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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rliver Mar 03. 2017

소소한 특별함이 잔잔히 묻어나는 거리  

루앙프라방을 거닐다 4

동틀무렵의 딱밧에 참여하고 남은 긴 하루는 루앙프라방의 어딘가를 거니는 일로 채워진다. 목적지도 없이 길을 따라 걷는다.  바쁠 것 절대 없는 발걸음은 느려질 대로 느려진다. 라오스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이색적인 매장에 들어가 돌아보고 나오는 것만으로도 오전이 훌쩍 간다.

대로를 벗어난 메콩강변의 조용한 골목에는 화분과 오토바이가 잠자고 있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담백한 얼굴이 편안하다. 라오스 인들의 꾸밈없는 표정이 해맑다. 조용한 주택가라고 생각하던 곳 바로 옆은 사원이고 또 걷다 보면 게스트하우스다. 조금만 넓은 길로 나서면 식당이나 기념품점, 여행사가 널려 있지만 번잡스럽지 않은 루앙프라방만의 풍경이 있다.

한참을 걸어왔더니 "르반느통"이라는 프랑스 이름의 빵집이다. 안에는 서양인들이 가득해서 이곳이 라오스가 아니라 유럽의 시골 카페 같다. 가이드북을 뒤져보니 조마 베이커리와 더불어 루앙프라방의 대표 빵집이라고 한다. 오래 걸었으니 이곳에서 쉬어가기로 한다. 프랑스인들이야 고향의 맛을 느끼는 공간일 테지만 한국에서 온 여행자들에게는 이마저도 여행에서 만나는 이국적인 풍경이다. 빵도 맛있고 커피도 향기롭지만 가장 좋은 건 이렇게 흘러가는 여유 넘치는 시간들이다.


중심에서는 조금 멀어진 루앙프라방을 돌아다니지만, 굳이 지도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그만이다. 놓치면 안 되는 중요한 관광포인트를 찾아간다기보다 그저 그 존재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인 루앙프라방 자체를 즐기면 되는 발걸음이다.


숯을 포대로 쌓아놓은 골목 담장을 지나치다 보면 어느 가정집의 흰 울타리 앞에는 알록달록 빨래가 나부끼고 그 아래에 많지 않은 장작이 가지런히 쌓여 있다. 점포 건너편에 방치된 화덕과 설거지 도구들은 오늘 밤 야시장에서 사용될 물건일 것이다. 어느 골목, 어느 시장을 다녀도 거리는 놀랄만큼 깨끗하다.

메콩강변을 끼고 있는 여행자들 가득한 거리와 반대편 도로에는 자동차들과 자전거, 오토바이들이 씽씽 달린다. 프랑스풍의 건물과 라오스식의 주택, 사원이 있는 강변 쪽과는 달리 현대적인 거리에는 고급 호텔도 보인다. 아침 딱밧에서 봤던 셔틀버스에서 내리던 관광객들이 이쪽에 있는 큰 호텔에서 오는 것이었다. 관광지가 아니라 현지인들이 살아가는 곳에 오니, 일상의 부지런한 냄새가 물씬 풍긴다.


자전거로 루앙프라방을 둘러보는 한 무리의 여행자들이 지나가지만 우리가 믿는 건 두 다리뿐이다. 거리의 좌판을 기웃거리고 사원 문 앞에서 공놀이 하는 아이들도 쳐다보며 바쁠 일 없이 느리게 걷는 발걸음을 즐긴다. 그림자가 길어지고 어느덧 발걸음은 푸시산을 향한다. 푸시산은 산이라 해봤자 왕궁 앞의 동산이긴 하다.

왕궁 앞 대로에는 야시장 천막이 본격적으로 설치되고 있다. 자리를 만드는 상인, 물건을 진열하는 사람, 운반하는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이트마켓이 시작된다. 야시장이 준비되는 동안 루앙프라방의 일몰을 감상하러 푸시산에 오른다. 그림 같은 왕궁을 배경으로 빨강 파랑의 천막들이 질서 정연하다.

병풍 같은 산들이 겹겹이 둘러쳐진 루앙프라방의 경치가 사방으로 보인다. 오늘도 수고한 태양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려고 왔지만 사실 이곳은 라오스답지 않게 여행자가 많다. 오르는 계단도 좁은 데다 구조물이 있는 정상도 넓은 공간이 아니다. 거기에 석양을 보겠다는 사람들이 같은 시각에 몰리니 혼잡할 수밖에 없다.  좋은 자리에서 보는 것은 포기하고 루앙프라방의 전경이나 즐기기로 한다.


해가 진 뒤 산을 내려오니 이미 정돈된 야시장은 손님과 상인들로 가득하다. 특히 신기한 것은 한국말이 상당히 많이 들린다는 것이다. 바쁜 일정으로 라오스에 오는 단체관광객들에게 이곳이 필수 코스인 것 같다. "꽃보다청춘" 방송 여파로 한국인 관광객이 더 많이 늘었다는 것이 실감 난다.


파는 물건의 종류는 많지 않다. 라오스라는 단어가 써진 티셔츠, 라오스 전통치마, 스님들의 뒷모습이나 생명의 나무가 그려진 그림, 전통 문양이 들어간 파우치, 소수민족들이 손수 만든 특산품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작은 뱀이 담긴 약술을 병에 담아 드물게 팔기도 한다. 국명이 백만 마리 코끼리의 나라라 하지만 코끼리 문양은 태국의 것이 이미 더 유명하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사실 쇼핑할 만한 물건은 별로 없다. 파는 사람들의 반응은 재미있다. 공산주의의 영향인지 라오스인 특유의 정서인지, 같은 종류의 상품을 똑같이 진열하고 파는데 가격도 에누리 없이 비슷하다. 대체 경쟁이란 것을 모르는 사람들 같다.   

야시장을 돌아보다 먹거리 시장에 들른다. 관광객들 가득한 나이트 바자보다 라오스 사람들이 장을 보는 소박한 시장을 돌아다니는 게 더 재미있다. 그리 밝지 않은 불빛 속의 시장은 늦지 않은 시간에 파장할 것이다. 과일과 튀긴  닭, 꼬치를 사 가지고 호텔로 돌아온다. 치안 좋은 공산주의 국가 라오스의 밤거리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인적 없는 숙소 근처에서는 신경을 쓰게 되기는 해도, 사원과 이웃하는 숙소라는 사실에도 마음이 놓인다.


채소 가게에서  토마토와 라오스 인들이 좋아한다는 연두색 망고, 어떤 고기로 만들어진 건지 의심스러운 꼬치와 닭다리 튀김을 놓고 비어라오 병씩 마시며 오늘을 마감한다.


하루를 살았다는 견지에서 보면 다르지 않을 시간이 상대적으로 천천히 지나가고 그것은 의도하지 않아도 아름답게 각인된다. 이 소소한 특별함이 여행을 부추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현실임을 자각하는 즐거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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