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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말 Aug 30. 2019

재수학원의 어느 15세 아이

부모에게 달린 진학, 본인에게 달린 배움

현행 교육제도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었던 사람으로서 내린 결론이다. 부모에게 유전된 지능과 부모의 관심이 진학의 핵심이라는 것이고, 교육은 그저 개개인에게 부여된 적당한 장애물이나 극복물에 불과한 것이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부모에게 기질로 물려받은 것은 분명히 존재하며, 이 기질을 키우고 사용하는 것은 순전히 본인에게 달려있다는 것이지. 아비가 이 같은 결론을 내린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단다.


못난 아비는 아직도 시간을 갚고 있는 중이란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을지도 모르는 나의 20대 초반 시간. 재수학원에 다니던 순간의 일이란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곳에서 부모의 자본과 기회비용을 회수하지 못했단다. 거기엔 기적이 있었어. 1년의 노력으로 앞으로의 인생길이 뒤바뀔 수 있다는 그런 기적을 끊임없이 주입하는 이와, 그 기적을 좇아 자신들을 내던지던 이들도 있었지.


태어난 순간부터 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까지의 모든 교육과정을 단 일 년의 노력으로 역전시킬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강렬한 동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 주변엔 기적은 있었지만 아비는 그 주인공이 되진 못했지. 기적을 만들어낸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단다. 본인에 대한 믿음과 흔들리지 않음. 이 두 개의 무기가 있었지. 정말로 저녁잠을 뺀 시간을 제외하고 그들은 공부에 몰두했었단다. 내가 기적이라면 그런 이들의 옆에 서고 싶을 만큼 말이다.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며 공부하는 형님도 있었고, 쉬는 날과 쉬는 순간 없이 공부하던 친구들도 있었단다. 쉬기 위한 어떠한 변명도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았지. 스스로 흔드는 목적이 제일 위험하다고 느꼈던 순간이란다. 아비는 아마 재수학원에서 그걸 배운 것 같다. 남이 흔드는 목적은 변명이라도 있지만, 본인이 흔드는 목적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음을 말이다.


원래 이루었어야 하는 이들이 잠시 시기를 잘못 만난 거라고 생각도 한단다. 그들은 아마 몰두의 순간을 전에 겪었던지, 아니면 겪고 있는 중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란다. 한 번의 몰두는 엘리베이터와 같단다. 설치하기가 어렵고 힘들 뿐이지, 설치한 후에는 버튼만 누르면 되니까. 그 몰두의 기술은 어쩌면 물려받는 것이 아닌가 싶었단다. 몰두라는 게 너무도 어려웠던 어릴 적의 생각은 그랬단다. 현재도 일부 그러하고.


지금 생각하면 몰두는 매 순간순간 끊임없는 자기와의 싸움이라 생각한단다. 맞붙기는 쉽지만 이기기는 제일 어려운 무적의 상대. 이기기만 하면 누구든 이길 수 있는 시험의 끝. 아마 자기 자신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는구나. 하여, 나는 꼭 다시 한번 네가 몰두를 경험하길 간절히 바란단다. 내가 행동으로 너에게 자연스레 가르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구나.




재수학원에서 배운 것은 또 있단다. 교육은 부모에게 달려있으나 배움은 본인에게 있다는 것. 배움은 어디에 맡긴 예금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굴려야 하는 펀드에 가까운데.. 학원에 가져다 놓으면 배움이 알아서 다운로드되는 줄 알았던 그런 부모들이 있었지. 그러나 그 배움은 다운로드로 끝나는 게 아니고 본인의 손으로 직접 설치해야 하는 것임을 몰랐던 게지. 그 부모도 몰랐고 본인도 몰랐으니 더더욱 안타까운 일이고 말이야.


어느 날인가 학원의 학기 중에 새로운 학생이 들어오게 되었단다. 아비는 상당히 놀랐지. 왜냐고? 재수학원에 중학생이 왔으니까. 더 정확히 말하면 중학생은 아니고, 중학교 2학년 나이의 학생이지. 그 중학생은 일찌기 검정고시를 마친 상태였으니 말이야. 아무튼 빠른 대학 입학을 위해서 수능을 보고자 재수학원에 들어오게 되었던 거란다. 우리는 한 번 더 놀라게 되었는데, 여기는 그 중학생의 첫 재수학원이 아니기 때문이지.


그 중학생은 즉 어린 나이에 이미 이런 상황을 1년 미만의 시간 동안 겪은 것이며, 그 학원에 만족하지 못한 부모는 커리큘럼이 더 가혹하기로 유명한 학원을 찾아서 이곳으로 온 것이었단다. 훗날 나는 타국에서 일을 하다 문득. 진흙을 온몸에 뒤집어쓰고 산악자전거를 타고 놀다, 잠시 목을 축이러 온 아이들의 모습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학원에 갇혔던 그 중학생이 불현듯 떠오른 적이 있었지.


아무튼. 그 중학생은 나보다 수학을 잘하기도 했고, 그 어린 나이에 이런 생활을 하는 것이 대견하기도, 짠하기도 했었지. 그리고 그가 아끼고 있는 시간들이 상당히 부럽기도 했었던 것도 사실이란다. 친구도 없이 형이나 누나들 틈에서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외출도 매우 제한된 이곳에서 지내는 그의 인생은 어떠며, 그를 여기에 맡긴 부모는 어떤 사람일지도 궁금했었단다. 


꺼내기 너무도 싫은 말이지만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어렵사리 덧붙이자면. 그는 만만한 형들에게는 좋지 않은 모습을 보기이기도 했고, 또 몇 개월 후 절도 사건으로 학원을 옮기게 되었단다. 다른 학원에서 1년을 더 보냈다는 말도 들렸지만. 그 뒤의 이야기는 들은 바가 없었단다. 그가 아낀 시간과 절도의 간극은 너무도 멀고, 학원의 교육과 부모의 교육에 대해서 짧게나마 고민했던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덩치가 크지도, 머리가 뛰어나지도 않았던 그저 평범한 그 나이 때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나의 자녀, 혹은 나의 자녀들아. 나는 너에게 어떤 부모가 될까,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까. 고민하는 시간이 많단다. 교육이라는 이름의 용매는 어떠할 것이며, 그 용매가 자리 잡을 거푸집은 어떤 모양이 되어야 하며, 굳은 용매는 사회의 어디서 녹일지 등등이 고민되는구나. 그러나 이 고민들에 앞서 나부터 너에게 좋은 교육이 되고자 한다. 다만 그뿐이다. 교육은 부족할지언정 배움이 부족하지는 않았으면 싶구나. 그건 나의 욕심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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