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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oon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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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지 Apr 17. 2020

바이런 베이 첫째 날

 나는 여기를 왜 이제야 온 걸까.
할아버지는 바이런 베이가 싫은 이유 중 하나가 히피들로 넘쳐나는 곳이어서라고 하셨다. 유럽에서 만난 내 친구들 중에는 진짜로 히피 같은 사람들도 많아서 나는 오히려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직접 와보니 어떤 의미로 하신 말씀인지가 확 와 닿는다. 버스에서 내리는 바로 그 순간 나는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여기가 더 좋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호주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이나 워킹홀리데이 비자 소지자들도 엄청 몰리는 곳. 지금까지 호주 군데군데를 다녀봤지만 여전히 바이런 베이를 떠올리면 다른 곳과는 다른 그곳만이 지닌 색채나 분위기가 매우 뚜렷하다고 느껴진다. 원체 호주 자체가 대체적으로 느슨하고 늘어지는 듯한 느낌이 있는데 여기에선 특히나 그런 느낌이 더 도드라졌다.

 똑같은 바다지만 해안선을 따라 넓게 쭉 이어지는 연둣빛 잔디 때문인지 골드코스트에서와는 또 다른 바다 풍경. 언덕 위 잔디에 앉아 어쿠스틱 기타 소리와 파도 소리의 환상적인 합주를 듣고 있으니 마치 이 순간만큼은 지구 이 세상에 이곳보다 좋은 곳은 없을 것만 같다는 착각마저 든다. 서서히 져가는 노을빛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구름과 하늘의 색채 덕분에 귀뿐만이 아니라 눈까지 실컷 호강하는 중.

 나처럼 혼자 잔디 위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여자에게 바다를 배경으로 내 사진을 찍어줄 수 있는지 부탁했다가 둘 다 혼자라는 공통점 때문에 금방 친해졌다. 22살의 리나는 시드니 가정집에서 숙식하며 그 집 아이들을 돌봐주는 Au pair를 하는데 그 집 가족이 결혼식 참석을 위해 이곳에 오게 돼서 함께 따라오게 되었다고 했다.
 여기는 등대가 유명하다더라는 내 말에 즉흥적으로 같이 등대를 향해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시간이 벌써 오후 7시가 넘었지만 아직 하늘이 밝아서 괜찮을 줄 알았으나 40분째 걷다 보니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우리 둘 다 가본 적이 없어서 멀리서 보였던 등대를 보고 눈대중으로 산길을 따라가는 중이었는데, 가는 길 내내 밤을 밝혀줄 빛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도마뱀이나 벌레가 나올까 봐 무섭다며 더 이상 못 가겠다는 리나 말에 결국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아예 깜깜해진 하늘을 보며 다시 타운으로 돌아갔다.
 오페어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기로 예정된 리나와는 서로 번호를 교환하고 두 시간 뒤쯤 다시 만나 펍에 놀러 가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혼자 남은 그 사이 나는 다시 아까 내리 앉아있던 언덕으로 가서 리나를 기다리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여기도 서퍼스 파라다이스처럼 스쿨리들이 단체로 놀러 왔는지 밤이 되자 여기저기 신난 십대들이 더 눈에 잘 띄었다.

 10시쯤 다시 만난 리나와 간 곳은 Beach Hotel 1층에 있는 펍. 한눈에 보기에도 거기가 바이런 베이에서 가장 크고 유명해 보여 들어갔다. 맥주 330ml에 7.5달러, 우리 돈 6000원이니까 내가 호주 오기 전 생각했던 것 술값만큼 비싼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은 일도 시작하기 전이니 조금씩 아껴 마시기.

 홀짝홀짝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면서 리나가 자기 얘기를 본격적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원래 사우디아라비아인인데 여동생이랑 둘이서 가족들 및 자기 나라로부터 도망쳐 호주로 온 거라는 이야기의 시작부터가 나에겐 충격적이었다. 예전에 런던에서 만난 어떤 사우디아라비아인 가족 덕분에 그 나라 여성 인권이 매우 낮다는 걸 대충 짐작은 했지만 리나에게서 직접 자세하게 들은 바로는 그 이상으로 훨씬 심각한 수준이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연애결혼이 거의 드물단다. 부모님이나 아버지가 정해주는 정혼자를 만나 결혼해야 하고 여자들은 한평생 남자들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순종적이어야 한다. 남편은 성범죄자든 폭력범이든 상관없이 단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용인되지만 여자들은 결혼과 동시에 자기 가족들에게마저 외면당하고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 자국 여자들은 각자의 가족 관례에 따라 눈이나 얼굴만 빼고 신체의 모든 부분을 가려야 하며 여자들끼리만 있을 때나 남편과 있을 때를 제외하곤 차도르나 히잡을 벗을 수가 없다(기온이 40-50도를 웃도는 날씨). 리나네 부모님은 굉장히 종교를 맹신하고 극보수적이라 리나도 11살 때부터 쭉 눈만 제외하고 온몸을 가리는 차도르를 계속 쓰고 살아야만 했단다.

 리나에겐 남동생도 두 명 있지만 그들은 문화적으로 그렇게 자라왔고 남자이기 때문에 리나와 여동생의 괴로움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리나와 여동생은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일부러 둘이 같은 대학교에 진학한 후 기숙사 생활을 하며 호주로 도망쳐올 계획을 세웠다. 무려 4개월 동안이나 난민 비자 신청을 준비했는데, 아버지가 직접 신청해야만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동안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온 가족 터키 여행을 보내준다고 속여 여권을 만들었다. 학교 다니던 중에 틈틈이 일하면서 여동생이랑 같이 돈을 모으고 비자가 나오자마자 비행기 티켓을 사고선 기숙사에서 바로 떠날 짐을 꾸렸다. 그러고 나서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 부모님께 문자 하나만 남기고 여동생과 함께 호주로 도망을 왔다. 그 어린 나이에 정말 목숨 걸고 도망친 게 너무 짠하면서도 대단했다. 부모님은 리나랑 여동생을 찾아내서 죽여버리겠다고 했다지만 어쨌든 그들은 이들을 찾지 못했고 리나는 호주로 온 후에야 비로소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었던 그 모든 굴레, 억압, 그리고 차별을 벗어나게 돼서 하루하루가 진심으로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리나가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2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리나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너무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나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 더 이상 사회나 가족의 굴레에 갇히지 않고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어서 자기를 더 힘들게만 했던 가족과의 인연을 끊고 고국을 떠나 호주로 온 게 단 한 번도 후회된 적이 없었다는 리나. 호주에 온 게 불과 7개월 전이지만 5년 동안 난민 비자로 거주하고 난 후에는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며 희망찬 목소리로 말했다. 호주에 온 뒤로 난생처음으로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꿈도 찾았단다. 그래서 피트니스 강사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매일 꾸준히 노력하는 중이라는 리나의 표정과 말에서 엄청난 열의가 엿보였다. 브리즈번에서 만난 맥스처럼 리나에게도 앞으로는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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