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역에서 알아주는 큰 재래시장 수 많은 중국인들 틈 사이에서 한상원씨는 속으로 이렇게 투덜거렸다. 상원씨는 한국 굴지의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업체의 컴퓨터 엔지니어였다. 앞으로 진급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중국지사 파견 근무을 자청해 중국에 오게 되었다. 뭐든지 집중을 잘하고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성향이 강한 상원씨는 중국에 도착하자 마자 지사 동료들이 다들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열심히 일만 해댔다. 데리고 온 가족들도 거의 다 내팽겨치다 시피하고 1년365일 맡겨진 프로젝트에만 몰두했다. 결국 중국에 온지 일년만에 아내와 아이들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상원씨는 그제서야 부랴부랴 가족들에게 중국관광을 해보자고 말하고 일단 먼저 집 주위에 가까운 산에 가서 야외에서 고기나 일단 구워먹자며 어울리지 않는 애교를 부렸다. 상원씨는 아내에게 먹을 음식도 직접 자신이 시장에서 사오겠다고 자청했다. 한번 봉사하는 김에 풀코스로 해보이겠다는 생각으로 직접 장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시장을 한 30분 돌아다니자 얼마나 힘이 들던지 차라리 일을 하는 것이 더 나을 뻔 했다는 후회가 상원씨의 마음에 가득찼다. 거의 밤이 될 무렵까지 상원씨는 찬거리 몇개만 건지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헤매다 보니 집으로 돌아갈 쯤엔 거의 탈진한 상태가 되었다.
‘어이구 고기를 까먹었네. 그게 제일 중요한데…’
집에 찬거리를 놓자 마자 고기를 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왕 시작한 준비를 내일까지 끌고가고 싶지 않았던 상원씨는 피곤한 몸을 억지로 움직여, 파는 고기가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한 정육점의 전화번호를 적어 놓았던 명함집을 찾기위해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말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더니..이거 어디있어?”
거의 한시간 가량 상원씨는 이리저리 온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고 난 뒤에야 자기 바로 앞에 책상 위에 얌전하게 놓여있는 명함집을 발견하게 되었다.
“에이 오늘 하루 종일 짜증나는 일만 벌어지는 군.”
궁시렁거리면서 명함집을 이리저리 넘겨보다가 결국 정육점의 명함을 발견하자 상원씨는 기쁘기는 커녕 허탈하기만 하였다.
Shalom정육점.
상원씨는 정육점 이름을 처음 들었을때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샬롬이라면 안녕이나 평화라는 뜻의 팔레스타인지역사람들이 쓰는 히브리어인데 중국인이 경영한다는 정육점의 가게 이름으로 쓰이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샬롬’과 ‘정육점’의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였다.
전화를 걸어보았다.
“웨이”
신호가 아주 오래 가고 난 뒤 아주 퉁명한 목소리가 상원씨의 귀를 때렸다. 상원씨는 공손하게 중국어로 집에서 먹을 정도의 쇠고기를 원했다. 그러자 전화속의 중국인은 자기 정육점은 가정용고기를 팔지 않고 큰 요리집에 납품만 한다며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상원씨는 불쾌했다. 대체로 손님한테 불친절한 중국인들이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정육점 주인의 불친절의 과잉대응에 상원씨는 자기가 고기를 얻어 먹는 거지 같은 기분도 들었다. 다른 정육점을 알아볼까 생각도 했지만 한동안 가족들에게 소홀히 했던 마음을 이번기회에 맛있다고 소문난 정육점의 특별한 고기로 톡톡히 만회해보고 싶어 상원씨는 정육점 주인의 무례함을 참기로 했다. 상원씨는 그 집 고기와 자신의 살점을 맞 바꿀 각오로 중국인 정육점 주인에게 다시 한번 애원하면서 매달렸다. 몇분간의 설전이 오고 간 뒤에 정육점주인은 선심쓰듯 이렇게 말했다.
“그럼 어제 납품 들어온 고기도 괜찮다면 그 만한 양도 드릴수 있습니다.”
“어제라구요?”
“선생님께서 한국에 계실때 보통 마켓에서 구입하셨을 몇개월 동안 냉장보관된 고기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고기죠.”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은 어떻게 아셨죠?”
“중국 발음을 들어 보면 알수 있죠뭐. 게다가 소고기는 우리 중국인들이 그렇게 한국사람들처럼 즐기지는 않죠.”
전화 통화 내내 시니컬한 대꾸를 하는 이 푸줏간 인간에게 얼마나 더 내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하나 상원씨는 마음에 갈등이 생겼다.
‘참자. 참어..자존심을 내려놓을때 목적하는 바를 이룰수 있으리니…’
“어..어제 들어온 고..고기로 하겠습니다.”
자존심이 내려놓자 이상하게 말이 더듬거려졌다.
“리지(里脊)부위로 하시겠소?”
“예? 그게 뭐죠?”
“등심부위로 하시겠냐고 묻는 거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리지里脊는 중국인들이 영어로는 “Fillet”, “Tenderloin” 으로 불리며, 소의 등심 안쪽에 위치한 부위를 마을리里와 등골척脊을 써서 부른다고 했다. 한자로 모든 단어를 표기해야 하는 중국인이 한자를 만들때의 고뇌는 이해가 가지만, 고기의 살결이 긴 버드나무 잎모양과 비슷해서 니우리우牛柳라고도 불리는 소고기의 이 값비싼 부위를 딱딱한 뼈와 같은 이름으로 부르니 등심고기가 맛있게 들리기는 커녕 상근씨에게는 순간 섬뜩하게 들렸다. 그래도 뭐 비싸니 맛이 좋을 것 같은 단순한 이유에서 리지부위를 선택한뒤 상근씨의 연락처를 알려주고 얼른 통화를 끝내려 했다. 정육점주인은 전화통화를 끊으면서 기계적으로 자신의 샬롬 정육점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덧부쳤다.
‘샬롬 좋아하네..’
상원씨는 신경질적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허난성河南省을 빠져나가기 위해 나는 꼼짝없이 8시간이상을 기차역 대합실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중국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으면서도 가장 가난한 허난성의 명성답게 낡은 기차역에는 행색도 가난하게 보이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기차가 도착 하는 동안 앉아서 기다릴 의자가 역대합실에는 없었다.
길다랗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마치 거대한 만리장성처럼 보였다. 무언가에 바쁜 중국인들의 밀림속에서 나는 긴 시간 동안을 마냥 동이 트기를 기다리는 조조早朝의 한 마리 새처럼 개찰구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고 만 있었다.
나의 주위를 스쳐 지나 가면서 일으키는 중국인들의 인풍人風은 나의 몸을 관통하더니 내 몸을 잎사귀 없는 앙상한 한 그루의 나무로 만들었다.
뼈 속에 바람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바람들이 슝슝 소리를 내며 마침내는 내 온몸이 모래처럼 부스스 공중에서 분해되어 사라질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들게 했다.
기다린 지 5시간정도가 흐르자 머리속이 조금 어지러워지는 것 같았다.
눈을 잠시 감았다. 잠시라도 머리 속의 작은 현기증을 잊고 싶어 눈을 감았을 뿐인데 생각은 더 심한 현기증을 일으키며 빠른 속도로 나를 과거속의 시간속으로 끌고갔다. ‘김 선생! 연 길음을 수소문한다고 얼마나 고생 한 줄 아시오?’ 눈을 감자 중국 정부의 공무원인 위 록진이 모습을 나타냈다. ‘연길음는 어디에 있습니까?’ ‘허난성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허난성이라면..’ ‘네..뭐 어려운 고비는 넘겼다고 볼 수 있죠. 허난성에 있다는 건 공안당국이 그녀를 죽이지는 않고 살릴 의사는 있다는 뜻입니다.’ 어제 호텔이라고 잤던 퀘퀘한 방의 침대 매트리스가 워낙 낡은 고물이었는지 어깨도 뻐근하고 허리에도 통증이 왔다. 허리의 통증이 기차역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중국인의 목소리처럼 시원 시원하게 아프지 않고 개미 같은 작은 벌레가 기어가는 것처럼 스멀스멀 아주 기분 나쁘게 아팠다.
나는 기차가 도착 할 때까지 허리에 양손을 얹고 엄지 손가락으로 허리를 마사지 했다. 허리를 만지고 서있는데 시간이 흐르자 내 눈앞에 떡하니 펼쳐진 인간으로 만들어진 만리장성이 차츰 내 시야에 들어왔다.
나의 바로 앞에는 겉옷을 몇 겹이나 껴입은 30대 후반가량의 중국여인이 한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서 있었다.
나는 여자아이를 유심하게 바라보았다.
여자아이는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온 시키기 위해 선지 여러 겹의 옷으로 중무장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착용한 귀마개가 어른 귀마개인지 그 아이에게는 커보였으나 귀엽게 아주 잘 어울렸다. 불그스름한 볼의 피부를 가진 10살이 채 안되어 보이는 그 여자아이는 유난히 맑은 두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아무 말 없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 여자아이와 내 눈이 마주치자 한 사람의 이름이 생각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연길음!’ 연길음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르자 신기하게도 아이의 얼굴이 공중에서 조각조각 먼지처럼 흩어지더니 다시 모여서는 연 길음의 얼굴로 내 눈앞에 마술처럼 나타났다. '연길음 다시 한번 나는 마음속으로 그 이름을 외쳐보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눈물 때문인지 내 앞에 서있 던 연길음의 얼굴이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아빠. 비가 와. 밖에 봐.”
어제 밤에도 한국에서 급히 모니터링을 부탁해온 프로젝트를 하느라 밤을 새다시피한 상원씨는 부시시 일어나 멍한 얼굴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빠 비 온단 말 이야. 엉엉.”
상원씨에게 매달려 아빠를 당겨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딸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비몽사몽에서 깨어난 상원씨는 창문밖을 바라 보았다.
“뭐야? 일기예보에는 일주일 내내 날씨가 맑을 거라고 그랬는데..”
제법 굵은 빗줄기가 창문을 때리고 있었다.
“컴퓨터귀신이라는 우리 박사님께서 일기예보를 믿으신다니 놀랍군요?”
아내는 사람 넉넉한 미소를 띄면서 상원씨를 살짝 째려보았다. 상원씨는 뒷통수를 긁으면서 창문밖과 울상을 짓고 있는 딸아이의 얼굴을 번갈아 눈치보았다.
“이를 어째?”
“뭐를 어쩌긴요. 여느때와 다름없이 방구석에 처박혀있어야지.”
딸아이보다 2살많은 아들놈이 매섭게 쏘아붙이자 상원씨의 미간에 순간 주름이 잡혔다. 아버지따라 중국온 것이 무슨 유배지에 온 것으로 생각하는데다가 요즘 한참 사춘기인지 하는 말들에 반항기가 철철 넘쳤다.
“이녀석. 아빠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
상원씨딴에는 가족이 계획한 일 무산되어 미안한 마음에 못들은 척을 하려했지만 계속 씩씩거리면서 거실 중앙에서 자신과 아내를 노려보는 아들에게 부모로써 짚어넘어가야 겠다는 생각에 한 말이 그만 도화선이 되고 말았다. 상원씨의 말에 아들은 손에 들고 있던 망원경을 반항한답시고 세게 땅바닥에 내리쳤는데 망원경 끝부분에 달린 쇠조각이 그만 떨어져 나가 옆에 서있던 딸아이의 빰을 할퀴고 가버렸다.
“아얏!”
상원씨와 그의 아내는 놀란 얼굴로 딸아이에게 달려갔고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아들은 멍한 얼굴이 되었다.
“다쳤어?”
“아파?”
상원씨가 아내가 번갈아가면서 걱정스러운 목소리 묻기시작하자 빰을 쓸어내리던 딸아이의 얼굴이 시뻘겋게 되더니 울음보를 터트렸다.
“으앙. 아퍼.”
약간 엄살이 센 딸아이라서 아내는 딸아이를 손을 빰에서 떼어내서 자세히 들여다 보고 나서 상원씨에게 별일 아니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신호가 떨어지자 상원씨는 아들쪽을 화난 얼굴로 바라보았다.
“네 이녀석. 동생이 다칠뻔 했잖아.”
상원씨는 정말 혼을 이번에 단단히 내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아들쪽으로 다가갔는데 아들의 얼굴이 놀란듯 잔뜩 긴장해 있음을 깨닫고 나서야 마음을 고쳐먹었다.
“동생이 다칠뻔 했잖니?”
방금전보다 조금 부드러운 목소리로 상원씨는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의 표정은 반항적이던 모습보다는 약간 수그러들었지만 자기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책임을 묻는 부모가 미웠는지 입을 불만스러운듯 삐쭉거렸다.
“미안하다고 해 어서.”
아내는 아들에게 채근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해야 해요.”
억울하다는 아들.
“어쨌든 손에 들고 있던 망원경을 너가 바닥에 내려치는 바람에 부숴져서 벌어진 일이 아니냐.?”
포청천 역을 시도하는 아버지.
“빨리 어서 사과하지 못해?”
성질 급한 어머니
그리고
계속 우는 딸아이의 목소리가 비때문에 모든 일정을 망친 상근씨의 집안속에서 어지럽게 휘몰아쳤다.
나는 학창시절에 남들의 눈에 특출하게 띌 일이 전혀 없는 평범한 아이였다.
지금 곰곰히 기억하려 해도 어릴적 기억은 전혀 생각나는 것이 없다. 아버지 친구분이 운영하시는 자그마한 중소회사를 다니시는 아버지와 전업주부이신 어머니는 남들이 보면 말을 할 줄 모르는 장애가 있지 않을까 할 정도로 대화가 전혀 없었고. 내 위로 2살 많은 하나 있는 누나도 내성적인데 다가 낯을 엄청나게 가리는 편이라 집안 분위기는 마치 산사람이 전혀 살지 않는 유령의 집같은 분위기였다.
교회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고 싫어했던 나와 우리가족이 기독교단체를 접하게 된 계기는 점점 심각해지는 누나의 자폐 증세 때문이였다.
나이가 들면 괜찮아 지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나의 증세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은 누나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마자 담임학교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난 뒤였다.
누나가 체육시간 때에 당번을 하는 차례라 혼자 학급에 남아 있었는데 그날 같은 반 친구가 자신의 책 사이에 끼워둔 당시 꽤 많은 돈을 분실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였다.
당연히 혼자 교실을 지켰던 누나에게 의심의 눈초리는 돌아갔고 담임선생님도 따로 불러 물어보았지만 닫혀진 누나의 입과 마음은 요지부동이였다. 돈을 잃어버린 아이와 그 아이의 친구들은 누나를 몰아세웠는데 그게 그만 누나를 미치게 만들었는지 갑자기 간질증상으로 보이는 행동을 나타내면서 교실전체를 완전히 뒤집어 놓는 일이 벌인것이였다.
누나는 그 후로 등교를 거부하기 시작했고 완전히 세상과 단절되어 방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게 되었다.
나를 포함한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누구에게도 하소연하지 않았고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마음속에 감옥을 만들어 놓고 홀로 죄수처럼 수감되어진 누나의 모습이 어린 나의 눈으로 봐도 점점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몇 년이 흐르고 내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 모든 일에 소극적인 아버지와 어머니를 앞장세워 주위의 누나같은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도와주는 단체를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몇 군데를 알아보다가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알맞은 곳를 하나 찾게 되었다. 그 보호소는 ‘우리가족’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보호소였는데 다른 보호소처럼 마치 사람을 동물처럼 가둬 놓고 사육하는 곳이 아니라 시골의 작은 소학교같은 아담한 분위기였다.
그런 편안함이 우리 가족의 마음에 들었다.
원한다면 합숙도 있었지만 보호소가 내가 다닐 대학캠퍼스와 가까운 위치에 있어 나와 같이 매일 등하교하기로 결정했다. 누나와 함께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지 한달 뒤, 누나에게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사람의 눈길을 피하고 고개를 숙인체 한참동안을 있기만 했던 누나의 발걸음이 점점 가벼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중학교때 정신적 충격을 받은 그 날에 갇혀 평생을 두려움과 슬픔을 눈에 가득히 담고 살것같던 누나의 행동이 밝아졌다는 사실은 우리가족에게 기적과도 같은 사실로 전해졌다.
후에 내가 현역 군대 입대를 할 시기에 누나는 이제 혼자서도 충분히 보호소를 다닐 정도가 되었다.
상근씨는 어이가 없었다.
“내가 집에 가져오지도 않은 고기의 구입비를 내야 한다구요?”
비가 오는 바람에 피크닉을 취소하게 된 상근씨는 비싼 외식으로 억지로 가족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지 3일째가 되던 날, 난데 없는 전화 한 통화를 받게 되었다. 회사 정문 경비실에서 온 전화였는데 시내 정육점에서 지불받지 못한 고깃값을 받으러 누가 찾아왔다는 것이였다. 처음에는 잘못 찾아왔거니하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몇일전 자신이 뒷마당에서 고기를 구워먹으려고 전화걸었던 그 정육점이였다. 상근씨는 자초지종을 들어보려고 회사정문 경비실로 단숨에 달려갔다. 생전처음보는 그 정육점에서 일한다는 중국청년이 상근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상근씨를 보자마자 어이없게 주문한 등심 소고기값을 지금 당장 결제해달라는 것이였다.
“아니 전 고기를 본 일도 없는데 왜 구입비를 내야 하는 거죠?”
떠듬거리는 중국어로 상근씨가 묻자 상대가 중국말을 잘 못하는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파악한 중국청년은 목소리 톤을 높여서 상근씨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로 뭐라 고함치기 시작했다. 상근씨는 한국어와 중국어에 능숙한 재중동포인 경비원아저씨에게 슬쩍 중국청년이 도대체 뭐라고 하는지 물어보았다.
“한 박사님 고기 주문해서 구입하지 않으셨어요?”
“네 전화로는 했죠.”
“엥 그게 무슨 말이예요?”
“전화로는 주문을 했죠. 가족들과 고기를 구워먹으려고요.그런데 비가 와서 고기를 못 구워먹게 되어서 고기를 사지는 않았는데.”
“그럼 전화로 주문취소는 하셨나요?”
“예?”
“취소하셨냐고요?”
“아니 그건…깜빡 잊었어요.”
경비원아저씨는 상근씨를 안쓰럽게 바라보면서 혀를 끌끌찼다.
“어이구. 그러니까 저 놈이 저리 악을 쓰는구나. 한 박사님때문에 준비해놓고 다른 사람에게 못팔게 된 고깃값을 내어놓으라고 저렇게 발악을 하는 거예요. ”
“저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상근씨는 악을 써대는 중국청년을 바라보면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가져가서 먹던 말던 주문한 고기는 값을 치루라는 것이죠.”
상근씨는 중국청년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이면서 양손으로 진정하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한국을 떠나 외국을 나와서 살때 소위 바디랭귀지를 쓸때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상근씨가 진정하라는 뜻으로 보여줬던 손짓이 그 중국청년에게는 배째라는 엄포로 보여졌는지 중국청년의 울그락 불그락한 얼굴빛이 갑자기 하얀색으로 변화되었다.
잠시 세상의 오디오 볼륨을 완전히 없앤듯 중국청년과 상근씨와 얼떨결에 끼게 된 경비아저씨가 서있는 공간이 침묵 속으로 놓여졌다.
“공안에 연락할테니 당신 여기 그대로 있어!”
중국청년은 정적을 깨면서 낮은 톤으로 말했다. 중국청년의 말에 중국와서 공안을 전혀 대면해 본적 없는 상근씨는 어디 마음대로 그러라고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지만 상근씨보다 중국에서 오래 산 경비아저씨의 표정은 반대로 긴장하는 듯 약간 굳어졌다. 씩씩거리면서 어디론가 달려가는 중국청년의 뒷통수를 바라보면서 경비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말은 대국시민이라면서 속갈머리는 밴댕이같구먼.”
밴댕이라는 말을 듣자 상근씨는 속으로 움찔하였다. 밴댕이라는 고기는 실제로 잡아서 물에 꺼내놓으면 성질이 급해서 금방 죽어버린다고 한다. 속이 좁은데다가 성질이 급해서 확 죽어버린다는 밴댕이성격이야 말로 상근씨가 한국에서 아내에게 셀수 없을 정도로 들었던 말이였다. 상근씨는 밴댕이 소갈머리라는 말을 들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사회의 조직속에 깊숙이 들어가 살다보면 자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고 변호하였다. 그와 반대로 세월아 네월아 마냥 기다리는 데 익숙한 중국의 ‘만만디’ 사회풍조속에서 살면서 상근씨도 점차 밴댕이병이 점차 치유되어갔다. 게다가 오늘 중국밴댕이를 만나면서 상근씨는 홀가분하게 밴댕이계를 떠날 수 있게 되는 위치까지 오게 된것이다.
경비아저씨와 상근씨는 그 자리에 서서 중국청년을 한참동안 기다렸으나 저녁그림자가 느물하게 사방에 퍼질때까지도 나타나질 않았다.
내가 기독교 선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군대를 제대하고 얼마있지 않아 맞닥뜨리게 된 누나의 죽음때문이였다.
누나는 언제나 내성적이고 조용했었는데 죽음도 내성적이고 조용하게 다가왔다.
누나는 여느때와 같이 보호소를 학교처럼 등교하고 다녔었다. 우리집에서 보호소까지는 내 걸음으로 약30분정도되는 거리였는데 최근에 집 주위에 아파트공사가 시작되면서 수많은 트럭들이 몰려들어 길 주위가 번잡해지고 위험해졌었다. 안전공사라는 말을 공사장 곳곳에 몇만번 써 놓은들 사람들에게 돌진하는 트럭과 무너져내리는 철근과 벽돌들의 힘을 막을 수는 없는 법인데 갑자기 시작된 공사장 현장 정 중앙으로 정해진대로 평상시 걷던 누나를 가만히 내벼려두지 않았던 것이다.
누나가 무너진 철근에 깔린던날 날씨는 정말 환장스럽게 아름다웠었다.
어느날보다 햇볕이 따스한 날 누나는 무너지는 철근앞에 고요하고도 짧은 누나의 일생이 마감하게 되었다. 심한 뇌진탕으로 사고현장에서 응급실로 급하게 옮겨지고 나서야 연락을 받은 나와 가족들은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다.
눈과 입만 남겨둔체 온 머리가 붕대가 감겨져 있는 누나는 가느다란 숨을 쉬며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온 세상이 소음과 잡음으로 그렇게도 시끄러운데 자폐증 누나는 비명소리도 부끄러운지 지르질 못하고 조용하게 죽음의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응급실의 의사와 간호사들은응급실이 아니라 퇴원실의 환자를 돌보듯 내 눈에 건성건성 누나를 돌보고 있었는데 아마 곧 닥칠 죽음을 기정사실로 움직이는것 같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누나가 누운 침대옆에서 누나처럼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내눈에도 걷잡지 못할 정도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에게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누나에게 진 빚이 있었다.
내가 5살정도일 때 당시 집집마다 있던 방안의 석유곤로를 넘어뜨린일이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잠시 외출하셨을 때였다. 석유곤로를 어떻게 넘어뜨렸는지 이해도 되지 않고 자세하게 생각도 나지 않지만 하여튼 넘어진 석유곤로는 곤로 옆에 둔 석유통에 그대로 넘어졌고 거대한 불기둥이 순식간에 방 중앙에서 솟아올랐다 .
나보다 2살이 많아도 7살 밖에 되지 않는 누나는 멍하니 방안에 붙은 불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손을 낚아채서는 집 밖으로 순식간에 데리고 나갔다. 그러고는 길거리에 서서 누나는 나를 부둥껴 안고 아주 큰 목소리로 ‘불이야’를 외쳐댔다.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외쳐대는 누나의 외침은 지나가는 모든 동네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들이기에 충분했다. 다행히 안방의 벽만 꺼멓게 그을릴 뿐 큰 피해는 없었는데 외출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누나를 종아리에 피가 맺힐정도로 때렸다.
너무 심하게 회초리질을 하시는 아버지에게 차마 나는 왜 불을 지른것이 누나가 아니라 나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누나 미안해..’
점점 엷어지는 숨소리앞에 나는 누나의 용서를 받고 싶어 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나는 누나에게 결국 아무말도 하지 못했고 누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누나의 장례식은 보호원의 목사님과 몇몇 교사 이외에는 우리가족밖에 없는 누나처럼 조용한 장례식이였다.
나는 그 때 참석한 목사님에게 다가가서 신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누구든지 죽는데 죽음 이후에 저 세상에서 가서 이 세상의 평가를 받을 것 인데 그 평가는 내가 용서받지 못했거나 자신이 회개하지 못한 죄의 양으로 결정된다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누나한테 지은 죄를 용서받고 자의건 타의건 죄를 주고 받는 이 세상에서 일단 벗어나는 길은 성직자가 되는 길 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했던 것이다. 어리둥절하는 부모님의 얼굴을 뒤로 하고 나는 신학교에 등록을 했다.
4년뒤, 나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후, 나는 사역할 장소를 위해 기도하는 도중에 ‘중국’으로 가라는 음성을 듣게 되었다.
나는 기도의 응답이 이런 마음의 감동으로 오는 줄은 그 때 처음 경험하게 되었다. 너무 강력한 감동이여서 나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선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중국어훈련과 중국으로 들어가기전 필요한 오리엔테이션을 몇 주 거친뒤 나는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현지적응훈련과 파견사역지를 정하는데 중국대륙 전체 곳곳을 이동하면서 1년6개월을 다시 보냈다.
상근씨는 그 후로 그 정육점에 관한 일을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공안을 데리고 오겠다던 중국청년의 공갈도 공허한 소리로 망각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상근씨가 일상의 생활로 젖어들어 새로 맡은 프로젝트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에 하루는 집에 있는 아내로 부터 긴급한 전화를 받았다.
“여보. 큰 일 났어요.”
“뭔데?”
상근씨는 일에 몰두하는 중간에 걸려온 아내의 전화를 짜증나는 목소리로 되받아쳤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폐교조치한다는 연락이 왔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상근씨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재중한국인들을 위한 학교였다. 한참 사춘기인 아이들이 해외에서 잘못된 길로 방황할경우가 많은데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한국선교사들이 세운 학교로 사명감을 가지고 교육을 아주 제법 잘 시켜주고 있는 학교였다. 그나마 아이들이 한국아이들과 학교생활을 해서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폐교를 한다니 이해가 되질 않았다.
“폐교하는 이유가 뭐래?”
“종교활동을 했다는 이유래요.”
“종교활동?”
중국이 종교의 자유가 있는 줄 착각을 많이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중국은 종교활동을 정부가 개입하여 제한하고 있었다. 중국정부가 모든 시장을 개방하고 자본주의의 길을 들어서면서도 종교만은 개방하지 않는 이유를 상근씨는 이해 할 수 없었다.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생각했던 상근씨는 철저하게 종교의 자유를 뺐는 중국정부의 태도때문에 점점 종교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막연하게나마 누군가 이 세상을 만들었을거라는 심증이 점점 굳어지는 상태가 되었다.
“참 어이가 없군. 갑자기 그러면 아이들은 앞으로 어느 학교에 보내지?”
머리가 지근아파오기 시작했다. 앞으로 1년정도만 더 여기서 잘 버티면 본사 연구소에서 자신을 책임자로 부를 것이라는 확답을 이번에 출장온 부사장한테서 받았었다. 아내와의 통화를 끊고 상근씨는 연구실 책상에 멍하니 아무 생각이 없이 한참을 앉아 있었다.
내가 그때 당시 12살의 소녀인 연길음을 만난것은 중국에 들어온지 2년정도가 지난 ‘명성明星’이라는 곳에서 였다.
명성..샛별이라는 뜻을 가진 우리나라의 작은 읍내 수준인 그곳은 마을주민들이 거의 농사를 하며 생활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였다.
나의 동역자이자 현지인인 류원진은 명성시의 농산물 도매업자로 일단 들어가 일하면서 선교의 방향을 차근차근 결정하기로 하였다.
“김선생은 별 좋아하시요?”
중국어로 류원진은 어느날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뚱딴지 같이 갑자기 별은?”
새로 문을 열 농산물 도매 사무실을 정리하던 나는 류원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류원진은 창문 밖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창문 밖 속의 깜깜한 밤하늘은 저녁별로 눈이 부셨다. “동방박사가 저런 별을 따라 아기예수를 맞으러 갔다잖아요. 저 별 좀 보시요. 저기 저 별 한번 따라가보고 싶지 않소? 따라가면 아기예수를 만날 것 같소.” 일을 하다보니 벌써 주위는 한밤중이 되어있었고 하늘은 수많은 별들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보자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아직 기독교가 중국 공안당국의 감시대상이기에 예수라는 말을 할때 조심을 해야한다는 경계심이 다이야몬드 빛깔이라고 밖에 표현 되지 않는 아름다운 별빛에 싸여 모조리 날아가버렸다.
거의 2년간을 같이 동고동락하며 지낸 류원진은 갑자기 후다닥 사무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간 류원진은 나무에 걸린 과일들을 따는 듯 공중에 대고 손을 휘두르며 별을 따는 시늉을 내기 시작했다.
류원진의 얼굴은 어린아이 마냥 즐거워 보였다.
나도 류원진을 따라 마당으로 나갔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가슴 벅차게 빛나고 있었다. 하늘이 마치 바다 같았다. 별들이 떠다니는 바다같았다. 한국에 두고 온 부모님과 형제와 친구들을 향한 그리움과 음식이 맞지않아 고생하던 일과 몸살이 나서 2주일을 누워서 끙끙 댄 일들, 그리고 몰래 전도 활동하다가 공안당국에 발각되어 도망치던 그 모든 일들이 순식간에 별빛에 녹아 사라지고 말았다. “너무 아름답죠..” 류원진은 하늘 위의 별들이 중국 땅에서 빛나므로 당연히 저 모든 별이 중국별이라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것같았다. ”예 너무 아름다워요…” 나도 류원진을 따라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류원진은 오랫동안 별을 바라보며 서있었는데 나중에 하늘의 그 아름다운 별빛을 사람의 눈동자 안에서 다시 확인하게 된 일이 생겼다. “그냥 여기서 잡일도 시키면서 데리고 계세요. 내가 허난성 쪽으로 가서 자리만 잡으면 그때 다시 데리러 오겠습니다.” 농산물 도매사업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연길음의 아버지는 어느날 연길음을 데리고 사무실로 찾아왔다. “아니 혼자 허난성으로 가실려구요? 부인과 다른 자식들은?” “다른 식구는 다 데리고 갑니다. 가서 고생 할건데 길음이는 너무 어려서 말이죠..”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류원진도 이게 무슨 경우냐고 따졌다.
그런데도 연길음의 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이리저리 주섬주섬 변명하다가 나중에야 실토를 하였는데 마작으로 빚진 돈을 갚기 위해 허난성에 있는 빚쟁이의 공장으로 끌려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내가 선교사인줄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하는 연길음의 아버지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에게 동정을 구하였다. 거절을 할 수도 있었으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온 아름다웠던 중국의 별빛같은 연길음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 그만 부탁을 받아들이고야 말았다. “우리가 지금 뭐 돈 벌라고 여기 있는 거 아니잖아요. 아이가 있으면 아무래도 선교 활동에불편하지 않을까요?. 저 아버지란 작자는 너무 하는군 자신의 딸을 버리고 저렇게 도망치다니..” 연길음의 아버지가 달아나듯 연길음을 놔두고 사무실을 나간 뒤 류원진이 걱정스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성경의 요한 계시록에도 ‘일곱 별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고 나와있죠” 나는 연길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연길음은 작은 손가방 같은 것을 두손에 꼭 쥐고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나와 류원진을 번갈아 쳐다 보았다. “예?” 무슨 뜬금 없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류원진은 나를 바라보았다. “일곱 별을 가진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지…” “아니 지금 자꾸 무슨 말씀하세요?” “연길음의 눈에서 일곱별을 보았어..방금” 그랬다. 나는 아주 짧은 순간이였지만 어린 연길음의 눈에서 작은 예수를 바라보았다.
약하지만 결국에는 부활할 그 강한 별빛들을 바라보았다.
이것이 내가 연길음을 한 식구로 받아들인 이유의 전부였다.
연길음은 참으로 영특한 아이였다. 류원진은 우리가 하는 성경번역작업과 가정교회사역을 연길음이 어려서 함부로 이야기 하지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하였지만 연길음은 어른인 나와 류원진이 놀랄 정도 태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생활 해 나갔다. 오히려 연길음이 우리의 선교사역에 온갖 유용한 도움을 주었다.
특히 집에서 몰래 예배를 드릴 때 음식과 다과준비는 물론, 예배를 위한 온갖 청소,정리를 혼자 도맡아 해주었다. 어린 소녀가 요리를 얼마나 잘하는지 특히 정육점을 차려도 좋을 만큼 고기를 잘 다루어서 일품 고기 요리를 잘 만들어 냈다.
머리도 똑똑해 우리가 작업한 성경 번역 작업 때 생긴 중국어의 오자와 탈자들을 빠짐없이 지적 해내어 주었는데 나와 류원진은 다만 혀를 내두를 뿐이였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만들어 주겠다고 했죠?” 연길음과 같이 지내게 된지 8개월이 지났을 무렵, 하늘의 별을 보며 상념에 잠겨있는 나에게 조용히 다가와 연길음은 그렇게 물었다. 나는 조용히 연길음을 바라보았다. 연길음의 눈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화가 흘러 넘쳤다.
샬롬.
내 입에서 무심켤에 샬롬이란 말이 튀어 나왔다. 연길음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물었다. 나는 이스라엘의 민족의 인사말로 평화라는 뜻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밤이였지만 연길음의 영혼에서 발하는 아름다운 빛이 환하게 주위를 비추고 있었다. 나는 어린소녀의 영혼의 갈급함이 느껴져 성경이야기를 밤이 새는 줄 모르고 들려주었다. 그 후 한달 뒤, 연길음은 침례를 받았다.
‘나도 선생님처럼 샬롬을 전하는 사람이 될거예요.’
침례를 받은 소감을 말해보라니 연길음은 그렇게 대답했다.
상근씨는 인터넷에 접속해 자신이 사는 거주지 주위의 모든 학교들를 알아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다닐만한 상근씨가 살고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학교를 이리저리 찾아보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모조리 먼거리(비행기를 타고 가야 할 정도의 거리)에 있는 학교들만 눈에 들어왔다.
사명감에 불타는 종교인이 아닌 다음에야 이런 중국 변두리지역에 뭐 큰 돈 버는 일도 아닌데 누가 학교를 세우겠냐는 생각이 상근씨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거 큰 일인걸.’
상근씨는 연구실 업무를 재빠르게 마무리 한뒤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아내도 뾰족한 방법이 없어 보이는 얼굴로 상근씨를 맞이했다.
“중국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로 보내면 안될까요?”
“아이들이 잘 적응할까?”
“요즘에는 한국에서 중국으로 유학도 보내는데 이번 기회에 아이들 중국조기유학하는 셈치고 중국학교에 함 보내보죠.”
상근씨는 아내의 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에 아들과 딸을 불러 앞에 앉혀놓고 중국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로 이번기회에 전학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아들놈은 입에 거품을 물고 반항해대기 시작했다. 마치 반항할 기회를 노리고 이번이 그 때라는 생각인것 같다고 상근씨는 생각했다.
“저는 죽어도 떼쟁이들이 다니는 학교에는 다니지 않을거예요.”
비장한 아들의 목소리에 상근씨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보았다.
“그럼? 학교에 안 다닐 셈이냐?”
“한국으로 보내주세요.”
“뭐?”
“한국으로 가고 싶어요. 한국으로 보내주세요.”
“가족이 다 여기 있는데 너 혼자 한국으로 어떻게 가겠다는 거냐?”
“이모집에 가면 되잖아요.”
상근씨는 입을 다물었다. 괜히 같이 언성을 높여봤자, 더더욱 아들은 고집을 피울것이 뻔했기때문이였다. 이제 일년만 중국에서 버티면 한국본사에 가서 승승장구 진급할 일이 눈에 선한데 어떻게 해서든지 아이들을 잘 구슬려야 겠다고 상근씨는 생각했다. 몇 개월전에 아내도 한국에 가고 싶다는 말을 했었지만 상근씨는 가족은 언제나 함께 있어야 한다는 주의였고 혼자서 해외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기에 아내의 의견을 일축했었다. 물론 사리분별이 있는 어른인 아내는 상근씨의 의견에 동의를 하게 되었지만 철없는 아들놈에게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일인것 같았다.
“당신, 정말로 중국에서 혼자 못 지내겠어요?”
아이들을 일단 구슬려 방에 재우고 난뒤 침실로 들어온 상근씨의 아내는 상근씨를 째려보았다.
“이것봐. 혼자 있으면 회사내의 조그만 쪽방에서 하숙집생활을 해야 한다구. 가족이 다 있을거라니까 이런 집을 회사에서 내준거라고.”
“도대체 당신은 당신 생각밖에 할 줄 모르는 군요.”
“그게 무슨 소리야? 이게 다 우리 가족의 장래를 위한 일인데..”
“장래가 되기전에 현재부터 먼저 위해줘야 되는것 아닌가요.”
“우리가족의 현재가 어때서..”
“당장 아이들이 학교를 못 다니잖아요.”
아내는 신경질적으로 상근씨에게 쏘아댔다. 아내의 말에 상근씨는 맞받아칠 적당한 말이 생각나질 않아 침대속에 몸을 넣으면서 짜증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내일 인터넷으로 아이들 학교를 더 찾아보자고..”
상근씨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상근씨는 아이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중국인들이 다니는 근처 학교에 넣으리라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냥 모르면 좋은 소식을 전해드려야 겠네요..” 연길음을 찾아달라는 나의 요청을 받아들인지 2주뒤 위 록진은 상하이의 한 호텔로 허겁지겁 달려온 나에게 이 첫마디를 하였다. “모르면 좋은 소식이라뇨?” 위 록진은 테이블위에 놓인 찻잔을 손으로 천천히 돌릴 뿐 나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도 대답하지 않는 위 록진을 그냥 바라만 보았다. “김 선생! 내가 연 길음을 수소문한다고 얼마나 고생 한 줄 아시오?” 나와 위 록진 사이에 만들어진 침묵의 벽 두께는 호텔 로비의 스피커에서 들리는 중국음악의 장중한 반주 만큼이나 두렵도록 두꺼웠다. 소식의 내용보다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고 싶은지 위 록진은 나를 비스듬하게 바라보며 찻잔을 들어올렸다.
나는 3년 전에 선교활동이 발각되어 중국정부의 추방명령을 받고 중국을 떠나있다가 나의 친척이자 재벌회사사장인 고종형의 도움으로 사면을 받아 한중 합작 식료품 가공 공장 준공식을 참석하기 위해 중국에 들어와 있었다.
내가 중국에 들어와서 머리 속에 떠오른 단 한 사람은 연길음이였다.
당시 함께 명성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류원진은 공안당국이 우리가 가정예배를 드리는 도중 들이닥쳤을때 현장에서 나와 같이 붙잡혔었다. 대한민국국적인 나와 중국국적인 류원진은 따로 연행되었는데 후에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류원진은 공안 요원의 취조때 고문으로 그만 사망을 하였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연 길음도 그때 같이 체포되었는데 어디로 끌려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국인인 나도 몸이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결국 한중 외교간의 중요한 사건에 맞물리는 정말 기적적인 사건이 터져 나를 계속 잡아두면 외교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판단이 생겨서 그랬는지 3개월만에 나를 추방명령과 함께 서울행 비행기에 태웠었다. “김 선생 다리가 어디 편찮으시오?”
호텔에서 나와서 차를 타는 나의 걸음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연길음이 있다는 허난성의 여자교도소를 향하는 자동차 안에서 차창 밖을 아무말 없이 바라보는 나에게 위 록진은 물었다. 나는 공안당국에 의해 조각조각 박살나서 나중에 수술로 붙인 내 다리에 대해서 아무 대답도 하기 싫었다. 오로지 연길음에 대한 생각만이 머리속에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였다. 대답없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듯 위 록진은 혀를 차면서 이렇게 말했다. “김 선생의 다리를 보니 어린나이의 소녀인 연길음에게는 한 짓은 정말 안봐도 알 것 같소. 참 고집도 세지. 그냥 예수를 부정하고 성경책 한 권 시키는 데로 불에 태웠으면 만사가 풀렸을텐데…그만 악질인 공안요원에게 걸렸소. 부드럽게 타일러도 안되고, 으름장 놓아도 안되고, 밥도 안 먹이고 때려도 안되니, 고문했던 그 공안요원은 완전히 돌아버렸던 것 같소. 공안당국은 연길음을 1월 중국에서 가장 추운 날에 흉악범만 감금되어 있는 만주남자교도소로 이송 시켜 버렸소. 참…할 말이 없군요…여자를 못 본지 10년 이상 되는 남자 흉악범이 우글거리는 감방 안에 그 추운 날 어린소녀를 옷을 홀딱 벗겨 집어 넣었으니…상상해 보시오…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우웨엑!!!!!!!!”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자리에서 차를 멈추라고 손짓을 하고 차를 세우자 마자 길가로 나가 토악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뱃속을 비롯한 몸 안의 있는 모든 것들이 폭포수처럼 솟구쳐 올랐다.
상근씨는 다음날 회사에서 일찍 퇴근해 학교를 직접 알아보기로 하고 인터넷에서 조사해둔 회사 주위의 학교의 주소를 주섬주섬 주머니에 챙겨서 자전거의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회사동료에게는 감기때문이라고 앞에서 직접 기침을 하는 연기도 보여줬다.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는 시간을 다투는 급한 일이였기 때문이였다. 일손이 부족하여서 한국본사에 인력충당을 해달라고 매일 요청하는 상황이라 부득이 상근씨는 내키지 않았지만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회사에서 나와 먼지나는 길에 접어 들자 희한하게도 기침이 멈추지 않고 나왔다. 상근씨가 아까 동료앞에서 한 연기도 진짜 기침이였나 헷갈릴정도로 실감나게 기침이 끊임없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황사때문에 한국있을때 걸렸던 알레르기가 아닐까 생각되자 상근씨는 자신이 서 있는 공간이 중국이 아니라 한국인가 착각이 되었다. 시작된 기침은 멈추지 않고 계속 나오자 상근씨는 자전거를 길에 세웠다.
콜록콜록.
기침이 점점 심해지자 상근씨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주위를 들러보았다. 혹시 상점이 있으면 일회용휴지라고 샀으면 하는 마음때문이였는데 시끌벅적한 중국인들과 소음속에 가려져 눈에 띄는 상점이 없었다.
콜록콜록
상근씨는 주머니에 있는 종이를 급하게 꺼내 입에 대고 길 한 복판에 서서 계속 콜록댔다. 몸속에 있는 기관들이 모조리 입밖으로 튀어 나올듯한 기분이 업습함을 상근씨는 느꼈다. 길 한복판이라 상근씨는 입에 대었던 종이를 다른 중국인들처럼 길 바닥에 던져버리고 쓰러진 자전거를 일으켜 세워 가지고는 길 모퉁이쪽으로 걸어갔다.
걸음을 몇 발자국을 떼자 기침이 약간 진정됨을 느낀 상근씨는 계속 걸어다녀보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고 바라보는 거리와 걸으면서 바라보는 거리는 약간의 높이 차이밖에 없지만 보이는 광경은 아주 딴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가에는 걸어가면서 보는 모든 중국인들은 어쩐지 평화스러워 보였다. 길바닥에서 싸움을 잘하는 중국들이 어김없이 눈에 띄였는데 싸우는 중국인의 모습도 평화스럽게 보일 정도였다. 고함지르는 사람들의 바로 옆에 서서 열심히 구경하는 수많은 중국인의 무표정한 얼굴도 평화의 사도처럼 보였다.
끼이익…
순간, 차 한대가 상근씨의 바로앞에서 날카로운 브레이크 쇳소리를 내며 급정거를 했다. 길거리를 구경하던 상근씨는 하마트면 치일뻔 했기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동차를 바라보았다. 자동차가 미처 서기도 전에 찻문이 열리면서 남자하나가 급하게 튀어나왔다. 그러고는 길 바닥에 토악질을 하는데 상근씨보다 더 놀란 사람같아 보였다.
우웨엑
끊임없이 토악질을 해대던 남자는 급기야 길바닥에 무릎을 꿇고야 말았다. 자신이 차에 치일뻔한 것을 항의하려던 상근씨는 남자의 상태가 보통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 다가가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남자를 도와주어야 하나 생각이 체 끝나기도 전에 차안에서 또 다른 한 사람이 나와 토악질을 하는 남자를 그냥 부축해 세웠다. 중국에서는 한국처럼 토를 하는 사람의 등을 도닥거려주는 풍습이 없는 모양이구나라는 생각이 상근씨의 머리에 떠올랐다. 어느새 구경좋아하는 중국인들이 하나 둘씩 모이자 상근씨는 가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머리 속이 멍해졌다. 거의 20여분간을 길에서 토악질을 해대는데 나중에 위 록진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나는 아마 몇 시간을 토악질을 해 댔을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난 뒤 나는 연 길음이 있는 곳을 가기 위해 차에 다시 올라탔다 . 위 록진은 무슨 말을 하려했지만 나의 화난 모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만약 내가 그 아이에게 예수님을 소개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텐데….’ ‘아냐. 애당초 내가 선교사가 아니였다면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거야.’ ‘아냐. 만약 그 아이가 우리한테 오질 않았다면..’ ‘그 아이의 아버지가 마작을 하지 않았다면..’ 여러가지 생각들이 폭풍우처럼 내 머리 속에서 휘몰아 쳤다.
폭풍우가 그대로 온 세상을 다 날려버렸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누나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걷기시작한 성직자의 길이 이렇게 될 줄 나는 꿈에조차 상상을 하지 못했다.
거의 반 다리병신으로 한국으로 들어갔을때 나를 파견했던 선교회에서는 벌어진 상황에 대한 송구스러움을 금치못한다는 말만 되풀이 하였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대답했다. 허지만 집에서는 집안으로 들어서자 마자 다짜고짜 나를 붙잡고 어머니는 오열을 하였다.
내귀가 멍한 건지 아니면 애당초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남이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로 영글지 않은 탓인지 영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듣는 팝송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중에 어머니를 진정시키고 아버지에게 나는 당당한 목소리로 나는 선교회에서와 마찬가지로 괜찮다고 거듭 강조하였지만 멀쩡한 자식이 집을 나갔다 상해서 돌아온 걸 달가워할 아버지가 아니였다.
몇달동안을 집안에서만 뒹굴면서 나는 이 말을 되풀이 하였다. ‘만나야 한다.’ ‘만나야 한다.’ 연 길음을 만나야 할 이유가 분명하게 떠오르지 않았지만 나는 계속 똑 같은 말만 몇달 동안 중얼거렸다. ‘만나야 한다.’
너무나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했는지 연 길음은 꿈에도 나타났다.
꿈에서 연길음은 빗물인지 물에 흠뻑 젖은 옷을 입고 나를 원망하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나는 너무나 미안하고 가슴이 아파 그녀에게 다가갔는데 자세히 보니 연길음의 눈에서 흐른 눈물이 그녀의 온몸을 적시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어떤 위로의 말도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그냥 무릎을 꿇고 목놓아 절규하였다. 그렇게 잠에서 깨고 나면 나를 덮고 있던 이불은 어김없이 내가 흘린 땀으로 푹 젖어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잠을 잘때 집안이 떠나갈정도로 비명도 지른다고 하시면서 걱정스러운 나머지 울먹이기까지 하셨다. 나의 몸은 점점 허약해지면서 환청까지 들렸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바라보다가 울컥하셨는지 나를 파송한 선교회 사무실에 찾아가서 난동을 부리기까지 하셨다.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나도 따지듯이 기도하기도 하기도 해보았다. 그러나 온 세상에서 시끄럽게 울부짖는 것은 나와 우리가족밖에 없고 그 외에 모든 것들은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침묵.
누나에 대한 미안한 마음때문에 회개하는 마음으로 걷게된 이 길이 이렇게 험난한 길인지 미처 알 지 못한 내가 한심하단 마음도 들었다. 모든 것이 단절된 것 같고 하나님조차도 나에게서 등을 돌린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하루는 문득 이런 생각이 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혹시 내가 악마의 꾐에 빠진 것은 아닐까?’
이 생각이 나자 내 등골로 커다란 뱀이 스윽 지나가는 느낌이 왔다. 비릿한 냄새를 풍기면서 차가운 생선비늘껍질같은 느낌이 생생하게 감각의 끝을 하나하나 건드렸다. 세상에서 태어나서 한번도 이렇게 징그럽고 소름이 끼치는 느낌을 받아본적이 있을까? 아버지는 내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쇠약해지는 것을 더이상 참을 수 없으신지 나를 데리고 정신병원에 가려고까지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하루는 밤에 하늘을 바라보다가 평상시에는 볼 수 없었던 별들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 저 별을 따라가야 한다.’
이 말이 머리에 떠오르기 무섭게 없어졌던 식욕이 되살아 나고 기운이 솟구쳤다.
상근씨는 학교 주소가 적인 종이가 바로 자신이 기침나서 입 닦는다고 버린 종이라는 것을 한참 길을 헤매고 난 뒤 깨달았다.
“젠장. 인터넷에 몇시간을 투자해서 간신히 찾은 학교주소인데..”
상근씨는 낭패감과 솟구치는 신경질때문에 끌고가던 자전거를 바닥에 세게 내동댕이쳤다. 차분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상근씨의 평소답지 않는 행동에 땅이 놀란듯 내동댕이쳐진 자전거는 고무바퀴의 탄력으로 다시 상근씨를 향해 튕기더니 촛대뼈라 불리는 상근씨의 다리경골부분을 세게 쳐버렸다. 몸의 중심을 잃어 엉덩방아를 찧었는데 엉덩이부분보다 촛대뼈가 너무 아팠다.
“아이구 아야.”
상근씨는 번개를 맞은 듯한 고통이 번쩍하면서 지나가자 비명을 질렀다. 극심한 통증이 다리에서 온 몸으로 퍼지자 눈에 눈물이 찔끔 나올정도였다. 한국에서 군대복무때 맞아보고 평생을 군대라면 치를 떨었던 똑같은 부위를 중국의 거리 한 복판에서 맞아보니 상근씨의 입에서는 중국을 욕하는 욕지기가 흘러나왔다.
“내가 이 놈의 중국은 왜 왔는지 몰라. 제기럴.”
길을 걸어가던 중국인 몇몇이 상근씨의 한국말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뭔가 무척 화가 난 것같은 상근씨의 모습을 보더니 뭔가 구경거리가 될까 싶은지 걸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상근씨를 바라보았다.
상근씨도 씩씩거리며 아픈 다리를 부비면서 그들을 노려보았다. 서로 쳐다보면서 몇 분이 지나자 순식간에 인간복제현상이 발생한듯 땅바닥에 앉아있는 상근씨를 바라보는 중국인들의 숫자가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다른쪽 사람 수가 많아지니 기싸움에서 밀린 상근씨는영 폼이 망신스러웠지만 중국인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엉덩이로 뒷걸음을 쳤다.
“고깃값 떼어먹은 자다!”
상근씨는 물론이고 난데없는 귀청을 찢는 고함소리에 상근씨를 에워쌌던 중국인들이 소리가 터져나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동시에 돌렸다.
“어? 저놈은?”
상근씨는 몇일전 고기를 주문만하고 구입은 하지 않았는데 고깃값을 내라고 생떼를 쓰던 중국인청년이 다시 나타나 자기 앞에서 소리를 지르자 시간의 뒤로 흐르는 것같은 착각이 들었다. 청룡열차를 탄 듯한 멀미가 날 정도로 급격하게 시간이 뒤로 가자 상근씨는 손을 입으로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고깃값이라니.”
어느샌가 중국공안으로 보이는 사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무대에 등장하는 주요배우처럼 스윽 나타났다.
상근씨의 중국어 실력은 평범한 회화정도만 하는 수준이라 중국청년과 공안이 자기 앞에서 무슨말을 하는지 다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말하는 사이에 상근씨를 바라보는 공안의 표정으로 봐서 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청년의 장황한 설명을 듣고 나서는 중국공안 사나이는 상근씨에게 중국어로 왜 길거리에 앉아있냐고 물었다. 그냥 자전거에서 떨어져 다리를 조금 다쳐서 앉아있다고 거짓말을 하자 중국공안은 조용히 상근씨에게 다가오더니 부축을 시켜주면서 상근씨를 일으켜 세웠다. 중국공안은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걸을 수 있겠냐고 물어왔다. 상근씨가 고개를 끄덕이자 잡은 상근씨의 오른팔을 놓아주더니 손가락으로 자기를 따라오라는 시늉을 하였다. 상근씨는 따라가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사람들의 숲을 헤치고 가로 질러서는 앞장서 가는 공안을 따라나서기 시작했다. 상근씨는 쓰러진 자전거를 일으켜세우고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공안을 따라갔다.
나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차에서 내려 허난성 여자교도소정문앞에 도착하였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모든 시간이 압축되어 사라진것 같은 착각이 들어 어리둥절해졌다. 위록진을 따라 이름도 알 수 없는 한 여자 교도소 면회실에서 안에 들어와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면회시간은 5분이요.”
무표정한 교도관의 목소리가 온 면회실을 울렸다. 면회실 중앙에는 탁자와 의자 2개만이 놓여져 있고 한쪽 구석에는 면회기록을 하는 교도관이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열심히 타자기를 자판을 두들기며 앉아있었다. 시간은 오후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면회실에는 나의 상상과는 다르게 창문이 하나 있었는데 저녁 때가 되기 전이라 노을이 점점 저 지평선에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지금 하늘에 별이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별을 본다면 연길음의 눈동자가 생각 날거고 눈동자가 생각나면 그 속의 일곱별이 다시 생각날거고 일곱별이 생각나면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가 생각 날 것이기 때문 이였다. 아, 이것이였나? 갑자기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다.
‘너무합니다. 예수님. 이게 뭡니까? 예수님 저는 시키는 대로만 했습니다. 시키는 대로 당신을 그 아이에게 소개했습니다. 그런데…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까?’
나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말할수 없는 말들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나는 그냥 눈을 감았다.
상근씨는 공안이 시키는 데로 순순히 중국공안부실로 따라 들어갔다. 조용한 사무실안에 들어와서도 중국청년은 큰 소리로 악을 써댔다. 대략 뭐 고깃값 내놔라. 이 한국놈아라는 말을 중국어로 고함쳤는데 듣다못한 공안 몇명이 나타나 중국청년의 머리를 곤봉같이 생긴것으로 세게 내리쳤다.
퍽!
중국청년이 한 방에 쓰러지는 것을 바라보던 상근씨는 그제서야 오금이 저려왔다. 소문으로만 듣던 공안부실을 들어와 보니 공기도 압사될 정도로 무거웠다. 이거 뭔가 단단히 잘못 되어 간다고 생각하니 얼른 회사로 연락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상에 앉아서 타자를 치고 있는 한 공안에게 다가갔다.
“저 실례합니다.”
“……”
상근씨의 중국어가 영 시원찮아서 그런지 공안은 타자를 치다말고 아무말없이 상근씨를 물끄러미 올려다 보았다.
“저. 전화를 좀 사용하면 안 될까요? 집에서 걱정할 것 같아서요.”
공안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저기 조용히 가서 앉아있으라는 손짓을 상근씨에게 보냈다. 더 이상 말은 하지 못하고 상근씨는 공안이 가리키는 쿠숀이 전혀없는 철제의자에 가서 앉았다. 중국청년은 어느틈엔가 자취를 감추고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두 세시간이 세 네시간처럼 흘러갔다. 상근씨의 입은 바짝 말랐다. 공안들은 마치 상근씨의 존재를 잊은 듯 각자하는 일을 하고만 있었다. 불안한 공기가 점점 상근씨의 목을 옥죄었다.
‘뭐가 단단히 잘못된 것 같아.
초초한 마음이 점점 커져 상근씨는 입고 있는 와이셔츠 남방의 단추하나를 풀었다. 도대체 고기를 주문하고 사지 않은 것이 중국에서는 그렇게 큰 죄인가 상근씨는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그냥 돈을 지불하고 공안부실에서 한시바삐 벗어나야 겠다는 생각에 상근씨는 벌떡 일어나 몇 시간전에 말을 걸었던 공안에게 다가갔다.
“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
뭐 그리 타자를 쳐야할 서류가 많은지 공안은 상근씨를 바라보지도 않고 타자만 두들기고 있었다.
“저는 한국지사의 연구원인데 아까 중국청년분과 오해가 있었습니다. 제가 사과하고 원하시는 돈을 지불할테니 중국청년을 다시 여기 데리고 오실 수 있으십니까?”
“….”
역시 공안은 아무말도 없이 타자만 쳤다. 완전히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공안에게 상근씨는 용기를 내어 더 큰소리로 공안에게 다시 중국청년을 불러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공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에 차고 있는 몽둥이를 꺼내 겨누면서 상근씨를 노려보았다
“조용하라고 그랬지.”
상근씨는 얼이 빠진 얼굴로 몽둥이를 들고 있는 공안을 바라보았다.
“아니 …이것보세요. 나는 한국국적의 외국인입니다. 제가 여기 온것은 뭔가 오해가..헉”
상근씨의 눈앞에 갑자기 번쩍하면서 불꽃이 튀었다.
상근씨는 정신을 그대로 잃었다.
“김 선생님!” 침묵이 연길음이 나를 부르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내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들의 동작을 멈추게 만들었다. 나는 숨을 죽였다. “김 선생님!” “헉….” 어느틈인가 다가온 연길음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나는 조용히 눈을 떴는데 연길음의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의자에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다. 내 앞에 선 연길음은 나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고 있지만 이미 그 모습은 예전의 연길음의 모습이 아니였다. 최소한 30대 아니 40대의 늙은 아줌마의 모습이였다. 머리에는 머리모양을 알수 없도록 회색빛 손수건이 씌워져 있었다. 눈썹은 누가 깎았는지 온데 간데 없었다. 코는 예전에 오똑했던 모습을 상실하고 평평한 지면에 마치 구멍을 두 개 내 놓은 듯한 흉한 모습이였다. 입술은 어디 맞아서 부었는지 흑인의 입술처럼 부자연스럽게 커보였다. 깡마른 체구. 구부정한 자세, 휘어진 다리……나의 눈에서 갑자기 폭포수처럼 눈물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어허허허헉’ 내 입술 밖으로는 아무 말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울음소리도 입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내 속에서만 머물 뿐이였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나만 아니 였다면..’
탁탁탁.. 면회실에는 오로지 타자소리만이 외롭게 메아리쳤다.
저벅저벅.. 연 길음의 발자국 소리가 조용조용하게 들렸다.
저벅저벅. 잠시후 연 길음의 발 걸음이 내가 고개를 떨구고 망연자실해 앉아 있는 자리 바로 앞에서 멈춰섰다.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나에게 연길임이 가까이 다가와서는 내 어꺠에 손을 얹었다. 손 끝에 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진동과 전율들이 팽팽한 신경을 통해 나에게 생생히 전달 되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나는 눈을 감고 계속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순간! 연 길음은 내 어깨를 안으며 지켜보고 있는 교도관이 볼 수 없는 각도로 머리를 숙여 자신의 입을 내 귀에 대고 이렇게 조용히 말했다. “샬롬!”
상근씨는 정신을 차린 것은 어느 이름모를 병원에서 였다. 머리를 다친 듯 상근씨는 병원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자 두개골에서 폭팔음이 울려 퍼져왔다.
“여보 괜찮아요?”
“여..여기가 어디야?”
“어디긴요. 병원이죠”
“어..떻게 된거지?”
“어떻게 되긴요. 흑흑”
상근씨의 아내는 두 손을 상근씨의 두뺨에 대고 이내 울것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 돌아 다니다가 공안한테 그렇게 맞았수?”
상근씨는 약간 골치가 아팠지만 자신이 정신을 잃기 전의 모든 일을 아내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상근씨의 아내는 얼굴이 붉어지도록 화를 냈다. 이 일은 보통일이 아니고 한국대사관에 알려서 외교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며 어디 한국 언론에서 자주 우리가 듣는 한국 국회의원같은 말을 해댔다. 상근씨는 아내에게 쓸데없는 소리말고 잠자코 있으라고 핀잔을 주고 다시 침대에 누워버렸다. 몇 시간 자고 나서 상근씨는 연구소에 전화로 자초지종을 알리고( 사고당일날 아이들 학교를 알아보러 나간 일을 쏙 빼고) 몇일 쉬게 해달라는 휴가서를 제출했다.
“잘 됐지뭐. 이번 기회에 아이들과 쉬면서 학교나 알아보자고…”
상근씨는 아내를 보면서 씨익 웃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알고 나를 병원에 데리고 오게 된거야?”
“어느 중국여자가 전화를 해서 알고 왔죠. 자신의 이름이 연길음이라던데..아세요?”
“연길음?”
“자기 남편이 정육점을 한다나.”
“정육점?”
“왜 당신이 그 놈의 고기를 주문했던 그 정육점말예요.”
상근씨의 머리에는 샬롬정육점이라는 단어가 빠르게 지나갔다.
“자기집 종업원도 공안한테 심하게 얻어터졌는데….”
“그래서 부랴부랴 남편이 공안부실로 달려왔는가 봐요. 그런데 그 정육점 주인이 워낙 동네유지인데다가 공안부에 고기를 공급하는 안면도 있어 자기 종업원은 무사히 빼돌릴수가 있었죠.”
“그런데 나는 어떻게 그 무시무시한 중국공안부실에서 나올 수가 있었지?”
“다들 그걸 궁금하게 생각하는데…처음에는 담담 하다가 당신이 한국사람이라는 걸 알고 부터는 정육점 주인의 부인이 그렇게 간곡하게 부탁해서 당신을 병원으로 데리고 나올수 있었다고 하데요.”
상근씨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신이 아는 중국여자를 한명 한명씩 곰곰히 생각해 보았지만 연길음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는 마땅히 떠오르는 여자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였다.
“불행중 다행인거죠. 어떻게 됐든 이렇게 무사하니..그 중국여자가 누구인지 나중에 만나봐야겠어요.”
“만나서 뭐할려고?”
“감사하다고 전해야죠. 그 여자는 남편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일거예요.”
상근씨는 아내의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병원침대의 이불속으로 몸을 구겨넣었다.
그냥 오늘은 쉬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귀에서 기차의 기적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내 앞에 줄 서 있는 중국여인이 데리고 있는 그 여자아이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어졌다. 나는 무릎을 굽혀 나를 아이의 키 높이에 맞추고 씨익 멋진 웃음을 지여보였다. “왜 울었어?” 아이는 당돌한 눈빛으로 나에게 물었다. 아이가 내가 연길음을 생각하면서 눈물짓는 것을 본 모양이였다. “어 봤어? 이거 쪽 팔리는데..”
나는 겸연쩍은 듯 머리 뒷통수를 긁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아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이는 계속 물끄러미 나를 지켜보더니 관심 없다는 듯 뒤로 휙 돌아서버렸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말 할 수 없는 놀라운 ‘샬롬’의 강물이 흘러 넘치기 시작했다. 어디 틈에서인가 누나가 그 강물 건너편에서 평화로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서 손짓을 하는 환상이 떠올랐다. 날 보고 수고했다고 그러는 것 같았다. 어릴때부터 옥죄고 있던 죄가 순식간에 비둘기 처럼 저멀리 날아가는 순간이였다. ‘그렇다. 내가 지은 죄를 내 힘으로는 도대체 씻을 수가 없는 것이다. 누나와 연길음에게 지은 모든 죄는 내가 씻는 것이 아니였던 것이다. 오로지 진정한 샬롬만이 나와 세상의 죄악을 씻겨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인것이다. 이제 내가 전해준 연길음의 샬롬이 중국땅의 그 누구인가에게 도움을 줄 것이고 바로 그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어 결국에는 마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수많은 별처럼 그리스도인들의 그 환한 샬롬의 빛이 온 중국땅 그리고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게 될 것이다.’ 바로 그때, 기차역 대합실에 기차의 기적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