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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rliver Feb 02. 2017

가이드북이 필요 없는 여행지

루앙프라방을 거닐다 1

꽤나 쾌적한 호텔 옆 어딘가에서 새벽부터 부지런한 닭이 울어대는 소리에 귀를 싸매고 누웠다가  늦잠을 잤다. 어제 온종일 이동한 탓도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내일부터는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오늘 새벽잠을 설치게 하던 저 닭들의 울음소리는 내일이면 반가운 알람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하니 홀가분하다.  


부띠끄 호텔이라는 라오스식 중급 호텔은 쾌적하다. 나무로 만들어진 반들반들한 마루를 맨발로 걷는 라오스식 가옥구조는 참 마음에 든다. 쌀쌀한 아침이지만 맨발로 걸어 나가 이층 공간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발아래 마루의 감촉을 느끼며 아침식사를 한다. 따뜻하게 데워진 빵과 라오스 커피가 향기롭다.   

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게 되던 여행이었는데, 오늘은 쾌적한 호텔에서 늦잠 자고 조식도 천천히 먹고 거리에 나선다. 어제는 도착하고 나서 곧 어두워져서 몰랐는데 숙소 바로 앞이 사원이다.


길가의 많고 많은 사원 중 한 군데에 들어가 본다. 법회가 열리는 중인지 신도들이 모여 스님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옆에서는 또 무엇인가를 준비 중이기도 하다. 어린 스님 몇 명만 보았던 므앙응오이의 작은 사원과는 다른 활기찬 풍경이다.   

한쪽에서는 라오스 특유의 주황색 가사를 입은 어린 스님들이 모여 앉아 있다. 어린 스님들의 모습이 이채로워서 가까이 다가간다. 승복만 걸쳤을 뿐, 겉으로 보기에는 천진난만한 스님들의 짧은 머리가 괜히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해기도 하다. 어린 스님들 옆에서 일반인 어른들이 부처님 앞에 꽃을 설치하는 것을 바라보는 있는 모습이 마치 학교에 온 학부모 같은 느낌이라 웃음이 난다. 종교와 일상이 다르지 않은 모습이 라오스의 불교임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루앙프라방에는 60여 개의 사원이 있다고 하더니, 과연 한 집 건너 한 집은 사원인 것 같다. 시장 옆도 레스토랑 근처도 돌아보면 사원이다. 라오스는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세계에 몇 안 되는 국가다. 정식 명칭은 라오 인민 민주공화국(Lao PDR, 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이다. 그 옛날 란쌍("백만 마리 코끼리"라는 의미) 왕국으로 번영하다가 인도차이나 반도의 다른 나라들이 그렇듯 프랑스령이 되고, 베트남 전쟁의 여파로 거의 2차 세계대전 총량에 맞먹는 폭탄이 라오스 동부에 투하되었다고 한다. 그 여파로 아직까지 제거되지 못한 지뢰도 많다. 여행 오기 전 알아본 정보로는 이곳에서 탈북자들을 만났다는 이야기도 들리는 공산주의 국가이다. 1970년대 중반에 공산화된 나라지만 불교는 이 나라 사람들에게 정신적 지주다. 공산주의와 불교라는 단어의 조합이 신기하기만 하다.

이름도 정확히 모르는 사원을 나와 걷다 보니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우체국이 나온다. 옆 가게에서 엽서를 골라 우체국으로 들어가 본다. 여러 장의 엽서를 써서 부치는 여행자들을 바라보자니 그게 바로 내일의 내 모습이다 싶다. 이국의 정취와 여행의 소회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야 비슷한 감정일 것이다. 라오스어 아래 "라포스떼(La Poste)"라는 선명한 프랑스어가 이곳이 근대에 프랑스령이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라오스에서는 가이드북이 별로 소용이 없다. 눈길 머무는 곳으로 발길 가는대로 마음 내키는 곳으로 가면 그만이다. 정처 없이 걸음을 옮기다 보니 도서관이 있다. "루앙프라방 도서관"이라는 예쁜 단어가 써진 현판과, 흰 백묵으로 쓰여 있어 지워지는 중인 "Help the Library"라는 문구가 대조된다. 관광객이 많은 나라라서 인지 산골이든 대도시든 도와달라는 읍소(?)에 마음이 찡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다.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아이 둘이 그림책을 읽고 있고 그 안쪽 교실에서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업이 진행 중이다. 방해가 될까 봐 금방 문을 닫고 돌아 나온다. 공산주의 국가답게 사실적인 벽화가 도서관 안 담장을 채우고 있다. 세련되지 않은 그림이지만 밝은 색채와 그림 속의 사람들 표정이 보는 사람을 미소 짓게 한다. 실제 담장 앞의 나무들과 벽화 속 그림이 구분이 가지 않는다.

라오스의 옛 수도 루앙프라방 왕궁이 내려다보이는 푸시산 언덕에 오른다. 언덕에서 왕궁을 조망한다. 이곳에는 갖가지 옷차림의 여행자들과 좌판을 벌이고 물건을 팔고 있는 라오스 사람들이 꽤 많다. 어린 새를 짚으로 만든 작은 둥지에 넣어 팔고 있기도 하고 꽃이나 장신구, 과일을 파는 사람들이 푸시산을 오르는 계단 근처에 모여 있다. 한참 동안 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다가 계단을 따라 천천히 올라본다.


꽃을 파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어느 나무에 모셔진 작은 불상 앞에는 꽃들이 즐비하다. 아름다운 꽃을 바치는 "헌화"라는 행위는 절대자에게 드리는 인간의  정성이다. 여행하면서 만나는 헌화의 장면들에 늘 숙연해진다. 꽃을 준비하고 바치는 그들의 마음이 순수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여행자들을 위한 거리의 매장들을 힐끗거리며 걷는다. 루앙프라방에서는 주황색 승복을 마주치는 일이 일상다반사라지만, 처음 도착한 낯선 거리에서 스님의 뒷모습에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여행자를 위한 매장이 있는 프랑스식 건물에 라오스 국기가 휘날린다. 앞서 걷는 스님의 발걸음을 한참 바라본다. 일월의 루앙프라방에는 햇살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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