기 리시버의 스위치를 켰다. 도청은 사나이가 신물이 나도록 하던 일이였다. 무기소지가 자유로운 미국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사나이가 9MM를 조립하는 것은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는 일보다 쉬운 일이 였다. 사나이는 눈을 감았다. 손이 총을 조립하는데 가장 방해되는 것은 눈이였다.
   
Cabernet sauvignon을 가져와
   
 리시버속의 주 선생은 웨이터에게 포도주를 가져오라고 시키는 것 같았다. 제시카도 포도주를 좋아해서 그녀와의 결혼식에서 금주법으로 값이 올라갈데로 올라간 포도주를 어렵게 구해 마셨었다. 그러나 혼이 나가버린 산 송장같은 사나이에게 제시카와의 결혼생활은 포도주 마실때만 행복했었다. 제시카의 말이 옳았다. 불법체류자 미국인들에게 미래는 없다.
   
빨리 안 가져오고 뭐해!
   
주 선생의 목소리가 화장실 전체에서 넘실댔다. 사나이의 촉각은 멍게의 가시처럼 솟구쳤다. 사나이의 손이 모든 조립을 끝마친 뒤에도 한번 세운 그의 모든 신경들이 좀처럼 수그러 들지 않았다.
   
그래 바로 그거 Wolf blass yellow label 이라고 쓰여진거
   
주 선생은 컬렉션을 가질 정도로 다양한 포도주를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였다. 도청기에서   나오는 주 선생의 목소리는 취기때문인지 카페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는 서슬 퍼런 금주법 따위는 없었다. 사나이는 1분이 채 되지 않은 시간에 권총의 모든 조립을 끝낸 것이다. 그는 왼쪽 소매안쪽에 비밀스럽게 만든 주머니 안에서 총알을 한발 꺼냈다. 총알이 탄창안에 들어가자 청심환을 먹고 혈색이 도는 사람처럼 권총도 알수 없는 살기를 드러냈다.
   
 이제 곧 주 선생은 사나이의 손에서 최후를 맞이 할 것이다. 금주법로 밤의 대통령이 되어버린 주 선생에게 접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의 주위에는 24시간 철통 같은 경호가 버티고 있었다. 주 선생은 밀주로 벌어들인 돈으로 사단 정도 되는 부대 하나를 개인적으로 거느리고 있는 사람이였다. 그런 주 선생을 사나이는 참으로 끈질기게 그의 주위를  맴돌며 주 선생을 처단할 기회를 노렸었다. 사나이는 자신이 한국 최고의 미국인 살인 청부 업자라는 정보를 끊임없이 노출시켰었다. 주 선생이 자신에게 살인청부를 의뢰하는 길만이 그에게 접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였기 때문이였다. 사나이의 생각은 적중했다. 주 선생을 처단하기로 작정한지 정확히 1년이 지난 날에 의뢰인에게서만 걸려오게 되어있는 핸드폰이 울렸던 것이였다. 그렇게 기다리던 주 선생이였다. 주 선생은 사나이에게 살인 청부건이 있다고 영어로 말했다. 주 선생은 동성로에 있는 한 카페의 위치를 가르쳐 주며 카페에서 착수금과 타겟목표를 가르쳐주겠노라고 말했었다. 사나이는 주 선생이 누구를 죽여 달라고 부탁하든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금주법을 통해 탄생한 밤의 대통령
한국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수 없는 폭력과 뇌물위에 군림하는 무법자

술을 저주하는 독실한 종교인 손 대통령의 첫번째 정치적 작품인 금주법은 밀주라는 또다른 저주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준비가 끝나자 사나이는 도청장치의 리시버 스위치를 껐다. 자신이 화장실에 간   사이에 어떤 수상한 대화가 없었으므로 주 선생이 자신의 경호는 없이 단신으로 자신을 만나러 여기 온 것이라는 것을 확신 할 수 있었기 때문이였다.

사나이는 9MM권총을 쥐고 화장실 문에 등을 기댔다.

사나이는 짧은 순간이지만 갑자기 미국 락 그룹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듣고 싶어졌다.

인생이 영화라면 지금 바로 그 음악이 흐를 것 만 같았다.


이제 나의 아기 사랑하는 아기가 있는 코리언드림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가는거다.
   
따앙!!!!!!
   
짧지만 큰 총소리가 카페 전체를 울렸다.
   
뭐…뭐야…
   
주 선생은 포도주를 들이키다가 자신의 옷에 그만 포도주를 다 흘리고 말았다. 주 선생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사나이가 들어간 화장실로 뛰어갔다. 화장실 문을 발로 열고 안을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화장실 바닥에 엎드린 채로 쓰러져 있었다. 주 선생은 몸을 굽혀 사나이를 돌려 눕혔다. 사나이의 머리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즉사였다.
   
주 선생은 놀란 얼굴로 뒷걸음을 치다가 자신의 발에 뭔가 차이는 검은 물체를 발견했다. 주 선생은 잠시 망설이다가 검은 물체를 손으로 집어 올렸다.
   
총이다
   
주 선생은 쥐었던 권총을 자신의 머리에도 가져다댔다. 그러고 방아쇠를 힘차게   당겼다.
   
찰칵
   
뭐야..뭐야…
   
찰칵 찰칵…
   
아무런 반응이 일어나질 않자 주 선생은 미친듯이 방아쇠를 당겼다.
   
찰칵 찰칵 찰칵
   
주 선생의 얼굴은 거의 울상으로 변했다.
   
총알이 없어 총알이..
   
   
   
다음날.
   
손 효욱 대통령은 보석 같은 햇빛이 부서지는 제주도의 한 호텔 테라스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키위쥬스를 마시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오늘 신문 한번 읽어보시죠.
   
손 대통령은 비서실장이 내미는 신문을 받아들고 읽기 시작했다.
   
- 한국재계의 최고경영자 주형돈 회장 살인죄로 현장 체포!
   
한국굴지의 코리아그룹 총수인 주 회장이 어제 대구 동성로의 자신의 소유인 카페에서 권총으로 신원을 알수 없는 40대 미국인 불법체류자 남자를 총으로 살인한 현장에서 음주단속반 잠복경찰에 의해 긴급구속됐다. 경찰은 주회장의 지문이 묻은 9MM 권총을 증거로 압수했다. …주회장은 법정에서 자신이 자살 할 용기가 없어 자신을 죽여달라는 부탁을 하기위해 청부살인업자를 고용했다고 결백을 주장했다….
   
종신형 먹겠지 가석방 없는
   
네 차라리 죽는 것이 편할 정도로 고통스런 감옥에서 말이죠.”
   
알았어 가봐. 아참 이민국에 연락해서 미국인 한명 특별사면으로 한국 거주 영주권 하나 신청할 때 서류가 뭐가 필요한지 알아봐.
   
영주권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비서실장이 가버리자 손 대통령은 키위쥬스를 다시 한모금 빨아들이고 소설책을 꺼내들었다.
   
정말 일급 살인청부 업자군 자신을 죽이면서까지….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그나저나 괘씸한 주 회장 이놈 감옥에서 한번 고생해봐라. 정치자금으로 준 돈 몇 푼으로 나를 협박하려 들다니. 우리 정부에서 살인죄를 어떻게 다루는 지 잘알고 있겠지.
   
난 죄가 없다 .어짜피 자살하려던 놈 아닌가. 돈이 하도 많으니까 허무했던 모양이지..
   
자살 할 줄 알았으면 그냥 놔둘걸. 괜히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했네.  그나저나 그 미국인은 살인하는 조건으로 한국 거주 영주권을 아내에게 주라고 하고 자기는 죽어버리다니.  


거참 이상하군. 한국이 그렇게 좋은 나라인가?
   
손 대통령은 소설을 계속 읽어 나갔다. 한국영주권을 취득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한 미국인 이민가정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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