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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rliver May 12. 2017

딱밧으로 하루를 열다

루앙프라방을 거닐다 5

새벽닭이 홰치는 소리에 눈이 번쩍 뜨인다. 얼른 세수만 하고는 긴 옷을 챙겨 입고 쌀쌀한 거리로 나선다.  동트기 전의 감청색 하늘과 어둠이 가려놓은 거리의 실루엣이 묘하게 어울린다.


딱밧을 체험(?)하려는 여행자들은 오늘도 조마 베이커리 앞 대로에 앉거나 서서 스님의 행렬을 기다린다. 그 앞을 지나쳐서 어제 찰밥을 샀던 새벽시장 근처 노점으로 간다. 찰밥을 파는 노점의 전등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시장 근처에는 사람들이 쭈그려 앉아 담소를 나누며 딱밧을 기다린다. 며칠간 들렀더니 여행자를 알아본 노점 아주머니가 바로 앞에 깔린 돗자리에 앉아도 된다는 눈짓을 한다. 현지인들이 자리 잡고 딱밧을 하는 곳이라 일부러 여기로 온 것이지만 황송하게 돗자리를 깔게 될 줄은 몰랐다.

라오스에 오는 사람들은 누구든 딱밧이 궁금하다. 참여를 하든지 구경을 하든지, 그 주위에는 여행자들이 항상 바글거린다. 가난한 나라에 외국인 여행자들이 몰리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긴 해도, 형식적인 관광을 부추기는 영혼 없는 세리머니는 결코 아니다. 라오스 인들의 일상이고 그들만의 문화이지만, 여행자들이 끼어들어 카메라 세례를 퍼붓거나 호기심에 가득한 눈초리로 구경을 해도 담담히 수용하는 것이다. 무릎 꿇고 딱밧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지켜보는 여행자들은 여전히 많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서양인 여행자의 눈에는 거리에 앉아있는 내 모습도 라오스 사람처럼 보일까?


라오스 사람들의 하루가 정성스러운 공양으로 시작되는 것처럼, 라오스 스님들이 하루 동안 일용할 양식은 딱밧으로 충당된다고 한다. 여행자들을 부르기 위한 관광용의 의식이 아니라, 스님들이 일용할 양식을 필요한 만큼 공양받아 사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침마다 공양을 하는 일은 새벽기도와 다름없다. 역사깊은 불교도들의 신심을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딱밧의 행렬을 기다리는 일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된다.


다른 사람들처럼 대나무 밥통을 앞에 놓고 신발을 벗고 무릎을 꿇고 앉아 공손하게 딱밧을 기다린다. 미명의 새벽, 거리에 꿇어앉은 불심 깊은 사람들 사이에 앉은 마음이 뭉클해 온다.

추위 때문에 두꺼운 방석을 깔고 덮은 백발의 할머니가 무릎 위에 준비된 대나무 통의 뚜껑을 열고 기다리고 있다. 평생 동안 이런 아침을 맞이했을 할머니의 하얀 머리카락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새벽마다 정성을 들이며 저물었을 한 인생 앞에서 경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을 그냥 보내는 것이 죄악처럼 느껴지는 바쁜 하루가 일상인 곳에서 날아온 여행자의 눈에는, 하루를 이렇게 시작하는 일생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감동적이다.

멀리 스님들의 주황색 승복이 휘날린다. 먼발치에서 보면 짧게 깎은 머리와 어깨에 두른 주황색 가사의 행렬만이 인식된다. 어깨에 공양 그릇을 멘 스님들이 하나둘 다가온다. 계율이 엄격해서 여자와는 몸의 일부라도 스치면 안 된다고 하니 더욱 조심스럽다. 뜨거운 찰밥을 덜어내 동그랗게 뭉쳐 내 앞을 지나는 스님의 공양 그릇에 넣어드린다. 방금 쪄낸 밥이 너무 뜨거워서 한 덩이 뭉치는 것도 어려운데, 옆에 앉은 라오스인 아주머니는 척척 찰밥을 말아 바리때에 넣고 준비한 과자까지 한 번 더 넣는다. 그만큼은 못 되는 서툰 손길이지만 스님의 행렬의 속도에 대략 맞추어 공양할 수 있어 다행이다.

찰밥을 다 공양하고 일어서니 잠시 후 다른 행렬이 다가온다. 이미 채워진 바리때는 천으로 덮여있고 이번에는 앉아있는 사람들이 한 손으로는 거리에 물을 부으면서 한 손으로는 합장의 제스처를 취한다.


먼발치서 보면 주황색 기차놀이 같기도 한 스님들의 행렬이 저편으로 사라진 거리에는 공양을 하던 사람들도 그것을 지켜보던 여행자들도 제 갈 길을 간다. 비로소 라오스의 평범한 아침이 시작된 것이다. 그 거리에 대여섯쯤 되어 보이는 꼬마 둘이 남아 있다. 빈 양동이를 들고 공양하는 사람들의 끝에 서 있던 이 아이들을 유심히 보게 된다.


늘 그렇듯, 이 아이들이 양동이는 라오스 사람들이 직접 채워주지 않는다. 방금 공양을 받은 스님들이 지나가면서 잊지 않고 바리때에서 방금 받은 음식을 꺼내 이 아이들의 빈 양동이에 넣어 준다. 오늘은 새벽시장으로 가지 않고 이 아이들을 따라가 본다. 코 묻은 꼬질꼬질한 얼굴과 꾀죄죄한 옷자락이 그들의 처지를 짐작하게 한다. 혼자 들 수 없을 만큼 음식이 가득 찬 양동이를 둘이 들고 어딘가로 향한다.

거리를 두고 따라가 보니, 이른 시각이라 사람도 없는 메콩강변의 선착장이다. 미안하게도, 여행자는 아이들이 무엇을 먼저 먹을 것인가가 궁금해진다. 어제저녁이나 제대로 먹었을까 걱정되기에 당연히 찰밥이나 바나나를 먹을 줄 알았지만, 그들이 집어 든 것은 아이답게도, 과자봉지다. 과자를 깨무는 조그만 얼굴에 미소가 퍼진다. 하나 먹고 또 다른 과자봉지를 뜯는 고사리 손의 움직임이 슬로비디오처럼 느리게 보인다. 그들의 양동이에 카메라를 들이댈 수는 없다. 저 아이들도 자라면 스님이 될 수 있으리라 위안을 하지만, 그 장면을 딱밧의 마지막 사진으로 담기가 미안하다. 애먼 메콩강의 새벽 사진을 한 장 찍는 것으로 애잔한 마음을 대신한다.


많이 소유해야 행복한 것일까, 무엇이 잘 사는 것일까, 어떤 게 충만한 삶일까...

물안개 피어오르는 메콩강을 바라보며 낯선 나라에서의 긴 하루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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