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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파약사 Feb 02. 2021

당신이 아픈 이유, 함께 고민합니다

환자의 아픔을 이해하기

아동병원 밑에서 근무 약사로 일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근무를 하고 제가 퇴근하고 나면 약국장님은 남아서 오후 9시까지 약국을 운영하다가 문을 닫곤 했습니다. 어쩌다 약국장님이 마감을 못 하시게 될 경우 한 번씩 제가 연장근무를 통해 마감하곤 했었죠. 


그런 9시 마감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보통 오후 8시 30분이 지나면 야간진료환자나 일반 약을 구매하러 오시는 환자분들도 많이 없기 때문에 천천히 마감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감 준비를 하는 중 약국의 문이 열리고 초췌하고 거무튀튀한 얼굴의 어르신이 약국으로 들어왔습니다. 느낌만 딱 봐도 단순하게 감기약이나 상비약을 사러 오신 분 같지는 않아 보이더라고요. 긴장된 표정으로 머뭇머뭇 투약대 앞에서 계시던 그분은 어렵게 입을 여셨습니다.



환자 : 저...


약사 : 네 말씀하세요. 뭐 필요한 거 있으신가요?


환자 : 다른 게 아니고.... 제가 심장이 한 번씩 아픈데 무엇 좀 도움이 될만한 영양제 같은 게 없을까 해서 왔어요.



심장! 그 말을 듣자마자 가슴이 벌렁벌렁 불안해 지면서 온갖 생각이 다 들더군요. 감기, 두통, 소화불량도 아니고 심장이라니? 이런 분한테 영양제를 드려도 되나? 뭐를 주지? 문제가 되지 않을까?



약사 : 아 심장이 불편하시구나. 병원에 진료는 받아 보셨나요?


환자 : 네 병원에서는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약사 : 아, 그러시면 병원 가셔서 정밀진단을 한번 받아보셔야 해요. 심장은 제가 함부로 무언가를 드리기는 힘들 거 같네요.


환자 : ....그런가요...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어르신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그 당시에는 안도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어쭙잖은 지식으로 영양제를 줬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그 책임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죠. 다음날 약국장님께 전날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더니 약국장님은 저를 타이르시며,



'약사님 그 환자는 얼마나 불편하고 절박했으면 그 시간에 약국까지 왔겠어요? 그런 분께 그냥 병원에 가서 말씀하시라고 말하는 건 약사로서 무책임한 일입니다.'



그때 이후로 약사로서 무책임해지지 않으려고 큰 노력을 했습니다. 영양요법을 공부하고, 한방제제를 공부하고, 생리학책을 다시 펼치며 인체생리학을 훑어보면서 공부를 다시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 만큼 질병의 종류도 다양하기 때문에 이 공부의 끝은 없는 거 같습니다. 다만 심장이 아프다고 제게 오셨던 어르신이 다시 오신다면 여러 가지를 여쭤보고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시적으로 위산이 역류해서 식도의 통증을 심장의 통증이라고 생각하셨을 수 있고요.

근육이 잘 뭉치고 풀리지 않는 게 원인일 수도 있고요.

순환이 일시적으로 저하되면서 그런 증상이 생길 수도 있고요.

미네랄 불균형으로 그럴 수도 있고요.

만성적인 염증으로 인한 통증일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원인은 환자분과의 상담을 통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추적해 나가야겠지만 당장 유추할 수 있는 원인도 여러가지 있구요, 그에 따른 해결책 또하나 제시해 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병원에 가셔서 특정 질병으로 진단을 받으시는 분들은 병원 치료를 우선으로 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병원에서 특별한 병으로 진단을 받지 못했지만, 통증과 불편함을 호소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죠. 또한 병원 약을 오래 드시면서 약으로 인한 부작용이나 불편함을 호소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런 분들의 영양 상담과 케어, 생활습관에 대한 조언 등을 누가할 수 있을까요? 그 중간지점에 약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약분업 이후로 약사의 직능이 조제로 많이 편중된 것은 사실입니다. 견제와 상호 감시를 그 목표로 실시되었던 의약분업이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부분도 어느 정도 사실이고요. 그렇지만 통계에 따르면 국민의 60%는 약사로부터 상담을 받기를 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요구가 있는데도 무조건 병원에 방문하셔서 치료를 받으시라고 권하기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약사의 직무유기겠지요.


지금도 환자분들에게 영양 상담을 해 드릴 때는 심장이 아프던 그 어르신이 생각나곤 합니다. 단순히 제가 약이나 영양제를 하나 더 판매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조언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또 그러한 상담을 통해 많이 괜찮아졌다는 환자를 볼 때마다 '아 나는 약사를 하기를 잘했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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