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앙프라방을 거닐다 2
루앙프라방에는 두 개의 강이 흐른다. 인도차이나 반도를 관통하는 유명한 그 강, 메콩강(남 콩)은 루앙프라방을 지난다. 그리고 북동부에는 칸강(남 칸)이 흐르고 있다. 인도차이나반도의 내륙국가인 라오스에 물이 이렇게 풍부한 이유는 풍성한 강들 때문이다. 두 개의 강을 품고 멀리 보이는 산에 둘러싸인 루앙프라방 풍경은 여행자가 보기에도 왕국의 도읍지로 손색이 없다.
강변의 식당에 자리를 잡는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식당은 한산하다. 나무에 매달아 놓은 새장에선 예쁜 새가 울고 가끔 오토바이, 삼륜차들이 바쁘지 않게 지나치는 도로에는 메콩강의 바람이 불어온다. 강바람에 펄럭이는 그림들이 이채롭다. 부처님, 어떤 나무를 형상화한 그림, 메콩강, 코끼리, 그리고 스님들의 뒷모습 그림이 대부분이다.
좁은 골목 안의 스피커에서 시끄러운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앞뒤가 주택이거나 게스트하우스, 호텔, 레스토랑도 있는데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큰 소리지만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다. 라오스 사람들이 각종 잔치를 즐긴다고 듣긴 했는데 들려오는 소음(?)을 따라 영문 모르게 오게 된 곳에는 연회가 한창이다. 레이스로 장식된 둥근 테이블에 다가가 보니 분홍색 천을 고이 씌운 커다란 항아리와 선물용 아기용품들이 즐비하다. 아기는 없지만 테이블의 세팅으로 보아 돌잔치 같은 느낌이다. 초대되지도 않은 남의 잔치에 기웃거리는 것도 재미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의 소란스러움이 파티를 더 흥겹게 한다.
왓씨앙통(Wat Xieng Thong)이라는 사원으로 들어간다. 루앙프라방의 수많은 사원들 중 최고의 사원이라고 한다. 왓(Wat)은 사원, 씨앙(Xieng)은 도시, 통(Thong)은 황금이라는 의미이니, 왓씨앙통은 "황금 도시의 사원"이라는 뜻이다.
마침 구름이 몰려와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준다. 고색창연한 대법전, 유리공예로 장식된 사당의 섬세한 외벽이 눈길을 끈다. 다른 곳에 비해서는 여행자가 많긴 해도 천천히 둘러볼만한 여유가 있을 정도의 인원이다. 빨간색, 금빛이 어우러진 사원이 화려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화려함의 극치가 아닌 절제된 기품이 느껴져서 좋다. 이상하게도 라오스에서는 조급함이 사라진 빈틈에 어느새 여유가 들어와 있다.
왓씨앙통의 우아한 사원 사이에 유리로 장식된 나무가 그려진 건물이 나타난다. 아까 메콩강변 노점에 매달려 있던 나무 그림이다. "생명의 나무(Tree of Life)"라는 이름의 이 그림은 불교와 힌두교의 우주론을 형상화한 것이다. 나뭇가지는 하늘, 줄기는 땅, 뿌리는 지하세계를 의미한다고 한다.
2만 9천의 인구수를 가진 루앙프라방에 3천 명의 스님들과 60여 개의 사원이 있다는 통계를 떠올리지 않아도, 이 나무 앞에서는 생명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거리 노점에 "생명의 나무"그림들이 왜 그리 많이 휘날리고 있었는지 알 것 같다.
왓씨앙통의 고색창연함에서 빠져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프랑스식 예쁜 건물들이 거리에 늘어서 있다. 이 오묘한 조화가 루앙프라방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것이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끄는 풍경들이, 선한 얼굴의 라오스 인들과 호기심 가득한 여행자들을 어우러지게 한다.
사원 바로 뒤 시장에서는 잡화를 팔고 해가 저물면서 야시장의 천막이 설치되기 시작한다. 어제 도착해서 둘러본 루앙프라방은 어제만큼, 오늘 만난 도시는 오늘만큼을 보여준다. 라오스 사람보다 여행자가 더 많은 것 같은 도시의 거리에서 하루를 보냈다. 아무리 여행자 물가라고 해도 상대적으로 물가는 너무 싸고, 어디서 만나든 사람들은 순박한 나라다. 받은 돈을 비닐봉지에 쑤셔 넣는 시장 아줌마와 "뜨거워요!"라는 한국말과 함께 코코넛 풀빵을 건네주는 노점상의 손길이 정겹다.
누런 빛깔의 메콩강은 요동치며 흐르고 과연 같은 세월을 살아냈는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실감 나지 않는 라오스의 느린 시간도 여전히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