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병원에서 처방으로, 혹은 약국에서 일반의약품으로 자주 구매하시게 되는 약이 있죠. 바로 진통제입니다. 보건의로 빅데이터를 통해 조회를 해 보면 평균적으로 처방, 사용되는 약제 중 2위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소염진통제입니다. 그만큼 진통제는 우리가 흔히 복용할 수 있는 약이라는 소리겠죠.
진통제는 많이 사용되는 약제이지만, 소비자와 약사 간의 온도차가 큰 약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이러한 소염진통제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 드릴까 합니다.
소염진통제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타이O놀과 같은 아세트아미노펜 성분과, 그 이외의 소염진통제(NSAIDs)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요. 우리가 흔히 아는 부루O, 탁O, 이지O6 같은 진통제들이 다 소염진통제군에 속하게 됩니다.
소염진통제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염증을 가라 앉히는 작용'이 있는데요. 반면에 아세트아미노펜은 이 소염작용이 없습니다(있어도 아주 미약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소염진통제가 무조건 좋으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성분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소염진통제는 일반적으로 아세트아미노펜보다 위장장애가 있는 편이기 때문에 조금 더 주의할 필요가 있지요.
아무튼 결국 자신의 증상에 잘 맞추어서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하시거나, 소염진통제를 복용하시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환자분들 중에 자신의 증상과 상관없이 타이O놀만 찾으시는 분들이 있지요.
"염증도 좀 있으신 거 같은데 소염효과가 있는 소염진통제를 드시는 게 어떨까요?"
"됐고, 그냥 타이O놀 주세요."
이런 경우가 약국에서 종종 발생하게 됩니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해 드리는 조언에 이런 대답을 받으면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
일반의약품으로 나오는 소염진통제는 각각의 성분에 따라서 허가받는 사항이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허가사항 중 대표적인 효능들을 약의 겉표지(곽)에 기재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러한 디자인적인 부분은 제약회사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표지에 관절통, 근육통, 편두통과 같은 증상을 크게 써놓은 약이 있는 반면, 단순하게 소염진통제라고만 표기하는 제약회사도 있습니다.
특히 연세가 많으신 분들 중에서 곽만 보고 본인이 찾는 약이 아니라고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에이 약사 양반, 나는 관절통에 듣는 약을 달라했는데? 이건 관절통에 듣는 약이 아니네?"
대부분의 경우에는 사정을 설명드리면 이해를 하시지만, 일부 환자분들은 반드시 곽에 본인이 원하는 효과가 기재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약국에서 약을 취급할 때는 과거에 적혀있는 효능 문구도 면밀하게 관찰하여서 취급하게 됩니다.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에 환자분이 들어오십니다. 처방전에는 일반적으로 환자의 기본적인 개인정보와, 약품에 대한 내용이 필수적으로 들어갑니다. 거기에 선택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내용이 있는데 바로 질병 기호입니다. 사실 원활한 조제, 투약을 위해서는 이 질병 기호가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게 좋습니다만, 환자 본인이 원할 경우에는 기재하지 않을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처방전의 경우에는 이 질병 기호가 들어가 있지 않게 되는데요. 이러다보나 가끔은 곤란한 일이 발생하고는 합니다.
초보 약사 때 있었던 일입니다. 군대를 다녀오고 일반 로컬 약국에서 근무약사로 일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주 처방은 같은 건물에서 내려오는 소아과 처방인데, 가끔 멀리서 다른 병원 처방전을 가지고 오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70대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가 저 멀리 있는 정형외과 처방전을 가지고 오셨네요. 약은 소염진통제, 근육이완제, 위장약이 들어간 처방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질병 기호가 표기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약을 조제하고 투약을 하기 위해 할머니를 불렀습니다. 다리를 살짝 저는 게 보이네요. 그래서 속으로 생각했죠 '무릎 관절이 아파서 정형외과에 가셨구나.'
"다리가 아파서 병원에 다녀오셨나요?"
"잉? 무슨 소리여? 허리 아파서 갔는데? 관절 아플 때 먹는 약이 나왔는교?"
사실 다리 아플 때 먹는 소염진통제나, 허리 아플 때 먹는 소염진통제나 비슷한 소염진통제를 사용하게 됩니다. 하지만 소비자의 인식에는 '허리 아플 때 먹는 약이 따로 있고, 관절 아플 때 먹는 약이 따로 있다'인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첫 단추를 저렇게 잘못 끼워버리게 되면 환자분의 신뢰도가 떨어지게 되고, 그것은 이어지는 상담에도 많은 차질을 낫게 됩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질병 기호가 없는 처방전을 가지고 오시면 먼저 여쭤보고 있습니다
"어디가 불편해서 병원에 다녀오셨나요?"
플라세보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실제 약효가 없거나 약해도 약이 잘 듣는다고 느끼는 경우를 말하는데요. 이 진통제 영역에서의 플라세보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본인이 여러 약을 드셔 보시고 본인에게 가장 잘 맞다고 느껴지는 약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약국에서 듣게 되는 약사의 조언에도 귀를 기울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약사들의 가장 큰 보람은 환자에게 더 맞는 약을 추천해 주어서 환자로부터 신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신뢰받는 약사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