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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말 Mar 22. 2020

중고차를 고르는 피로한 욕심

믿어야 하는 괴로움

중고차를 접하기 직전의 사람들은 단 한 가지의 불안 요소를 떨쳐내기 어렵다. 과연 이 차를 내가 믿고 살 수 있을까. 더 자세히 표현하자면, 이 차는 과연 언제 고장 날까. 차는, 판매자는 어떤 고장을 숨기고 있을까 하는 점이 가장 클 것이다. 대형 중고차 사이트는 이 불안 요소가 수요로 작용한 결과다. 중고차를 접하기 직전 고민하는 과정들이 삶의 여러 면면과 제법 닮은 구석이 있기에 늦은 밤 키보드 앞에 잠시 시간을 낸다.


큰 틀에서 '차'라는 제품은 출시 자체로 완성도가 높은 물건이다. 특히 세계 각지로 판매되는 차는 더욱 그러하다. 세계의 다양한 기후와 환경적 요소에서 어떤 습관이 있는 소비자가 구매할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출시에 앞서서 거의 모든 부품들이 나름의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과해야 하며, 그 부품들의 종합적인 점수 또한 기준치를 만족해야만 한다. 기본적인 만듦새가 뛰어나지 못하면 구매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 구매자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도태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다. 


중고차가 싫으면 새 차를 사면 된다. 하지만 여건은 그렇지 못하기에 새 차의 기회비용은 중고차의 시장에서 상당한 힘을 발휘한다. 중고차 구매의 가장 큰 적은 사소한 의심이다. 물론 의심은 상대적이다. 그러나 '차'를 고르는 행위에 있어서 지나친 의심은 독이 된다. 그 의심을 버리지 못하면 본인이 선택한 결과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되니, 다른 선택지로 돌아가 의심을 또 반복하게 되는 피곤함을 얻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곤함을 얻느냐 마느냐는 상당 부분 운에 달려있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운의 발생은 정해진 순서가 있는 것도 아니며, 그 등장에 있어서 삶의 궤적에 따라 획득 또는 상실하는 마일리지 같은 것도 아니라 서글픈 것이다. '운이 나빴다' 한 마디로 투박하게 절단 내어 표현하기엔 너무나 많은 것을 손해 봐야 하는 억울함 역시 너무도 싫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것의 손해'가 주는 상처가 쉽사리 낫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너무한 말이지만. 차는 원래 고장이 나는 존재다. 어쩔 수 없다. 차의 관리는 고장을 없애는 행동보다는 고장의 확률을 줄이는 행위에 가깝다. 고장의 확률을 제조사와 소비자가 함께 줄여나가는 이 제품은 고장이 잘 안 난다. 완벽에 발목 잡히면 이도 저도 얻는 것이 없다. 대부분의 차는 고장이 쉽게 잘 안 난다. 아쉽고 너무하지만 거시적으로 보자면 이게 자동차라는 제품의 특성이면서,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것들의 특성이다.


거의 대부분의 물건들, 선택들, 사회 현상, 인간들이 그러하다. 가끔 발생하는 고장들이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고장들을 처리하는 역할에서도 고장이 존재한다. 고장은 잘 나지 않지만 어디에나 고장은 있다. 고장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 혹은 기준이 누군가에겐 고장일지도 모른다. 고장이 잘 나지 않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운이다. 판단, 감정(鑑定), 계측, 예상할 수 없는 그런 불규칙적인 운이다. 




'집지실도'라는 4글자를 길게도 썼다. 사실 의료진의 진찰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마음에 드는 중고차를 살 수 없다. 라는 생각을 써 내려가는 도중에 생각이 바뀌었다. 처음엔 우리 몸도 생각보단 튼튼하고, 의료진도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데 우리는 못, 안 믿는 게 너무도 많은 삶을 살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다. 우리도 일을 하면서 일처리의 신축성, 쉽게 표현해 겐또며 유도리며 관대한 측면이 있는데, 유독 가혹하고 혹독한 잣대만 들이밀며 본인은 그렇지 않은 사람, 제품인양 서슬 퍼런 기준치의 가혹한 칼날을 겨누는 모습이 딱하고 피로해 보였다. 


사회는 나날이 나름 고도화되고 있으며 나쁜 운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훗날 기회가 된다면 또 글을 쓰겠지만. 아쉽게도 궁극적으로 세상의 원동력은 결국 나쁜 운이다. 그걸 줄이고자, 처리하고자 욕심이 생겨나는 것이고 그 욕심을 채우려 세상은 내일도 돌아가는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욕심은 어디서든 나타날 것이고, 그래서 직업은 생겨나고 자본이 직업을 보상하는 것일 뿐. 그리고 운은 예측할 수 없기에 세상이 녹록치 않은 것 같다.


근데 너무 믿으면 보이스피싱 걸리고 그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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