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밀린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입대하기 전까지 대학병원 약제부에서 근무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일반 약국가 보다 대학병원 약제부는 인기가 덜했습니다. 하지만 젊을 때 가보지 않으면 언제 가보겠냐는 마음도 있었고, 대학원에 진학한 동기가 아르바이트로 근무하게 되었다며 저에게 같이할 것을 권하여 큰 거부감 없이 지원했습니다.
야간 당직 약사는 야간에 약제부 전체가 문제없이 돌아가도록 관리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입원 환자분들이 긴급하게 쓰실 약이 처방 나오면 검수하여 챙겨드리고, 응급실에 급한 약이 있으면 긴급으로 검수해서 전달하는 역할입니다. 그리고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고 퇴원하시는 환자분들의 퇴원약을 챙겨드리기도 하지요. 오늘 드릴 이야기는 이 대학병원 야간 당직 근무 시절 있었던 일입니다.
차콜이라는 약이 있습니다. 활성탄의 일종으로 쉽게는 숯가루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보통 독성물질을 섭취했을 경우 제독제의 개념으로 처방되는 약이랍니다. 야간 당직을 할 때 이 처방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음독 때문입니다. 음독이란 말 그대로 독을 먹었다는 말인데요. 음독으로 응급실에 실려오신 분들은, 짐작하시듯이 대개 스스로 생명의 끈을 놓으려고 한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근무한 대학병원은 도심에 위치하지 않고, 원래는 시골이었던 위성도시에 있었습니다. 그래도 인근에 농사를 지으시는 분이 많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농약으로 음독을 시도하고 응급실에 오시는 분들을 보곤 했습니다.
제가 입사했을 당시의 업무 매뉴얼에는, 차콜 처방이 나오면 산제실로 달려가서 저울을 켜고 50g을 칭량한 다음에 응급실에 전달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투약대에서는 간호사 선생님이 발을 동동 구르고, 독을 제거하는 제독 치료는 시간과의 싸움임을 알기에 저는 빠르게 조제해 드리려고 많은 노력을 했었죠. 그래서 그때 당시 차콜 50g을 바로 정량할 수 있는 정량 컵을 만들었습니다. 약사로서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야간 당직 약사는 2시간의 휴게시간이 있습니다. 잠깐 당직실에 가서 눈을 붙이라고 주어진 시간입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긴급 약 처방이 나오면 어김없이 일어나서 처방전 검수를 해야 했기에, 잠깐 쪽잠을 자거나 휴게실에서 음료 한잔 하고 약제부로 복귀하곤 했습니다. 약제부, 응급실, 휴게실은 다 붙어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휴게실에 갈 때는 항상 응급실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곳에서는 생과 사를 치열한 전투가 24시간 지속되고 있었고, 휴게실에는 환자의 생환을 기다리다 지쳐 쓰러져있는 보호자 분들이 많이 계셨죠.
그날도 차콜이 처방이 나왔던 날이었습니다. 분주해 보이는 응급실을 지나쳐, 휴게실에서 음료를 한잔 마시고 있었는데, 70대 정도로 보이는 인자한 인상의 어르신 한 분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저.... 여기 선생님 이신가요?"
제가 근무하던 병원은 의사, 약사의 가운이 미묘하게 다르게 디자인되어있습니다. 여러 가지 오인과 오해를 예방하기 위함인데요, 그 사실을 환자분들은 모르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받으면 항상 당황하곤 했습니다.
"아, 저는 의사가 아니라 약제부에서 근무하는 약사입니다"
보통은 의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면 발걸음을 돌리시는 분들이 많지만 이분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약사님이셨군요. 잠시 여쭤볼 게 있는데 시간이 괜찮으신가요?"
정중하게 제게 여쭤보시는 말씀이었지만 저는 속으로 긴장을 했습니다. 당시는 햇병아리 약사인지라 지식이 부족하기도 했고, 무언가 내가 상대하기 곤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중하게 시간을 내어달라고 부탁하는 어르신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어르신. 제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은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르신의 사정은 이러했습니다. 그분 에게는 동년배의 아내분이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아내분이 지난해에 갑작스럽게 췌장암 진단을 받고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으셨습니다. 남은 생을 병원에서 보내고 싶지 않다는 아내분의 의지를 좇아, 어르신과 아내분은 퇴원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 뒤로 한 번씩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생기면 응급실에 오고 있지요. 병원에서 6개월이라 했는데, 1년을 넘게 버텼으면 이제 그 사람도 버틸 만큼 버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순간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말문이 막혔습니다. 담담하게 1년간 아내분의 임종을 준비하는 어르신의 마음을 제가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제는 보내줄 준비를 하려고 하는데, 어디 괜찮은 곳을 좀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먹먹한 마음으로 호스피스 병원이란 것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추천 병원에 대해서는 의료진들께 여쭤보시는 게 좋을 거 같다는 말씀을 드린 뒤, 저는 약제부로 복귀했습니다.
순간의 판단으로 스스로의 목숨을 져버리려 하신 분과, 평생의 반려자의 남은 삶을 위해 고민하는 어르신을 같은 날에 보게 된 것은 아직도 제 기억에 새겨져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내 삶은 나만의 것이 아닌,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것임을 깨달은 날이었습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을 살리고, 또 많은 사람이 죽는 곳이 병원입니다. 누군가는 한순간의 실수로 스스로 내 던지는 그 생명이,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삶입니다. 나에게 있어서 삶이 어떤 의미인지, 나의 소중한 사람에게 있어 나의 삶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이 힘든 요즈음입니다. 이런 때 일 수록 나에게 있어서 소중한 사람들을 한번 더 생각하고, 꼭 안아주면 어떨까요? 저도 오늘 저녁에는 저희 와이프와 아들을 꼭 안아주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